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또다른 이름-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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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1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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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시골에서는 결혼한 아주머니를 댁호로 불렀다.

영산댁, 함평댁, 대모댁, 나주댁, ...

우리 고향에서는 "댁"보다는 "땍"이나 "덕" 심한 경우 "떡"으로 발음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선 택호, 궁궐에선 궁호, 일반인은 댁호로 불렀다는데 여성에 대한 작은 존중의 의미로 이름대신 불렀다고 한다.

이런 댁호는 그 여성의 출생지 혹은 친정 집 가문을 기본으로 붙였는데 여기에도 약간의 규칙이 있었던듯 하다.

첫째. 한 동네에서는 같은 댁호를 쓰지 않는다.

둘째. 가까운 동네에서 시집온 경우에는 그 동네 이름을 붙이고, 먼 동네에서 시집온 경우에는 그 지역 이름을 붙여준다.
예를 들면 우리 동네 옆 동네에는 서원(엉굴), 오륜(오롱굴), 안영(안양굴), 죽곡(대실)이 있는데 그 동네에서 시집오신 분들을 엉굴댁, 오롱굴댁, 안양굴댁, 대실댁이라고 불렀다.
조금 먼 운봉, 영산포, 나산, 나주에서 시집오신 분들은 운봉댁(큰어머니 댁호), 영산댁, 나산댁, 나주댁으로 불렀다.
더 먼 함평, 광주, 무안, 목포에서 시집오신 분들은 함평댁, 광주댁, 무안댁, 목포댁으로 불렀다.

세째. 같은 동네에서 시집온 사람끼리는 주민들이 서로를 구분할 수 있도록 기발한 댁호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물론 이 댁호는 본인이 정하기보다는 주민들의 합의에 의해서 불렸던 것 같다. 시집오면 일정기간은 새댁으로 부르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마을 주민들이 댁호를 불러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그배우자를 아내의 댁호에 따라 "~~양반"으로 불렀다. 안양굴양반, 함평양반, 나줏양반, 영산양반, ...

그런데 이런 방식은 서양과는 정반대다. 서양에서는 결혼하면 여자의 성이 남자의 성으로 바뀐다. 예를 들어 이번 미국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진 힐러리의 결혼전 이름은 힐러리 다이앤 로댐(Hillary Diane Rodham)이었다. 그녀가 제42대 대통령을 지낸 빌 클린턴과 결혼하면서 힐러리 다이앤 로댐 클린턴(Hillary Diane Rodham Clinton, 문화어: 힐러리 클린턴)으로 부른다. 힐러리 같은 경우에는 결혼전 성인 로뎀을 그대로 두고 뒤에 남편성인 클린턴을 덧붙여서 부르지만 공식석상에서는 힐러리 클린턴라고 부른다. 즉, 성이 로뎀에서 클린턴으로 바뀐 것이다.

어려서 우리 어머니를 대야댁이라 불렀다. 그런데 어머니의 고향은 함평군 학교면 월호리 배야였고 우리집은 나주군 문평면이었기 때문에 함평댁이나 학교댁으로 불렸어야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할머니가 함평군 학교면 학교리 이암마을에서 시집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이암댁, 어머니는 배야댁으로 부른 것이다. 그리고 또 우리마을에는 이미 함평댁이라는 분이 우리 어머니보다 일찍 결혼해서 살고 계셨던 것도 우리어머니가 배야댁으로 불리게된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어머니의 고향과 우리집이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군의 경계에 있어서 서로 주민들의 왕래가 잦아서 마치 같은 지역처럼 느껴져서 그렇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걸어서도 왕래할 정도여서 서로 시집가고 시집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큰고모가 그동네로 시집갔었고, 그동네 살던 우리 어머니를 중매했다고 한다.

그런데 배야댁으로 불려야할 우리 어머니의 댁호가 어떻게 대야댁으로 바뀌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 우리지역의 언어적 특징으로 그렇지 않았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결혼한 여성을 부르던 댁호에는 여성의 결혼전 살던 동네나 고향을 잊지말라는 선조들의 깊은 뜻과 배려가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돌아가신지가 오래된 할머니와 어머니의 고향을 알아낼 수도 있으니 말이죠.

파란색 위치가 어머니 고향 배야마을, 보라색이 할머니 고향 이암마을, 빨간색이 우리집


그럼 나는 우리 집사람을 뭐라 불러야하나.
고창댁? or 흥덕댁?

여러분의 주변 여성들은 어떤 댁호로 불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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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
수세미

철덕 아들&공주 딸 키우는 맛에 사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