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xico_2017

Cancun, Tulum/Coba, Chichen Itza/Ek'Balam, Mayapan and Uxmal/Kabah/Sayil/Xlapak/Labna, Mexico, November 22nd~27th, 2017 [5th day] : Uxmal, Kabah, Ruta Pu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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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3.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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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탄

북아메리카(북미) > 멕시코

기간:2017.11.22 ~ 2017.11.27 (5박 6일)

컨셉:나 홀로 떠나는 여행

경로:MeridaUxmalKabahRuta PuucMerida

 

실질적인 이번 멕시코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 다음날은 칸쿤으로 이동해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만 타는 일정이었으니까. 11월 26일이고, 일요일이고, 연말 잠시 귀국의 25일전이었고, 난 늙었고...아 젠장.


오오 어쨌든 제시간에 대견하게도 재까닥 일어났다. 아니지 사실 여섯시에 일어나서 근처에 아침을 하는데가 있으면(오다가다 보니 24hr 맥날도 있고 하길래) 간단히 아침식사도 하고 뭐 그러려고 했는데 침대에서 좀 더 밍기적대다가 일어났다. 인기 여행지중의 하나인 Uxmal을 오픈시간에 맞춰가야 했기 때문에 열심히 씻고 준비하고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서 출발.


이번에도 역시 우려했던 도로 사정은 쾌적했고-메리다를 조금 벗어나자 고속도로(그걸 대체 고속도로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는 편도 1차선이긴 했어도-정말 거짓말처럼 Uxmal의 주차장에 주차를 한 것이 딱 8시였다.





헤헤헤~이번 여행의 목적 No.2(No.1은 당연히 치첸 이트사)였던 Uxmal. 욱스말이라고 읽고 싶지만 실제 발음은 우쉬~말에 가깝다고 하는데 뭐 이름의 발음따위 아무려면 어때. 하면서 잰 걸음으로 티켓을 사고 유적의 초입에 이르렀다. 근데 입구의 지붕이 흡사 다카야마 근교에 있는 시라카와고의 갓쇼즈쿠리 양식을 닮아 있었다. 각도는 갓쇼즈쿠리 쪽이 훨씬 예각이지만.




들어가자마자 딱! 맞닥뜨리게 되는 마법사의 피라미드(Piramide del Adivino). 이런 형태를 가진 건 마얀 월드에서 딱 이거 하나밖에 없다. 무려 다섯번의 개축을 거친 이 신전은 개축을 거듭하며 이전의 건물을 완전히 덮는 형태로 건축이 진행되었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마지막 버전인 다섯번째 건축된 신전의 모습이다. 이것도 시멘트를 이용하여 보수를 상당히 한 것이지만 어쨌든 뛰어난 석공술과 건축술이 사용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설에는 이걸 하루만에 난쟁이가 건설했다고도 한다.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전설에서 말하는 건설 방식인데, 피리를 불면 돌들이 저절로 허공에 떠올라 건설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건 볼리비아 티아우아나코의 전승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는데 거기서는 트럼펫 소리가 들리며 돌들이 허공으러 떠올라 건축이 이루어졌다는 얘기다. 이것만이 아니라 아예 대륙이 다른 이집트에도 마술사가 큰 돌들을 마법으로 들어올렸다는 전설이 있다. 이걸 문자 그대로 '피리를 불어 돌을 들어올렸다고?' 하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고,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공학기술을 가진 인간들의 기술을 목격한 것을 그 당시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면 이런 식으로 전승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에 현대의 전투기를 타고 가서 미사일을 한 방 쏜다고 하면 아마 '악마의 새가 지옥에서 나와 불을 뿜는 덩어리를 땅으로 쏘아 수많은 인간들을 죽였다'같은 기록으로 남을 것처럼. 뭐 그건 그렇고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아포칼립스가 초능력으로 돌들을 공중에 두둥실 떠올려 피라미드로 짜맞추는 장면이 영화의 공식 트레일러였는데 브라이언 싱어가 이집트의 전승을 알고 있었을 수도.




피라미드의 뒷면으로 돌아가서 바라본 모습. 이쪽이 피라미드의 정면인 것을 친절히 알려주기라도 하듯 멋진 Chaac의 얼굴들이 줄줄이 계단옆을 장식하고 있다. 아 이거 참 묘하면서도 멋있었어. 계단 바로 옆에 계단의 높이보다 조금 높게 해놓았다면 그건 난간의 용도였겠지만 이건 그렇지도 않으니 오로지 장식만을 위한 것이다. 얼핏보면 비의 신이 아니라 둥그런 눈과 코 덕분에 놀란 코끼리들 같기도 하고 말야.




마법사의 피라미드를 등지고 보면 3면에 각기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어 자연스러운 중정-안뜰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은 Cudrangulo de los Pajaros(Quadrangle of the Birds)이고, 왜 새냐하면 한쪽 건물의 지붕에 새들이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법사의 피라미드에 있는 Quadrangle보다 훨씬 장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Cudrangulo de las Monjas(Quadrangle of the Nuns). 수녀라는 이름은 후대의 Diego Lopez라는 사람이 붙인 작명이고 이 곳의 용도는 사실 그냥 베일에 싸여 있다. 학자들은 이곳을 군사학교나 왕립학교나 왕궁쯤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그런 식의 추측이라면 100개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한마디로, 명문화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스패냐드 들에 의해 마야의 문화나 역사, 다른 지식들이 철저히 파괴된 바람에 그냥 아는 게 쥐뿔도 없는 거다. 아니 군사학교라니. 대체 어떤 군사학교를 이렇게 화려하게 해놓는단 말야. 오래전 내가 군바리 생활을 하던 강원도 두메산골의 부대는 전군에서 유일하게 패치카까지 남아 있는 고대 유적 수준이었는데. 이 정도 규모의 도시국가에서 이런걸 군사시설로 사용했다면 욱스말의 전체 병력을 수용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그런건 어쨌든 이 북쪽의 건물이 가장 화려한 건물이다.




북쪽 건물의 영롱한 자태...여기서도 실컷 놀란 코끼리를 닮은 Chaac의 얼굴들을 볼 수 있다. 계속 보다보니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홀리는 구석이 있는 듯 한데, 이걸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그냥 현장에서 중미의 햇살을 잔뜩 받으며 멍때리며 바라보고 있으면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지도. 사실 이곳은 강수량이 매우 적어 운석충돌로 인해 형성된 cenote 없이는 용수부족에 시달리는 운명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악착같이 깜짝 놀란 코끼리-비의 신인 Chaac을 여기저기서 숭배했는지도 모르겠다. 유카탄 반도의 동쪽에 있는 툴룸, 코바, 치첸 이트사 등에 비해 이 욱스말은 정말 화려하고 장식적인 건축을 자랑하고 있다.




아 거 건물 한 번 너무 이쁘니까, 나도 한 장...




이건 Quadrangle의 서쪽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의 상부를 장식하고 있는 장식들은 군데군데 소실이 있었지만 여기도 장식으로 치자면 만만치 않다. 일곱개의 문을 가지고 있는데 대체 뭘 위한 건물이었을까.




Chaac도 있고, 사람도 있고(사람인 신인지) serpent도 있다. 깃털이 명확히 보이지 않으니 이게 깃털달린 뱀인 쿠쿨칸인지 까지는 모르겠지만. 마름모가 반복된 패턴도 멋지고 말이야.




마야의 도시에 당연히 존재하는 El Juego de Pelota. 욱스말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Chahk'ahk'nalAjaw Chan-챠아크 아크 날 아주 챤???-이 바로 이 경기장의 건설을 명했다고 한다. '야 빨리 경기장 지어!', '알겠습니다 챠아크 아크 날 아주 챤 님....??' 이름 한 번 어렵네. 어려운 이름은 둘째치고 저 ball ring에 다행히 연대가 새겨져 있어 건설된 때를 알 수 있다. 건설시기는 905년.




수풀이 우거진 곳을 헤치고 들어가면 나오는, Grupo del Cementerio(Cemetry Complex). 무덤이라고 이름 붙여졌지만 사실 이 플랫폼들이 뭘 하던 곳이었는지는 역시 모른다. 다만 해골과 뼈를 X자로 교차시켜 놓은 부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을 뿐...어쩌면 치첸이트사의 해골제단처럼 여기도 사실은 전쟁의 포로들이 울부짖는 가운데 사제들이 팔다리를 잡고 우두머리 사제가 돌칼로 갈비뼈 밑을 서걱 쑤셔서 절개한 다음 팔을 집어넣어 심장을 쑤욱 꺼내는 희생의 제단이었을지도.




El Palomar의 모습. 건물의 지붕에 삼각꼴 장식을 얹고 그 가운데에 비둘기-과연 저 모습이 비둘기가 맞나 싶지만-를 장식해 놓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Templo Mayor의 모습. 복원된 것이긴 하지만. 이 주변은 원래 의도적인 파괴가 진행된 상태였는데 고고학자들은 이 위에 더 큰 피라미드를 건설할 계획이었다고 추측한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은 참 대단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인 것 같다. 진실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상태지만, 피라미드의 정상에 있는 건물에는 특이한 X자 패턴 장식이 있었다. 역시 십자가는 카톨릭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어...




또 하나 재미있는 장식을 가진 건물, La Casa de las Tortugas(House of the Turtles). 코니스에 비의 신인 Chaac과 동일시 된 거북이가 조각되어 있는데...거북이의 등껍질은 지구의 지표면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아 이거 정말 재밌는 발상이다.




확대하면 바로 이런 모습이다. 가뭄이 들면 마야인들은 Chaac에게 기도를 했다고. 이건 뭐 조선시대 가뭄때 왕이 나서서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는 원시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매주 로또에 당첨되기를 어떤 신인지도 모를 신에게 빌고 있는 내가 할 소리는 아니네.




또 하나의 장대하고도 인상적인 건물, El Palacio del Gobernador. 건물의 파사드 폭이 거의 100m에 달한다. 물론 이게 통치자의 왕궁이었을지 신전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르긴 하지만 Puuc Style(욱스말 부근의 마야 건축술)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이 건물은 정말 멋졌다.




아유 이 장식 좀 봐봐...놀란 코끼리들이 귀엽게 파사드를 가득 수놓고 있고, 이 건물의 3단으로 이루어진 단에 올라가면 저 멀리 마법사의 피라미드가 멋들어지게 눈에 들어온다.




단의 끝에 가서 조망해 본 욱스말의 전경. 여기가 통치자의 왕궁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에 수긍이 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저녁무렵 술에 취해-뭐 술에 안 취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같은 알콜중독자라면 당연히 술에 취해-자기가 다스리는 도시를 바라보며 한 잔 더 꺾었음직한 멋진 전경이다.




건물 앞에는 플랫폼이 있고, 또 거기에는 이런 재규어 왕좌가(저 재규어 머리 사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는가 봄)...2마리의 상반신이 반대로 붙어 있는 모습인데 이건 정말 소름이 끼칠만 하다. 왜냐하면 동일한 상징이 이집트에도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판은 사자 두 마리가 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집트에서 서로 반대방향을 보고 있는 사자 두 마리는 영원한 현재-eternal now-를 의미한다. 아 너무 철학적이네. 어쨌든 이런 비슷한 상징이 서로 교류가 없는 다른 대륙에서 동일하게 등장하는 것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하나밖에 없다. 동일한 문명 체계가 각기 다른 지역과 시기에 전파되었다는 가설.




이건 Los Falos(남근...)이라는 남근석들이다. 어느 고대문화나 대부분 남근을 숭상해서 이런걸 만들어 댔는데 작금의 우리나라 행태를 보면 참 마음에 안드는...뭐 대놓고 드러낼 필요까지야 없더라도 유교의 잔재 때문인지 너무 점잖은(선비질...)걸 강요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욱스말은 정말 기대를 200% 충족시켜 주었다. 고등학교 시절 읽은 신의 지문 때문에 멕시코에 오고 싶었던 건 3군데 였는데, 그게 바로 테오티우아칸, 치첸 이트사, 욱스말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그 중의 두군데를 갔고...테오티우아칸은 이 여행 후 2018년 2월에 갔다왔지롱. 욱스말에서 나와 차를 몰고 다음 목적지인 Kabah로 향할 차례...인데 가는 도중에 영민한 멕시코의 이동통신망은 불안한 예감대로 사라져 버리고 내 휴대폰은 먹통이 되었다. 구글맵에 의지해서 운전을 하다가 순간 당황...그냥 어설픈 동서남북 감에만 의지해서 차를 몰고 가다보니 다행히 다음 목적지인 Kabah에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Kabah. 욱스말을 제외하면 이 부근에서 가장 중요한 마야의 도시였다.




El Chultun del Dios Chaac. 원형으로 이루어진 이곳의 용도는 바로 우물이었다. 이 아래에는 널찍한 공간이 있고 강수량이 적은 지역특성답게 그 공간에 물을 보관해 뒀다가 필요할 때 길어서 쓰는 용도.




지금은 수풀로 뒤덮였지만 이렇게 부분부분 제단의 벽체가 남아 있는데 거기에는 가득 마야의 상형문자가...물론 지식이 없으니까 그냥 까막눈이라 읽을 수 없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면 문맹의 답답함을 절실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어려웠던 시절 학교를 못다닌 어르신들께서 백발의 머리에 한글을 배우는 심정을 알 것 같다.




그리고 극단적인 외벽장식을 보여주는, Palacio de los Mascarones(Palace of the Masks). 상부는 거의 모두 떨어져 나갔지만 문 옆의 외벽에는 가득 Chaac의 얼굴로 도배를 해놨다.




하지만 위쪽도 모두 놀란 코끼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는 건 건물의 한쪽 끝에 남아 있는 윗단 장식에서 바로 확인해 볼 수가 있다. 특히 물부족에 시달렸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닥치고 Chaac의 매니아가 설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Chaac은 무려 300개에 이른다고. 디자인의 특성상 돌출되어 있는 코가 많이 떨어져 나간 것이 아쉽다.




건물의 뒤편으로 돌아와서 바라본 모습.




이 뒷면이 특이한 건 인간의 전신형상을 거의 쓰지 않은 마야 건축에서 매우 드물게 Atlantes(들보나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을 인간의 형상으로 사용한 것)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엔 사실 기둥의 역할보다는 그냥 장식의 역할을 한 것 같지만. 그것 말고도 다양한 마름모꼴 패턴 장식이나 인물들의 부조등 욱스말에 버금가는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얘네들은 복식도 다른 마야의 도시들보다 화려했을 듯...




그 건물의 왼편에는 El Palacio라고 불리우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왕궁일지 관청일지 뭐일지 무엇에 쓰는 것인지 모르는 상태지만. 특이한 건 fake column을 썼다는 것인데, 기둥을 쓰는 건 공간을 비우려고 쓰는 건데 그냥 벽체에 세로로 기둥 모양을 박아놓았다. 그냥 평평하게 블럭만 쓰는 건 심심하다 생각해서 장식으로 하는 게 fake column의 목적이니 설계자가 심심해서 그런 것 같긴 한데.




El Palacio에서 바라 본 Kabah의 전경. 조금 흐리다가 다시 해가 내리쬐서 기분이 상쾌했다. 비록 온몸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현재의 Kabah는 현대의 도로에 의해 두동강이 나버린 상태다. 도로를 건너가면 예전에는 같은 Kabah의 영역이 계속되고, 그 끝자락에는 이렇게 Corbel arch가 우뚝 서 있었다. 말하자면 도시의 관문인 셈인데 이 길을 주욱 따라가면 한 때 욱스말까지 연결된 Sacbe를 걸어갈 수 있는 길이었다.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던 욱스말이었으니 나중에는 Kabah가 복속되었을지도.


다음은 Ruta Puuc의 세 도시가 남은 여정이었는데 멕시코 이동통신망은 살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띄엄띄엄(정말 너무 매우 많이 띄엄띄엄) 있는 표지판에 의지해서 Ruta Puuc의 세 도시중 첫번째인 Sayil로 향했다. 땀에 절은 지라 에어컨을 풀로 틀어놓고 운전을 하고 있으려니 렌트카의 감사함이 온몸에 전해져 왔다.




​Ruta Puuc의 첫번째 도시인 Sayil. 그리고 그곳의 가장 장대한 건축물인 El Palacio. 론리의 설명에는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을 떠올리게 한다고 되어 있는데 기둥으로 떠받쳐진 방들이 죽 늘어선 모습 때문인 것 같다. 다만 둘 사이의 연대는 자그마치 약 2천5백년...뭐 어쨌든 이 장대한 궁전에는 무려 90개의 방이 존재하고 있다. 도시의 규모로 보면 조금 의아하다 싶을 정도로 큰데, 왕궁이자 관청이자 다른 종합 용도로 쓰였을 지도 모르겠다.





왕궁에서 길을 따라 올라가면, El Mirador와 만날 수 있다. 이 건물은 신전이라고 하는데 모든 마야의 건물들에 대한 설명과 마찬가지로 미심쩍기 그지없다. 닭벼슬을 이고 있는 듯한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Sayil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이런 노골적인 부조를 만났다. 이런걸 볼때마다 우리나라는 유교 탈레반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고주몽과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나고 제주도의 세 왕이 땅에서 솟아날 무렵 콜로세움과 판테온을 건축했던 로마도 성에 개방적인 사회라 그걸 묘사한 수많은 조각과 테라코타상, 프레스코화가 존재하는데...우리나라는 너무 억압하기만 한단 말야. 억압된 욕망은 가장 추한 형태로 드러난다는 칼 융 선생의...얼라 프로이드였나? 하여간.




Palacio Sur(남쪽에 있는 왕궁)라는 이름의 건물. 모양이 왕궁의 1층과 유사한 형태로 되어 있어서 이렇게 이름지은 듯.


Sayil에서 나와 두번째 도시인 Xlapak으로 이동...여전히 통신은 전혀 되지 않고 먹통상태인데 어차피 길은 1차선이니 그냥 닥치고 안으로 안으로 더 들어가면 Xlapak이 나온다.




Xlapak(쉴라팍 으로 발음되던데)에 도착해서 유적으로 들어가는 길. 나무 아래로 어떤 건물인가의 기단부였을 흔적이 남아 있다.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를 하고 있는 Xlapak의 Palacio. 크기는 작지만 Chaac과 기하학 패턴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Puuc 스타일의 교본 같은 모습이다. 아마 Xlapak은 근방의 Kabah나 Sayil의 위성도시쯤 되지 않았을까, 분당이나 일산처럼.




이제는 다 무너져버린, 용도가 짐작도 가지 않는 Xlapak의 건물 잔해.




이제 Ruta Puuc의 마지막이자 이날의 마지막이자 유카탄 반도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Labna만이 남았다. 처음부터 회색으로 칠했을지 노란색이었는데 퇴색한건지 모를 중앙선이 간신히 길을 양분하고 있는데 양옆의 나무와 풀 때문에 이걸 피해서 운전하다보면 마주 달려오는 차와 거의 깻잎 한장 여유밖에 없을 지경...이었지만, 굳이 이 오기 불편한 곳까지 오는 관광객은 거의 없기 때문에 Xlapak에서 Labna로 가는 이 길은 오롯이 차라고는 내가 몰고 가는 차밖에 없었다.




여기가 바로 장대한 왕궁을 가진 Labna인데, 이 왕궁은 Puuc 지방에서 가장 긴 건물이다. 3층의 Sayil에 비해 여기는 부분 2층이지만. 가장 전성기때 인구가 약 3천명이라고 하는데 인구에 비해 도시도, 왕궁도 너무 크다. 저 정도 인구로 이런걸 어떻게 지었지 싶을 정도로.




왕궁의 디테일. 어김없이 Chaac과 Fake Column의 향연이다. 3천명의 인구를 먹여 살리는 우물은 총 60개가 있었다는데, 개수가 문제가 아니고 비가 와줘야 60개의 우물이 제 역할을 했을테니 뭐 기우제가 가장 중요한 행사의 하나였을 듯 싶다.




아~여기서 바라보는 왕궁의 모습은 정말 멋졌다. 쨍한 햇빛을 받고 있는 크림색 건물의 아름다움.




그뿐만 아니라 이 부분의 코너에는 그야말로 독특한 게 있다. 뱀이 입을 잔뜩 벌리고 있는데 그 안에 사람의 얼굴이...이건 바로 금성의 상징이라고 한다. 할 수 있다면 이 얼굴이 새벽녘의 금성을 겨냥하는 시기가 언제인지 알아보고 싶었지만...그런 정도의 천문학 지식은 없으니까 나중에 찾아봐야지.




Labna는 대략 2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고, 왕궁과 마주보는 방향으로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건물군이 있다. 아마 그 사이는 일반주민들의 집들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모조리 소실되어 버리고 잡초만 무성하고 이렇게 왕궁과 남쪽의 섹션을 이어주는 길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왕궁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본 모습. 사람이라고는 오로지 나 하나 뿐이었는데, 난 이곳의 고즈넉하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평화로운 느낌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남쪽 섹션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세워진 El Mirador. 기단부는 피라미드 형으로 되어 있는데 많이 무너져 내려서 원형은 상상해야만 하지만 그 위의 신전은 그나마 보존 상태가 낫다. 그리고 여기도 마야 건축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인물상이 코너를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유카탄 반도에서 본 그 어떤 아치보다 화려한, Labna의 Corbel Arch. 2층 코너에는 어김없이 Chaac의 얼굴이...이쯤되니 이제 Chaac만 보면 친근한 심정이 될 정도.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Labna를 천천히 감상하고 나오는 길. 수령이 수백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를 나무가 드리워주는 그늘이 햇빛을 가려주어 더욱 상쾌했다.




그리고, 유적에서 나와 주차장...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하여튼 렌트카를 세워둔 곳. 나밖에 없었다니까...그래서 더 좋았지.




메리다로 돌아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멕시코식 식사. 크림 차야 스프와 타코였다. 타코는 돼지고기 베이스였는데 역시나 고기취향이 아닌 나는 그냥 그랬고, 스프가 훨씬 좋았다.




그렇게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의 마지막 밤...은 코로나로 장식. 멕시코의 마야 유적을 가야지! 라고 마음먹은지 20년도 더 지나서 드디어 여행을 했다는 사실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뿌듯한 행복함으로 나를 채워줬다. 이런걸 보면 미국에서 잠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다음날은 다시 칸쿤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내 생애 첫 멕시코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행운아
행운아 세계여행

rainy spell in sum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