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澤明 특선 9] 어느 추한 변호사의 이야기 : 추문 (醜聞 , 1950)

프로필

2017. 3. 9. 19:13

이웃추가

[구로사와 아키라 특선 9] 추문 (醜聞 , SCANDAL , 104분, 1950)


감독 : 구로사와 아키라
각본 : 키쿠시마 류조, 구로사와 아키라
주연 : 미후네 도시로, 시무라 다카시, 야마구치 요시코(셜리 야마구치)


젊은 화가인 아오에(미후네 도시로 분)는 한적한 산골 마을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인기 성악가인 사이조(야마구치 요시코 분)와 우연히 한 여관에 묵게 됩니다. 오토바이로 여관까지 데려다 준 아오에의 호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3류 잡지사 기자들에게 포착되고 둘의 다정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 3류 잡지인 '아무르'에 화가와 유명 성악가의 스캔들 기사로 실리게 됩니다. 이에 격분한 아오에는 '아무르' 잡지사를 상대로 고소를 하게 되고 그런 그를 변호사인 히루타(시무라 다카시 분)가 돕게 되는데...


실은 이 영화를 포스팅할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저평가받는 작품이며 개인적으로도 장점보다는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본인도 그의 자서전을 통해 가장 약한 작품이라며 스스로 평가절하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관람 포인트가 존재하기에 뒤늦게 포스팅하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졸작이라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영화 초반에서 보여지는 구로사와 아키라만의 다이나믹한 리듬감과 편집 스타일, '휴머니즘'적 주제의식의 명료한 표현은 그대로입니다.)

영화는 화가와 유명 성악가의 스캔들로부터 시작합니다. 관객은 기사화된 이들의 스캔들이 거짓이고 과장된 것임을 초반부터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전개가 스캔들의 당사자들과 스캔들을 조장하고 기사화한 언론의 싸움으로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히루타라는 변호사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히루타의 이야기로 반전됩니다. 히루타라는 변호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변호사이고 처음에는 정의감에 불타는 반골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번 고소사건은 절대로 질 수 없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비치기도 합니다.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피고소인인 '아무르'의 발행인을 찾아가 포기할 것을 종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발행인측이 거물급 변호사를 고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그때부터 사기가 급격히 꺽기고 맙니다. 이런 히루타의 변화를 놓치지않은 발행인은, 히루타에게 불치병을 앓고 있는 딸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히루타를 돈으로 매수하여 재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려 합니다.

여기서 영화는 히루타의 심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양심'에 관한 영화인 것입니다. 히루타는 법률대리인으로써의 사명과 아버지로써의 부성애 사이에서 심각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는 딸의 병수발을 위해 거금이 필요한 히루타는 결국 발행인으로부터 10만엔짜리 수표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양심을 뒤흔드는 일로써, 만취한 상태에서 딸에게 "아빠는 악당이야. 내가 제일 혐오하는 사람, 그 사람이 곧 나 였어"라고 오열합니다. 결국 히루타는 재판 과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이러한 그의 소극적인 태도는 재판 결과의 향방이 아오에와 사이조에게 점점 불리하게 작용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다가 히루타의 딸이 숨을 거둡니다. 자신의 양심을 끝까지 믿어준 딸이 죽자, 히루타는 심경에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 심리가 진행되자 히루타는 자기 자신을 원고측 증인으로 세우고 매수 사실을 증언하며 10만엔짜리 수표를 증거로 제출합니다. 결국 이 결정적인 증거로 인해 재판은 아오에와 사이조의 승소로 끝납니다. 히루타의 양심이 승리를 거두는 순간입니다.

영화의 내용만 가지고 보면 큰 울림을 주기에 무난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구성은 다소 허술합니다. 무엇보다도 히루타의 심적인 갈등의 원인과 결과적인 변화의 과정이 다소 뜨금없이 진행됩니다. 초반의 빠른 편집으로 진행되던 경쾌한 템포는 히루타가 피고측을 찾아가는 지점부터 급격히 하락합니다. 게다가 히루타가 매수되는 과정에서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보니 이후의 심적인 갈등에서 관객들은 감정의 동질화를 느끼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다보니 중반부터는 지루해지고 재판 과정에서도 설득력이 부족하여 극의 긴장감을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매수되는 과정을 좀 더 디테일하게 다루고 아오에와의 재판 준비 과정이라든가 딸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디테일한 에피소드들을 채워넣었더라면 감정이입에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영화이긴 하지만 미후네 도시로의 30대 시절 훈남스타일을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양심'에 관한 휴머니즘적 테마를 경쾌하면서 훈훈한 드라마로 기억될 수 있는 '소품'임에는 부인할  수 없을 듯합니다. 

향유인
향유인

안녕하세요. 인문, 철학, 역사, 영화, 음악, 문화 전반, 사는 이야기 등에 관심이 많은 아마추어 논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