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개와 진돗개, 혈통이 뭐시 중헌디

2017.03.19 18:00
[과학기자 문화산책]

살면서 포털에 이렇게 ‘진돗개’라는 말이 많이 오르내리는 일을 본 적이 없다. 대체 15~20kg 남짓한 그 작은(?) 개는 전생이 뭐였길래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되는지도 궁금하다. 파란집에서 말하는 전 대통령이 개에 대해 남겼다는 워딩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부모 개 한 쌍을 포함한 4마리는 혈통보존협회로 보내졌다.

 

기자네 개는 진돗개지만 진도개는 아니다. - 오가희 기자 solea@donga.com 제공
기자네 개는 진돗개지만 진도개는 아니다. - 오가희 기자 solea@donga.com 제공

 

● 진도에서 태어난 진돗개에만 붙여지는 이름 ‘진도개’

 

진돗개, 진도견, 진돗개…. 같은 듯 다르게 불려지는 이름. 한국 고유의 토종견으로 누구나 진돗개의 특징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품종이지만 복날 가장 먼저 희생되는 모순적인 개다. 유기견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진도믹스(진돗개인듯하나 이런 저런 품종이 섞인 듯한 개)’라는 말도 있다. 하얗고 작은데 털이 곱슬곱슬하면 푸들, 직모면 말티즈, 까맣고 누런 털이 섞였는데 털이 길면 요크셔테리어라고 부르는 것처럼 진돗개처럼 생겼으면(?) 진돗개라고 부르는듯하다.

 

진돗개의 품종 중 일부는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정확히는 ‘진도개’의 혈통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우리나라 고유의 품종은 진돗개, 풍산개, 삽살개, 경주개 정도인데, 꼬리가 없는 경주개와 온몸에 털이 북실북실한 삽살개를 제외한 진돗개와 풍산개는 ‘순수 혈통’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품종 관리가 엉망이다. 풍산개의 경우 원산지가 북한인만큼 우리나라에 들어와있는 풍산개가 진짜 풍산개인지 알 방법도 없다. 유일하게 풍산개라고 확인할 수 있는 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선물 받았던 한 쌍 뿐이다. 그 마저도 그 한 쌍은 이미 세상을 떴다.

 

진돗개는 진도라는, 육지와 분리된 섬에서 진화한 개다. 1938년 조선총독부의 ‘내선일체’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자는 제안 때문에 알려졌다. 의도는 불순했을지언정 어쨌든 덕분에 섬에 갖혀 있던 훌륭한 견종이 알려졌다. 그리고 현재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현재 진도의 진돗개들은 ‘한국진도개 보호‧육성법(약칭 진도개법)’하에 관리되고 있다.

 

진도개는 실제로 진도에서 태어난 진돗개 중 진도군수가 고시한 혈통과 표준 체형을 가진 개를 말한다. ‘진도산’이 중요한 것.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만큼 반출과 반입이 매우 까다롭다. 반출/반입과 관련되서는 진도개법 제11조에서 설명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① 진도개들은 성장하면 진도군수가 진돗개심의위원회를 심의를 거쳐 고시한 혈통 및 표준 체형을 인증받는다.
② ①을 만족하지 못한 진도개는 보호지역 밖(=섬 밖)으로 반출된다
③ ①을 만족하는 개는 보호지역 밖으로 반출할 수 없고, 대신 보호지구의 진돗개 개체 수 상황에 따라 문화재청장의 허가와 진도군수의 허가를 받으면 반출이 가능하다.
④ 진도에 들어갈 수 있는 개는 ①을 만족한 진도개만 가능하며 진도개 연구를 위해 필요한 개나 중성화 수술을 한 개, 진도개품평회 참가 개에 한해 군수의 허가를 받아 반입할 수 있다.

육지에서 진돗개들이 어떻게 혈통 관리가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진도개’는 아주 까다롭게 관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 진도로는 갈 수 없는 새롬이와 희망이

 

2017년 3월 17일자 동아일보의 보도(☞주민 선물인줄 알았는데… 박근혜 前대통령의 진돗개는 ‘취임준비위 작품’)와 같은 날 뉴시스의 보도(☞朴진돗개 '주민선물' 강남구청 개입해 대책회의까지)에 따르면 새롬이와 희망이는 한국진도개혈통보존협회를 통해 구입했고, 현재는 새끼 중 두 마리와 한국진도개혈통보존협회 종견장으로 옮겨졌다. 청와대는 남은 5마리도 관련 혈통보존단체로 보낼 것이라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일부 동물보호단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체에 개를 보낼 경우 오로지 번식만을 위한 종견으로 전락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한국진도개혈통보존협회에 대해 찾아보면 홈페이지도, 연락처도 없고 일부 정보 사이트를 통해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이라는 정보만이 나온다. 

 

* 기사가 나간 뒤 한국진도개혈통보존협회와 연락이 닿아 기사 일부를 수정합니다. 한국진도개혈통보존협회는 1989년에 설립된 문화재청 소관의 사단법인으로 진돗개 혈통 보존을 위해 창설된 단체입니다. 현재 경기도 광주에 998평 넓이의 종견장을 두고 28마리 개가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차라리 진돗개이니 진도로 갈 순 없는 걸까.

 

진도. 모든 ‘진도개’의 고향. 사람이라면 문제없지만 개라면 나오는 것도, 들어가는 것도 어려운 곳이 진도다. 진도에서 정식으로 반출되는 개는 더 이상 진도에 있을 수 없는, 기준에 못 미치는 개이거나 개체수 조절을 위해 문화재청장과 진도군수의 허가 하에 반출되는 일부 진도개다. 진도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가기 어렵다. 따라서 새롬이와 희망이가 진도에서 태어났고, 문화재청과 진도군수의 허가 하에 반출된 개가 아니라면 진도로 가긴 어렵다.

 

● 행복하면 됐지 혈통이 뭐가 중요할까

 

청와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진돗개 혈통을 잘 보존하고 관리해 달라’고 부탁하고 떠났다고 말한다(박전 대통령이 아무런 언급없이 떠나 분양이 안되면 보호소로 보낼 예정이라고 말한 것도 청와대의 워딩이다). 그 혈통이 어떤 혈통이길래 잘 보존하고 관리해달라는 걸까. 어떻게 하는 것이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일까.

 

개는 개다. 종족을 남기고 번식하는 일이 본능이지만 그들이 ‘혈통’을 따지지 않는다. 개의 행복은 간단하다. 주인 곁에서 신체 한 부위 붙이고 햇볕 받으며 낮잠을 자는 것이 그들의 행복이다. 새롬이와 희망이를 둘러싼 일말의 소동을 보며 일러스트를 보고 집어 들었던 책 두 권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쿠니노이 아이코가 지은 ‘우리집 마당의 개’와 다카기 나오코가 지은 ‘우리집 무쿠, 못 보셨어요?’다.

 

쿠니노이 아이코의 ‘우리 집 마당의 개’와 타카기 나오코의 ‘우리집 무쿠, 못 보셨어요?’ - 알라딘 제공
쿠니노이 아이코의 ‘우리 집 마당의 개’와 타카기 나오코의 ‘우리집 무쿠, 못 보셨어요?’ - 알라딘 제공

 

책에 등장하는 개들은 일본의 토종견 시바 믹스로 추정된다. 이런 저런 일본의 개 이야기 책을 보고 있다면 우리나라에 진도 믹스가 많은 것처럼 시바 믹스도 많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하나 같이 이 ‘믹스’들을 사랑한다. 믹스라고 ‘순혈’ 혹은 ‘순종’과 다를 것은 하나도 없다. 낯선이를 보면 경계하고, 가족을 보면 꼬리를 치며, 맛있는 것을 좋아한다.

 

쿠니노이 아이코는 저자의 말에서 이런 후기를 남겼다.

 



이 만화는 믹스견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코로 킁킁 냄새를 맡고 산책을 가는 유쾌한 이야기입니다.

…생략…

결과적으로 “개는 참 사랑스런 동물이구나”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그린 사람으로서 너무너무 기뻐서 제자리에서 세 바퀴 돈 다음 멍하고 짖을 겁니다.


 

개와 함께 해본 사람은 안다. 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충성스러우며 주인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을 말이다. 수십만, 수백만 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혈통서 있는 순종이나 어느 날 내 뒤를 쫄랑쫄랑 쫓아온 더러운 강아지도 모두 똑같다.

 

‘우리 집 마당의 개’의 한 장면. 개가 하는 것은 이게 전부다. 그러나 등을 빌려주고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 알라딘 제공
‘우리 집 마당의 개’의 한 장면. 개가 하는 것은 이게 전부다. 그러나 등을 빌려주고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 알라딘 제공

 

혈통? 대체 그것이 뭐가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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