이른 아침 정원을 돌아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부여받은(?) 직업에 감사하게 된 건, 순전히 식물들의 경이로운 삶을 들여다보는 눈을 가지게 되면서부터였다. 처음엔 아무생각 없이 ‘꽃들이 예뻐서, 향이 좋아서, 식물이 잘생겨서’ 라는 이유로 오감을 자극하는 식물들의 매력에 심취했지만 이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이상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항상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식물들. 아무리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세대를 거치면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하는 그들. 그래서 항상 필자는 식물 앞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고, 그들과 가까이 하고자 무릎 꿇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음에 또다시 감사하게 된다.
따뜻한 남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땅이 얼어 곡괭이로도 파기 어려운 겨울. 그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식물들이 있다.
‘아니, 대체 어떻게 피었을까?’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꽃, 바로 ‘앉은부채’다. 전국의 깊은 산 동북향의 음습한 곳에 주로 자생하는 앉은부채는 천남성과 식물로 북미, 아시아에 5종 정도가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앉은부채와 여름에 꽃이 피는 ‘애기앉은부채’가 자생하고 있다.
일찍 꽃이 피는 식물의 대표적인 특징은 꽃이 필 때는 해를 충분히 받아야 하고 꽃이 지고 나서는 그늘이 만들어져 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이 낙엽활엽수림대에 주로 분포하기도 한다.
앉은부채는 꽃 모양이 아주 특이하다. 그 때문인지 앉은부채라는 이름도 불염포에 둘러 싸여있는 모습이 흡사 참선 중인 부처님과 그 뒤로 비추는 광명을 닮았다 하여 ‘앉은부처’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또 꽃을 둘러싼 불염포가 부채 같다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하지만 변함없는 궁금증은 어떻게 여린 식물이 꽝꽝 언 땅을 뚫고 나왔느냐는 것이었다.

밝혀진 실험에 의하면 일찍 꽃을 피우거나 앉은부채처럼 중간에 줄기 없이 꽃이 바로 나오는 식물들은 꽃이 언 땅을 녹이기 위해 열을 발산하는데, 그 열로 굳은 땅을 서서히 녹이면서 뚫고 나온다고 한다. 온도계로 꽃의 내부를 측정해보면 영하의 바깥 온도보다 확연히 높은 영상의 온도를 확인할 수 있다.
꽃은 한 포기에 하나씩 나오며 꽃잎은 자갈색으로 전체적으로 반점이 얼룩져 있는데 흡사 꼬마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겨 앙증맞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모양이 귀여워 가까이서 향을 맡으려면 모두 깜짝 놀라 물러서게 된다.
식물의 향기를 논할 때는 크게 향과 냄새로 얘기하는데, 인간들이 좋아하는 것은 향기라고 하지만 역겨운 것은 향이 아닌 냄새가 난다고 표현한다. 앉은부채는 냄새에 해당하는 식물로 잎을 만지면 고기 썩은 냄새와도 같은 악취를 발산한다.
식물들 나름대로 자신을 보호하거나 악취라도 풍겨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생존전략이 아닐까한다. 추위로 먹이가 부족한 이른 봄에는 숲속 작은 동물들의 먹이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앉은부채의 학명인 ‘Symplocarpus renifolius’는 그리스어로 ‘열매와 잎이 같이 있고 콩팥을 닮은 잎을 가졌다’는 뜻이지만 사실 잎보다는 종자 모양이 콩팥과 더 닮은 듯 하다. 뿌리, 줄기와 어린 순을 나물로 먹지만 유독성 식물이므로 독성을 제거한 후 먹어야 한다. 한방에서는 냄새나는 배추 즉, 취숭()이라 하여 이뇨제 등에 이용한다.
앉은부채는 꽃이 피고난 후 잎이 나오는데 서양에서는 악 취를 풍기고 배추처럼 큰 잎을 가졌다는 뜻으로 ‘Skunk Cabbage’라 부른다.
아주 이른 봄 산행 중 혹시 앉은부채를 만난다면 무릎 꿇고 앉아 눈 한번 맞추어 주는 삶의 여유와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