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제5장 전통 사회의 패션 리더들5. 조선의 커리어우먼, 기생

더 짧게 더 좁게, 극단의 저고리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복식 구조는 1537년(중종 32)을 전후하여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하였다. 그 후 조선 후기로 들어오면서 기생을 중심으로 그 길이는 극도로 짧아져 도련 밑으로 허리 말기와 겨드랑이는 물론 심지어 젖가슴도 보였다. 게다가 저고리의 품과 소매통도 좁아졌다.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당시 저고리의 변화를 복요(服妖)로 인식하고 금지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이덕무 또한 당시 저고리의 극단을 안타까워하고 있음을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다.

<미인도>   
온양 민속 박물관 소장으로 자연스러운 치마 착장법을 하고 있다. 치마말기에 달린 끈으로 허리를 묶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늘어뜨렸다. 여러 겹 겹쳐 입은 속옷으로 인하여 엉덩이 부분이 부풀려져 있다. 엉덩이를 강조하는 대신 치마 밑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오게 하여 짧고 좁아진 저고리와 균형을 이룬다.
<미인도>   
일본 동경 국립 박물관 소장으로 치마자락을 걷어 올리는 착장법을 하고 있다. 치마의 겉자락 끝을 손으로 걷어 올려 앞 도련선에 갖다 붙였다. 치마 끝이 사선으로 떨어져 강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세상의 부녀들의 옷은 저고리는 너무 짧고 좁으며,…… 새로 생긴 옷을 시험 삼아 입어 보았더니 소매에 팔을 꿰기가 몹시 어려웠고, 한 번 팔을 구부리면 솔기가 터졌으며, 심한 경우에는 간신히 입고 나서 조금 있으면 팔에 혈기가 통하지 않아 살이 부풀어 벗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소매를 째고 벗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그리도 요망스런 옷일까.322)

여성들의 저고리가 극도로 짧아지고 좁아지는 중심에 왜 기생들이 있었을까? 그것은 기생이 내외법에 가려 감추어진 인물로 살아가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생활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긴 저고리는 오랜 기간 계속 착용하면서 사회의 규범으로 정착되었고 정숙성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관습적으로 가려지던 부위는 이성으로 하여금 강한 성적 매력을 느끼게 하고, 기생의 짧아지고 좁아진 저고리는 새롭게 감추던 것을 백일하에 드러내 놓음으로써 매력과 쾌락을 제공하게 되었다. 기생들은 짧고 좁아진 저고리를 통하여 지금까지 꽁꽁 묶어 놓았던 가슴을 드러내 놓고 몸매를 과시함으로써 단조로움에 의해 둔감해진 성적 충동을 자각시키고자 하였으며, 한 여성을 새롭게 매력적인 인간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는 기생이라는 특수한 신분의 성적인 가치를 높여 에로티시즘을 자극하고자 하는 내면의 심리가 표현된 것이다.

<밀회>   
남녀가 몰래 포옹하는 모습을 한 여인이 훔쳐보는 장면을 묘사한 신윤복의 풍속화이다. 두 여인은 치마의 겉자락 끝을 걷어 휘감아 입는 동시에 치마를 짧게 고정시키기 위하여 별도의 허리띠를 사용하였다. 치마에는 율동적인 곡선이 생기고 속바지의 끝과 발이 노출되어 섹슈얼리즘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필자] 이민주
322)이덕무, 『청장관전서』 권30, 소사절, 제6 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