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우리 아들

1. 커피믹스를 마실 때 마다 고민을 합니다.

‘이걸 먹어 말어.’

입에 착착 감기는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이 유혹합니다. 그러나 크림과 설탕 섭취로 인하여 내장지방층이 두꺼워 지는 것도 생각 안할 수가 없고. 또 골밀도가 평균치보다 많이 낮다고 하니 칼슘을 빼간다는 카페인을 맘놓고 섭취할 수도 없는  처지인지라  커피를 마실까 말까 늘 망설이게 되는 겁니다.  아이들한테 초콜릿이 좋지 않다고 주지 않으면서 크림 설탕 달달하게 들어간 커피믹스를 마시는 게 미안하기도 하여 얘기 했습니다.

“지승아, 사실 엄마는 살찌니까 이거 마시면 안 되는 데, 자꾸 먹고 싶어, 어떡하지?”

그랬더니 지승이 좋은 수가 있다며 말해주는 겁니다.

“엄마, 그러면 어버이날에만 한 번씩 드세요.”

~~~ 에궁 ~~~ 황당, 그리고 당황.

아이들이 초콜릿을 사달라고 할 때 제가 하는 말이거든요.

생일 날 기념으로, 어린이 날 기념으로. 때론 한 학기를 잘 마친 기념으로 ...

살찔까봐 참아야 하는 믹스커피를 향한 엄마의 마음을 초콜릿을 향한 자신의 마음과 비교해 보고 결론을 내렸겠지요. 어버이날처럼 특별한 날에 한 번씩 마시라고.

엄마를 위해 맘 놓고 마실 수 있는 날을 생각해 준 지혜로운 우리 아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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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이 외할머니 수국 2010년 5월 27

           


초등 학급 회장의 임무와 권한에 대한 돌아봄


아들 학교는 2학년 때부터 학급 회장을 선출했고 딸 학교는 3학년 때부터 학급 회장을 선출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2학년 때는 학급 회장의 임무와 권한에 대한 생각을 해 볼 계기가 없었습니다. 아들이 워낙 과묵하여 학급에서 있었던 일을 일일이 이야기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급 회장이 반에서 어떤 일을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회장이 된 아이를 부를 땐 친구끼리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회장’이란 칭호를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 정도를 들었습니다. 때로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도 있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딸 학교에서 학급임원을 선출 한 뒤로는 회장 부회장이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좋은 소식보다는 개선의 여지가 필요한 내용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떠드는 사람 이름 적기’입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부득이하게 선생님께서 교실을 비우시게 되는 경우 떠드는 아이 이름을 회장(옛날엔 반장이라고 불렀습니다.)이 칠판에 적었습니다. 선생님이 안 계신 동안에 일어날지도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떠드는 사람 이름 적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친구가 친구를 통제하게 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비교육적인 일이 오늘날에도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까지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친구 이름을 적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더욱 놀랍습니다.

요즘 그린 스티커와 옐로 스티커로 상벌을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아마도 복도에서 뛴다고 이름이 적힌 아이는 옐로 스티커를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니 ‘떠드는 사람 이름 적기’로 인해 회장이 된 친구와 갈등을 빚게 되기도 하고 회장눈치를 보는 일도 생길 겁니다.

반면 회장이 되어 친구들의 이름을 적는 역할을 하게 되면 회장의 역할이란 ‘감시와 통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런 감시와 통제자로서의 역할 인식이 권한과 권력이라는 이미지로 연결되어 지도자에 대한 그릇된 가치관을 갖게 하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원은, 회장은, 대표는, 자신을 지지해 준 한 사람 한 사람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일반 학생들은 임원이, 회장이, 대표가 하는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시키는 대로 조용히 해야 한다는 복종을 배우게 된다면 그 또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초등시절을 보낸 분께 물어보았습니다. 미국에도 초등학교에 반장이나 회장이 있냐고.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없었던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럼 선생님께서 잠깐 자리를 비우시는 시간엔 어떻게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항상 학생들과 같이 계시기 때문에 친구가 친구를 통제해야 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반면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끼리 모여 이야기도 하고 운동장에 나가 자유롭게 놀기도 한답니다. 쉬는 시간마저 ‘조용히’라는 말로 통제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안전사고 예방과 학습 분위기 유지를 위해 통제가 필요하다면 그 역할을 선생님들이 하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습시간에 코가 나와서 코 풀러 갔다 오니 칠판에 이름이 적혔다고 이야기 하는 아들은 대표를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고, 상황파악이 안된 상태에서 단순히 자리를 떴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을 적는 회장은 결과만 보는 마음이 은연중에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부당한 일에 복종해야하고, 현상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태도를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끄는 미래는 행복하지 못할 겁니다. 민주적이지도 못할 겁니다.

참다운 교육은, 참교육은 작은 것도 소홀하지 말아야 합니다. ‘떠드는 사람 이름 적기’에 비민주적 비교육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시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미래가 더 행복하고 민주적으로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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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0/06/02 0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기초 아들이 회장을 해보고 싶다고 했을때 하지 말라고 말렸던 것이 기억 납니다. 사실 제가 학교 다닐때 반장의 역할은 단순히 선생님의 보조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반장의 임무중 하나는 교실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떠든 사람의 이름을 적고 가끔은 무력을 동원하여 교실의 질서를 잡았던 반장이 기억납니다. 이것이 70~80년도 군사정부의 잔재였음을 안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당시 학교는 학교라기 보다 군대(?)에 가깝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저는 요즘도 학교에서 회장은 70~80년대 반장이 하는 역할과 똑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했기에 아들의 회장 출마를 결사(?) 반대했습니다.이런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피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죠. 힘들고 욕먹는 회장의 위치에 아들을 세우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다운 교육은 작은 것도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이 갑니다. 이제까지 할수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현실을 받아들이려 생각을 다시금 고쳐보게 됩니다. 다음에 선생님을 만나면 이 얘기는 꼭 해봐야 겠습니다.


지구촌 어린이 돕기 행사 -수존에게

올해도 어린이 날이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말았습니다. 어린이날은 선물을 받는 날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 날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무언가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사시사철 엄마 어린이 날이 얼마 남았어요 하고 묻곤 합니다.
얼마전 학교에서 굶주리는 아프리카 어린이에 돕기에 대한 행사를 했습니다. 저금통에 잔돈을 모아 내고, 배포된 CD를 보고 주인공인 수존이란 8살 아이에게 편지를 써서 내는 행사였습니다. 올해 어린이 날에는 수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선물에 대한 지윤 지승의 갈증을 덜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어린이 날의 참 뜻인 어린이를 향한 사랑이 멀리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어린이들에게도 전달되길 바랍니다.


수존에게

수존아, 나는 서울에 사는 우지승이야. 넌 아주 착한 아이고, 어머니도 도와주고 넌 아주 집 살림살이도 잘하고, 넌 지금 1석 2조인 일을 하고 있어. 쓰레기를 주우면서 집을 살리고 환경오염을 줄이기도 하잖아.

그리고 넌 8살 밖에 안 됐는데 엄마를 도와주려고 밥을 만들어 주는 네가 나는 참 대견스럽구나.

그리고 너는 집이 가난해서 좀 안 좋겠다. 난 너를 도와주고 싶어. 하지만 난 학교 생활을 하고 또 어른이 되면 회사를 다니느라 바빠서 너에게 못 가는 거야. 내가 가면 너를 많이많이 도와줄게. 그리고 또 내가 없더라도 네가 할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돈을 아끼면 집이 살아날 수 있어. 우리는 네가 잘 살고 잘 지내고 집 살림새가 더 잘 되길 빌어.

지승이가.

굿네이버스라는 단체에서 벌이는 불우지구촌어린이 돕기 행사에 지승이가 쓴 편지입니다.
같은 내용의 행사로 작년에는 저금통과 안내문을 갖고 왔었는데, 올해는 수존이라는 8살짜리 소년이 쓰레기를 주워 번 600원으로 4식구의 끼니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내용이 담긴 CD를 한 장씩 갖고 왔습니다. 굿네이버스의 활동을 알리고 동참을 구하기 위하여 플라스틱 저금통 두 개와 CD 두 장, 그리고 인쇄물 두 장을 쓴 셈입니다. 인쇄물과 저금통과 CD 등 (해설자로 출연한 탤런트 김현주의 섭외비용을 제외-실은 김현주씨가 무료 봉사하지 않았을까 라고 아름다운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행사를 하기 위해 굿네이버스에서 지출한 금액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니 좀 씁쓸하였습니다. 굳이 수존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면 굿네이버스 홈페이지에 동영상을 올려놓고 아이들이 볼 수 있게 지도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국제구호기구가 있다는 것은 자랑으로 여길 만한 일입니다. 그런 기구에서 하는 일은 가정살림과는 달리 무조건 아낀다고 최선인 것만은 아닐 거란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국제기구의 명성은 광고를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구호활동을 한 결과로 인정받고 알려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번 행사를 통해 굶주린 어린이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밥 한 그릇을 소금에 비벼 온 가족이 한 입씩 먹는 모습은 정말 딱하였습니다. 아이들도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 지 가끔 뜬금없이 묻기도 합니다.

“엄마, 수존은 안 먹어 본 음식도 잘 먹을까? 배가 고프니까 아무거나 잘 먹겠지? 우리나라 밥을 줘도 잘 먹을까? 소금 맛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를까?”

이런 질문은 주로 딸이 합니다.

“엄마, 수존한테는 100원도 아주 큰돈이지요? 엄마, 어른들도 배가 아주 많이 고프면 그 애기처럼 배가 불룩해져요? 왜 그 동생은 배가 그렇게 커요? 엄마, 아주우 ~ 옛날엔 백 원만 있어도 아주 큰 부자였지요?”

이런 질문은 주로 아들이 합니다.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에게 밥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 건 아주 큰 수확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배고픔을 위로하는 마음만 편지에 실으면 될 터인데, 편지 중 우수작은 골라 수존에게 전달하며 해외봉사 체험의 기회를 무료로 준다는 시상내역에 욕심까지 싣게 되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아들의 편지를 통하여 수존을 향한 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존이 쓰레기를 줍는 것을 환경오염과 연관시켜 1석 2조의 일을 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내용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수존에게 쓰레기 줍기는 자연보호 차원이 아닌 생존의 문제인데, 그걸 구분하기엔 아직 아들이 어렸던 겁니다.
한편으론 매번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기회가 생길 때 마다 강조하며 키운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며 분위기 파악 안 되는 아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아낄 돈은커녕 당장 끼니를 이을 것이 걱정인 수존에게 ‘ 돈을 아끼면 집이 살아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아들의 생각도 자랑스러웠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아껴야 잘 살 수 있다는 평소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윤, 지승 속에 싹을 틔운 나눔의 미덕이 수존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날까지 더욱 커져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존에게 한 마디를 썼습니다.

‘너에게 행운이 깃들길 기도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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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바람 2011/11/07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존에게 보내는 편지지와 함께 앞으로 계속 굿네이버스에 기부를 하겠다는 내용에 동그라미를 쳐서 냈습니다. 지윤이 지승이 둘 다 정기적 기부를 약속했는데, 엄마에게 물어보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동그라미를 턱 그리는 겁니다. 저희들에겐 아직 용돈 제도가 없으니 내야 하는 몫은 당연히 엄마차지입니다. 만원이란 작은 돈을 지윤이와 지승이 이름으로 내고 있습니다. 요즘엔 기부도 자동이체로 나가더라구요.ㅋㅋ 내가 선뜻 못 나서는 기부의 삶에 동그라미를 쳐준 지윤이와 지승이의 마음이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가끔 굿네이버스에서 소식지를 보내줍니다. 지윤이와 지승이는 북한 어린이 돕기에 써달라고 했기 때문에 자매결연을 맺은 친구가 없습니다. 말도 안통하는 아프리카의 어떤 아이와 연결되는 것 보단 북한 어린이와는 말도 통하고 편지 주고 받기도 쉬울텐데, 굿네이버스 측에선 유독 북한어린이와는 일대일 자매결연을 해 줄 수 없다고 해서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를 돕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동포친구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이번 달부터 저희들도 용돈이 생겼으니, 그 중 일부를 모아 기부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어봐야 겠습니다. .
    자신도 풍족하고 그리고도 나눌 수 있는 삶. 최상의 삶이 아닐까요. 물론 자신이 풍족하지 못해도 기부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더 훌륭하지만, 그렇게 까지 하라고 가르치기는 왠지 싫은 게 평범한 부모 맘이겠지요. 내 자식이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길 바라는 맘과 같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