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과학용어] ⑥커뮤니케이터들도 어찌할 수 없다...설명 부족한 용어들

2022.12.08 15:27
동아사이언스는 지난달 8~15일 국내 정출연과 의료기관 총 29곳 홍보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동아사이언스는 지난달 8~15일 국내 정출연과 의료기관 총 29곳 홍보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연구기관과 대중의 소통을 돕는 연구기관 보도자료 작성자들은 어려운 과학용어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개념 자체가 어려워서' '우리말 대체어가 없어서' '너무 어려운 한자 표현이라' 등 다양한 고충을 토로했다.

 

새로운 과학기술 용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은 과학기술자가 대다수 구성원인 연구기관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KAIST 등 과학기술원 등이 대표적이다. 연구기관은 소속 연구자들의 새로운 연구성과를 '보도자료'라는 형태로 만들어 언론에 배포한다.

 

동아사이언스는 지난달 8일부터 15일까지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 및 의료기관 29곳에 근무하는 과학자들의 연구성과 보도자료 작성 담당자 45명을 대상으로 '과학·의학기술 연구성과 보도자료 작성에서 전문용어에 대한 고려사항'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용어 설명하다 또 다른 용어 설명…고유명사 설명하기 어려워

 

대중에게 전달해야 하는 새로운 과학기술 용어를 연구자로부터 가장 먼저 접하는 이들은 연구기관 홍보 담당자다. 한달 평균 4.9건의 연구성과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이들은 지난 1년간 작성한 보도자료 중 '우주' '소재' '양자' 등 분야 용어에서 설명이 부족해 아쉬웠다고 답변했다.

 

 

올해에는 6월 한국형발사체(KSLV-II·누리호) 발사, 8월 한국형 달 탐사선 다누리 발사 등 우주산업에 대한 관심이 유독 많았던 만큼 우주산업 관련 보도자료도 쏟아졌다. 새롭게 다뤄지는 우주 분야에 대해서는 쉬운 표현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고민 없이 그대로 옮겨지는 경우가 있어 아쉬웠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 담당자는 "'탑재체'는 위성에 장착되는 임무 장비를 일컫는 말인데 개발 관점에서는 위성 본체와 탑재체를 구분해 사용하기 때문에 당연시 되는 용어라고 생각해 쉬운 표현으로 대체 없이 보도자료에 그대로 옮겨져 온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용어의 어려움은 천문학 분야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어려운 물리현상을 다뤄야 해 '중력렌즈' '퀘이사' '광도곡선' 등 유독 어려운 영어식 표현이 많은 분야다. 한 응답자는 "실험 방식 및 결과 해석이 난해해 홍보팀 내에서도 관련 내용을 완벽히 숙지하기 어려웠다"며 "이론천문학 특성상 대중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이미지 및 영상도 다른 분야에 비해 부족해 용어를 설명하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하나의 용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어려운 용어가 등장하는 문제도 있었다. 한 응답자는 "'퀘이사'의 경우 용어를 설명하는 과정에 '활동성은하핵'이라는 또 다른 용어를 설명해야 하기도 했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어려운 용어지만 고유명사처럼 쓰여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멤트랜지스터' '나노베지클' '고망간(Mn)강' 등 전자·소재 산업에서 이런 사례가 여럿 있었다. 일례로 '고망간강'의 경우 단어를 직역하면 아주 센 망간 스틸이라는 의미인데 그 자체로도 대중에게 와닿기 어려운 개념이다.

 

 

이미 형성된 언어에 대한 편견이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한 응답자는 "대중은 뉴스에서 차량용 반도체 등으로 '반도체 칩'에 대한 이미지가 각인된 반면 보도자료에는 '반도체 재료·소자'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 '칩'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전체적인 전달이나 용어 설명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양자'도 마찬가지다. 한 응답자는 "방송 예능이나 영화 제목으로 쓰이다보니 대중은 양자역학을 그저 '어려운 물리학의 세계'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보도자료를 쓰는 입장에서도 이런 부분을 설명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라고 전했다.

 

● 우리말로 옮겨지지 않은 외래어, 이해가 어려운 한자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전문용어도 난감하다. 이전에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전문용어의 경우 직역을 하게 되면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음향 연구에서 사용되는 특수 마네킹 ‘케마(KEMAR, Knowles Electronics Manikin for Acoustic Research)’는 우리말 대체어가 없다. 직역하면 ‘음향 연구를 위한 놀스 마네킹’인데 오히려 의미가 더 헷갈려진다.

 

건축 공법인 ‘프리캐스트 공법’ 역시 최근에 도입된 기술로 우리말 대체어가 없다. 반도체 공정에서 쓰이는 증착 방법인 ‘스터터링’이나 위성영상의 검출 정밀도와 재현율을 결합한 지표를 뜻하는 ‘F1 스코어’도 번역이 쉽지 않다.

 

한 담당자는 “전자산업에서 쓰이는 전문용어 ‘ECR’은 직역하면 ‘전자 사이클로트론 공명’인데 우리말 대체어도 쉽지 않게 느껴진다”며 “영어이면서 우리말로 대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는 대부분 별도의 설명을 표기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외래어뿐만 아니라 한자어도 이해가 어렵거나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물이 흐르는 하천 구간이란 뜻의 ‘제외지’는 일반적으로 어떠한 기준에서 제외되는 지역이란 의미로 사용되지만 수자원하천분야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전문용어로 사용되면서 통용되는 뜻이 변화했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하다.

 

하천 등에서 부영양화를 나타내는 지표인 ‘총인’은 너무 생소한 한자어다. 관련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은 뜻을 알기 어렵다. 담당자는 “‘총인’의 경우 인에 대한 정의와 어떤 원리로 부영양화로 폐수에서 인의 값이 높아지는지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용어였지만 보도자료 분량을 고려해 충분한 설명을 표기하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광열 기반 고속 열주기 기술’은 얼핏 보면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역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로 꼽혔다. 광열과 열주기 기술이 무엇인지 정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 화학용품의 부식작용을 활용한 표면가공 공법인 ‘식각’이나 뇌 속 구조의 한 부분인 ‘선조체’ 등도 한자어이면서 곧바로 이해가 어려운 단어로 언급됐다. 


● 아직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거나 ‘너무 어려운’ 용어들

 

 

전문용어 중에서는 학계에서 아직까지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용어도 있다.

 

화학연구분야의 용어인 ‘막 결합형 축전식 탈염(MCDI, Membrane Capacitive Deionization)은 유력 국제학술지에서도 정확한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다. 이 용어를 전한 홍보 담당자는 “MCDI란 용어는 국제학계에서 합의된 정의가 없었기 때문에 기관의 관련 연구 특성에 맞게 용어를 정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에 따라 ’전기적 위치 에너지가 있는 상태에서 수용액 중의 음이온들은 (+)전극으로, 양이온들은 (–)전극으로 이동시켜 전기적 흡착에 의해 이온들을 분리하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입자의 전기적 성질을 이용하는 정전선별 기술인 ’코로나방전형정전선별‘도 명확한 정의가 제시되지 않은 용어에 해당한다. 이 용어를 꼽은 담당자는 “장비 설명서에 나온 내용이나 연구자의 주관적인 기준에 의한 설명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전문용어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관련 분야 전공자들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을 설명해야 할 때 홍보 담당자들은 고민에 빠진다.

 

한 담당자는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볼츠만 분포‘라는 개념을 경제학의 분배 문제에 적용한 사례를 소개해야 했는데 비전공자는 단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리튬이 나뭇가지 모양으로 성장하는 모양인 ’수지상 결정‘은 용어가 생소할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으로 설명이 쉽지 않다. 담당자는 “개념이나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현상 등을 일반인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데는 항상 한계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결맞음 반스톡스 라마 산란(CARS, coherent anti-Stokes Raman scattering)도 비전공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로 꼽혔다. 형광 염색 없이 물질의 고유 진동에너지를 이용해 서로 다른 화학 성분의 미세입자를 동시에 영상화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풀어 설명했는데, 쉬운 설명을 만들어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전언이다.

 

’분지사슬아미노전달 효소1(BCAT1)’은 용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다른 전문용어가 사용돼 설명이 힘든 사례로 소개됐다. 담당자는 “‘분지사슬아미노산(BCAA)의 아민기를 α-케토글루타르산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함’이라고 부가 설명을 했지만 쉽고 간략하게 풀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조사에 응한 담당자들은 용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연구자들이 학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를 그대로 전해 추가적인 ‘공부’가 필요한 상황도 있었다.

 

한 담당자는 “해외 의학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작성할 때 의료진이 넓은 범위의 질환명만을 보내온 경우가 있다”며 “전문가는 이 질환명 중 어떤 세부질환이 해당하는지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일반인들에게 연구결과를 정확히 설명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아 더 정확한 질환명을 찾기 위해 논문을 찾아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 이 프로그램은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운영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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