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심리/예술

조선시대에는 죄를 지은 자를 어떻게 처벌했을까 /책, 조선 사람의 내면을 말하다

프로필
위즈덤하우스 공식블로그

2016. 12. 26. 16:25

이웃추가

조선시대에는 죄를 지은 자를 어떻게 처벌했을까


요즘 청문회에 출석한 범죄자 집단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지상 최대의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어지러운데 저토록 뻔뻔한 얼굴이라니


 

조선시대 형벌을 가져와 볼기짝을 두드리고 주리를 틀며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외치고 싶은 요즘입니다.

볼기짝을 때리는 태형, 다리를 묶고 주리 틀기, 저잣거리에 죄인을 직접 끌고 다니기, 목을 베는 참형 등 범죄에 대해서만큼은 지금보다 조선시대가 더욱 가혹하게 대처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인권 개념이 없었던 탓이 큽니다).


좌)태형     우)주리틀기


좌) 저잣거리에 죄인 끌고 다니기 우)망나니에 의한 참형


조선시대 기록인 추안급국안을 보면, 당시 중범죄자들의 진술과 처리과정, 그가 받은 형벌 등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를 놀라게 한 국정농단 사건들과, 그것에 단호히 대처했던 기득권들의 태도 등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갑신정변 당시 정변을 일으킨 당사자인 김옥균흉학한 죄로 치부해 부관참시를 당했고, 그의 부인과 딸은 노비가 되었으며,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고 김옥균을 따르던 하인 이점돌마저 김옥균의 명으로 불을 지른 죄로 참형을 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좌)김옥균   우)김옥균 암살 당시 일본의 어느 신문사에 실린 삽화



이처럼 큰 역모를 일으키려 모반한 당사자일 경우에는 그의 주변인, 그리고 자손까지 해를 입었습니다.

역모보다 죄목이 낮으며, 당사자가 지체가 높은 경우에는 그의 몸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 형벌, 즉 사약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조광조는 중종 임금에게 소격서 폐지를 강조하다가 임금의 미움을 받아 사약을 받았습니다. 그는 소격서가 폐지될 때 임금에게 이야기합니다.

실로 감격이 큽니다. 단지 소격서를 폐지한 일 때문에 이토록 기뻐하는 것은 아닌 줄을 임금은 아시겠습니까?”

그의 흔들림이 없는 말투와 단호한 성격은 임금의 역린을 건들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임금은 13개월 후에 그에게 이 치욕을 수십 배로 되갚습니다.

이는 사실 조광조가 자신이 생각하는 성리학 나라를 이루기 위해 임금에게 끊임없이 근사록을 강요할 때부터 이 사단은 예상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좌)조광조   우)근사록



사약으로 목숨을 빼앗을 만큼 큰 죄가 아닐 경우에는 고향으로 유배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관직에 나가 뜻을 이루는 것을 가장 큰 집안의 업적으로 여기는 조선시대에 유배를 당하는 것은 치욕스러운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이항복은 인목대비 폐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올린 죄로 북청으로 유배를 떠난 바 있습니다. 유배 당시 그의 모습은 백사선생북천일록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의정까지 지냈건만 집안에는 말린 밤과 뻣뻣한 차뿐이고, 아들의 혼례에 면포 두 상자밖에 못 보냈으며, 중풍까지 찾아와 탈진에 이릅니다.  이에 이항복은 자리에 누워 이렇게 말합니다.

동강에는 지금쯤 푸름이 가득하겠구나.”

그가 얼마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랐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항복



조선시대 인물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 책, 조선 사람들이 형벌을 받으면서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이,

오늘날까지 그들의 삶과 심중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참고도서: , 조선 사람의 내면을 읽다

책, 조선 사람의 내면을 읽다

책, 조선 사람의 내면을 읽다

작가
설흔
출판
위즈덤하우스
발매
2016.12.30.





http://bit.ly/1SjyQ3n

http://bit.ly/1TtLvls


 


위즈덤하우스
위즈덤하우스 공식블로그 문학·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