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연구] 李康哲前 청와대 시민사회首席 : 월간조선

참여정부에서 「소총리」, 「왕특보」라는 별명을 얻은 李康哲(이강철·58) 前 청와대 시민사회首席(수석)은 평생을 모난 돌처럼 정을 맞아 오다 말년에 운이 조금 풀렸다.

그는 청년 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감옥에서 7년 8개월을 보냈다. 朴正熙 정권 이래 평생 在野(재야)인사로 변변한 직업 없이 살았고, 선거 때마다 낙선을 밥 먹듯 했다. 4전4패. 在野인사 하면 으레 잿빛 한복 두루마기가 생각나는데, 그 역시 다르지 않았다. 보수성향이 강한 대구·경북에서 도포 자락 휘날리며 출마했으니 당선될 턱이 없었다.

친구들로부터 『철아, 니 와이래 고생하며 사노』 라는 말을 들을망정, 풀죽어 지내는 법이 없었다. 야생마처럼 거칠게, 고집스레 살았다.

李前 수석을 만나기 위해 지난 10월7일 오전 대구行 기차를 탔다. 그는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 자리를 8개월 만에 내던지고 10·26 재·보궐 선거에 나선 상태였다. 인터뷰 요청을 석 달 전부터 했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를 안 하겠다」는 답도 없이 그냥 묵묵부답이었다. 그게 그의 스타일이다.

대구시 동구 방촌동 사무실에서 만난 李前 수석에게 「恨풀이 하려고 또 출마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출마를 盧武鉉 대통령이 말렸다고 한다. 그가 사표를 건네자 盧대통령은 『떨어질 거 뻔히 알면서 뭐 할라고 출마하려 하느냐』고 핀잔까지 줬다고 한다. 李前 수석은 고집을 피웠다.

『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해볼랍니다』

―盧대통령이 출마를 반대한 이유가 뭡니까.

『한나라당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지역에 출마한다고 하니 盧대통령도 기가 막혔을 겁니다. 사실 盧대통령이 부산에서 번번이 낙선한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낙선의 아픔은 정말 떨어져 본 사람만 압니다. 그래서 「어려운 곳에 왜 뛰어드느냐」고 하시더군요. 시민사회수석 담당인 公共기관 이전 지역 선정, 방폐장 부지 선정 등 큰 사회 이슈를 풀어 가야 하는 시점이어서 더 아쉬워하신 것 같아요』

盧대통령과 李前 수석은 20년이란 긴 세월의 끈으로 묶인 사이다. 눈빛만 봐도 속내를 알 수 있는 처지란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면 딱히 별 말이 없다고 한다. 스스로 「傳說이 없는 지도자」라고 자처한 盧대통령 곁에 여러 참모들이 있었지만, 李前 수석은 인연의 깊이에서 격이 다른 참모다.

『권력의 절반을 주겠다』

1990년대 중반 어느 행사장에서 李康哲과 盧武鉉.

李前 수석은 1992년 15代 총선 이후 盧武鉉과 정치적 시련기를 함께 보냈다. 2002년 大選에서는 盧武鉉 후보 조직특보를 맡았었다.

盧대통령은 여러 차례 『李前 수석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했다.

기자는 2002년 6월 盧武鉉 후보, 李康哲 특보 등과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盧후보는 李康哲 특보에게 『대통령이 되고 나면 권력의 절반을 주겠다』고 했다. 盧후보의 말에 기자는 깜짝 놀랐고, 李특보의 얼굴은 붉어졌다.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盧후보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 진지했다.

기자는 「盧武鉉 후보가 兩金처럼 제왕적인 대통령 권력에 집착할 생각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그가 그만큼 「인간 李康哲」에게 마음의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이후 盧대통령이 여러 차례 『대통령 자리를 걸겠다』, 『대통령 권한을 다 내놓겠다』는 발언을 했을 때마다 문득 당시의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李前 수석은 지난 1월25일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에 임명될 때까지 아무런 자리가 없는 백수 신세였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말이 줄곧 따라 다녔지만, 盧대통령은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 지난 17代 총선을 앞두고 열린당 영입추진단장을 맡은 게 전부였다.

―盧대통령이 취임식 다음날인 2003년 2월26일 열린당 廉東淵(염동연) 의원과 李前 수석을 불러 식사를 함께 하면서 『두 분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었다. 결코 잊지 않겠다』고 했다던데.

『특별히 다른 이야기를 하기보다, 어려울 때 風餐露宿(풍찬노숙)하던 시절에 대한 격려였어요. 서로 고생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10여 년 전부터 왜 盧대통령을 「대통령감」으로 생각하셨습니까.

『일종의 대리만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정치역정은 기구한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1988년부터 대구에서 네 번 나와 모두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盧統」(그는 盧대통령을 그렇게 불렀다)은 당시 5共 청문회 스타로 성공한 편이었습니다. 비록 부산 선거에서 떨어졌다 해도 통합민주당 전당대회에서 權魯甲 다음인 5등을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실패했지만, 盧武鉉을 통해 사회변혁을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1990년부터 정당생활을 같이 하며 느낀 신뢰도 한몫 했어요. 정치인들이 신문에 자기 이름을 내려고 이런저런 虛言을 둘러 댔지만, 盧대통령이 「거짓 쇼」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한 약속도 꼭 지켰어요.

당시 兩金이 남긴 후유증인 1人 보스 중심의 권력체제 극복이 정치권의 큰 화두였습니다. 특정계보와 지역기반에 얽매이지 않고 신념과 의지를 가진 盧武鉉이 적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在野 민주화운동하며 盧대통령과 인연

―盧대통령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1985년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그 후 1987년 全斗煥 정권의 「호헌 조치」(대통령을 간접선거로 선출하는 당시 현행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발표)에 반대하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을 함께 했습니다. 당시 저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대구지역 공동대표로 활동했고, 盧대통령은 부산사무소 상임위원으로 활동했어요』

굳이 직급으로 따진다면 「공동대표」 자리가 「상임위원」보다 높다. 정치권에서 두 사람의 위치는 역전된다. 1988년 13代 선거에서 李前 수석은 한겨레당 공동대표로 나섰지만 낙선했고, 盧대통령은 같은 해 부산에서 출마해 당선됐기 때문이다.

―李특보가 「정치인 盧武鉉」을 대통령 후보로 공개 거명한 첫 번째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16代大選 전인 1997년 6월인가 7월인가 정확하게 기억 나지 않는데… 국민통합추진회의(일명 「통추」) 시절이었습니다. 「통추」는 DJ가 분당하고 남은 「꼬마 민주당」에서 개혁파가 떨어져 나와 만든 일종의 정치 결사체였습니다.

저는 「호남에서 DJ가 강하니 우리도 전술적 차원에서 후보를 내자」고 주장했습니다. 「金元基(김원기·現 국회의장) 대표는 호남 출신이니까 안 되고, 대중적 인기가 있는 李哲(이철)·諸廷坵(제정구)·盧武鉉 세 사람 중에서 인기투표로 후보를 정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뺀 나머지 사람이 모두 반대해 묵살됐어요. 당시 李哲·諸廷坵보다 청문회 스타인 盧武鉉이 훨씬 인기가 있었죠』

―그 얘기를 듣고 盧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그날 모임이 끝나고 盧대통령과 따로 만나 차를 한잔 마셨는데 「기분이 좋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공개 거명한 데 대해 盧대통령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나요.

『정치인 가운데 대통령 꿈이 없는 사람이 있나요? 그중에서도 盧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이 강했다고 봐야죠. 그렇기 때문에 원칙을 고수한 것 아닙니까? 만일 국회의원이 꿈이었다면, 표 되는 얘기만 늘어 놓았을 거예요. 사실 저나 참모들이 표 된다고 이런 말 하라고 하면, 절대 듣지 않았습니다.

사실 갑갑함도 느꼈습니다. 전당대회에서 대의원과의 식사자리를 만들어 놓고 밥 먹자고 하면, 안 먹었어요. 아무리 오라고 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돈 주고 밥 먹고 술 먹어 가며 대의원을 다독이던 시절이 아닙니까?』

전략가 스타일의 盧武鉉

―정치인 盧武鉉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다양한 인간관계, 복잡한 현상의 본질을 잘 파악하는 전략가 스타일입니다. 국민들의 정서와 요구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대중 정치인이죠』

―盧대통령과의 인연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어떤 겁니까.

『1996년 총선이 기억에 남아요. 당시 盧대통령은 서울 종로에 출마했는데, 대구까지 내려와 합동유세 연설을 해준 겁니다. 자신의 선거일정을 하루 종일 비워 두고 멀리 대구까지 내려와 지원유세에 나선 사실이 그저 놀랍고 고마웠습니다. 사실, 종로 선거를 담당하는 참모들은 미칠 노릇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캠프야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지요. 그러나 결국 저도 떨어지고, 盧대통령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국회가 盧대통령 탄핵결의안을 가결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눈물이 많이 났어요. 아내도 많이 울었습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7년 8개월간 복역

아내 황일숙씨와 함께.

1990년 10월4일 보안사의 민간인 정치사찰을 폭로했던 윤석양 이병(당시 24세·한국외국어大 4년 제적생)의 「보안사 개인 정보파일」에는 盧대통령과 李前 수석의 이름이 나란히 등장한다. 파일에는 신장·체형·두발 형태는 물론 수염 정도·얼굴 형태 등 신체 특이점과 거주 가옥 출입문 위치와 비상구, 담장 형태 및 높이까지 기재돼 있었다.

당시 盧武鉉 의원 파일에는 「노동문제와 관련하여 反정부적인 과격한 언동으로 노동자를 선동하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동향관찰 요망됨」이라고 적혀 있다.

李前 수석에 대해선 죽은 前妻의 이야기가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됐다.

「대구1마6070 쥐색 프레스토 승용차에 딸을 태워 두류산 공원 일대에서 놀다 오며, 처의 병간호에 열중했으나 1990년 4월21일 자택에서 사망」

「1990년 3월23일 발인하여 경북 성주군 공원묘지에 안장했으며 李哲·朴燦鍾 의원 등 명의의 조화가 30여 개 있었고 사회운동연구소장 이수인(영남大 교수) 및 학생 100여 명이 조문객으로 참석했으나 별 문제점 없었고 4월26일 在日교포 간첩 출소자인 서승씨가 문상을 다녀감」

그만큼 李前 수석은 권력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았다.

―在野의 길을 가게 된 건 민청학련 사건 때문이죠.

『그렇죠. 朴正熙 정권 시절인 1974년 경북大 총학생회 간부로 있을 때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어요. 7년 8개월간 복역했습니다. 대구·대전·광주교도소 등 전국의 교도소를 돌아다녔습니다.

소문난 죄수였습니다. 교도소 취사반 일을 하면서, 고깃국에 들어간 고기 양을 재고, 밥에 들어간 콩의 개수를 일일이 세서 「쌀과 보리의 비율을 지켜 달라」, 「정량대로 지급하라」고 항의를 하기도 했죠. 제가 교도소 복지 개선에 이바지한 공로가 상당히 큽니다(웃음)』

李前 수석은 다른 민청학련 사건 연루자들보다 감방생활을 오래했다.

柳寅泰(유인태) 의원과 李哲前 의원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李海瓚(이해찬) 총리가 10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모두들 15년 형을 선고받은 李前 수석보다 빨리 출소했다.

李前 수석은 그 이유를 『지방대학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하곤 한다.

서울大 학생들은 동기 동창들이 요직에 있어 여러모로 손을 써 주었고, 유명 변호사들이 변호인단을 구성해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감방생활의 고통보다는 외로움이 더 컸다. 그의 홈 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대구에 있던 부모님은 시간이 날 때 면회를 왔지만, 서울대학교 학생이던 李哲, 柳寅泰 등은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면회를 오고, 그들의 형 집행에 대해 강력 반발하며 변호사들이 끊임없이 방문하여 당국이 항복을 했다. (내 경우는) 면회를 오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시골 대학에, 변호인단을 결성해 줄 능력도 없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된 다른 사람들이 1~5년 만에 출옥한 데 비해 나는 8년 가까이 길고 긴 영어의 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喪妻와 재혼

―喪妻(상처)를 하고 再婚(재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밤낮 없이 거듭된 경찰의 협박, 미행을 겪었던 前妻는 출근길에 버스에서 쓰러졌고 위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1986년 4월 직선제 개헌 현판식 개최로 수배돼 4개월이나 집에 못 들어갔다가 수술 전날 밤 아내의 병실을 찾았다가 연행되고 말았습니다. 호강 한 번 못 시켜 주고 결국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1994년 4월 再婚을 했어요. 부산의 한 병원에서 수간호사로 일하던 지금의 아내를 중매로 만났습니다. 모아 둔 돈도 없고, 딸까지 딸린 홀아비가 내세울 게 뭐 있습니까. 그래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글쎄, 결혼 안 하면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겠다고 시위를 하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장가를 또 가게 된 겁니다』

―평생 제대로 된 직장을 못 가졌는데, 家系는 어떻게 꾸리셨나요.

『수간호사였던 아내가 결혼 전후 병원 일을 그만두고 옷가게·횟집을 하면서 제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결혼 초기 제가 前妻의 장모 집에서 딸과 함께 처가살이를 했는데, 불평 한마디 없이 모두 건사해 주었습니다. 집사람한테 정말 미안하죠.

IMF 외환위기 때 횟집이 어려울 텐데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정말이지 「돈 안 되는」 제 손님을 반겨 준 아내가 참 고마웠습니다. 저는 칼질을 못 하고 뻣뻣한데다 서빙도 못 해서 주차관리만 했습니다』

―민주화 前歷(전력)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고 있나요.

『단돈 10원이라도 받은 적 없습니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평생의 첫 직장이셨습니다. 첫 월급 받아서 뭐하셨습니까.

『아내의 통장으로 입금됐는데, 처음 주는 월급이라 아마 아내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고, 소중하게 썼으리라 생각됩니다』

그에게 58년 全인생을 통틀어 첫 직장이 청와대다.

지난 17代 총선에서 낙마한 뒤 9개월여 만에 청와대에 들어가는 셈이었다. 시민사회수석室은 각계각층의 갈등을 조정하고, 여론을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 主 업무다. 美軍기지 평택 이전, 원전수거물센터 건립, 새만금 간척지 개발 등 민감한 사회현안이 시민사회수석室 소관이다.

盧대통령은 궂은일을 묵묵히 할 수 있는 그에게 일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李前 수석의 전임자는 文在寅(문재인) 민정수석이다.

―청와대 생활은 어땠습니까.

『지난 1월25일 근무를 시작해서 9월27일 그만뒀어요. 딱 214일 근무했어요. 과거 권력은 서로 견제가 굉장했다고 합니다만, 참여정부에선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물론 견제가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옛날보다 협의 내지 토론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 협의를 하고 토론을 하면 실수가 적습니다』

美軍기지 평택 이전 위해 주민들 설득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시절 가장 역점을 기울인 현안은 무엇이었습니까.

『미군기지 평택 이전 대상 지역 주민들과 지주들을 만나 설득한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公共기관 지방이전과 관련해 公기업 사장과 勞組들과 매일 만나 公기업과 직원들의 의견이 수렴되도록 했고, 방폐장 부지선정 신청 독려를 위해 지방으로 뛰어다니던 일들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黨(당)·政(정)·廳(청)·시민사회·언론 등 사회 각 분야가 협력하는 「뉴 거버넌스 구축」을 목표로 했는데, 생각만큼 진전이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참여정부가 하는 일 가운데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점은 어떤 거라고 봅니까.

『제왕적 대통령이 지배하는 권력문화를 「분권형 권력」으로 바꾸는 일에 대해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통령이 검찰·국정원·국세청을 활용해 국정을 장악해야 한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젠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盧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을 하지 않겠다는데, 언론들은 「왜 강력하게 이런 일 저런 일 다 못 하느냐」고 다그치는데 답답하죠. 대통령의 聯政(연정) 구상에 대해서도 너무 오해가 많습니다. 권력을 나누어 갖겠다는 건 盧대통령의 오래된 생각입니다. 야당과 국민을 상대로 「오기」를 부린다고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聯政 제안은 분권형 권력 운용, 지방분권,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충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청와대 비서관 회의 때 盧대통령은 주로 말을 하는 편입니까, 듣는 편입니까.

『盧대통령께서는 말씀보다는 토론을 좋아하시죠. 안건에 대한 이해와 문제의식이 담당자보다 앞설 때가 많습니다. 참모들이 진땀을 흘리죠』

『DJ보다 盧대통령이 더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1993년 열렸던 李康哲의 후원회 모습. 왼쪽부터 노무현·조영남·이철·이강철·이부영·임채정·박석무.

―나라가 잘 되려면 쓴소리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李前 수석은 盧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좀 하셨습니까.

『뭐 아는 게 있어야지 쓴소리를 하지요. 盧대통령께서는 모든 정보를 갖고 공부를 하니까, 저야 뭐 시민단체 일이라면 모를까. 경제나 외교 문제에 대해 보태드릴 게 없어요. 제가 보기에 DJ보다 盧대통령이 더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진짜 독서량이 많고 사고도 논리적입니다』

―盧대통령을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만나셨습니까. 대통령 일을 힘들어 하는 건 아닙니까.

『공식적으로는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만나고, 가끔 식사를 하면서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죠. 온라인으로 보고하면, 직접 의견을 내려 줍니다.

행정관에서부터 비서실장까지 대통령과 대화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웃음). 「노통」은 호기심이 많고 독서량이 많습니다. 생각이 깊어 전략에 능한 편인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입니다. 경우가 바르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하고, 상대와 대화할 때 자신을 꾸미는 것을 싫어하는 직선적인 스타일입니다』

―청와대에서 영부인의 역할은 어떻습니까. 항간에는 權良淑 여사가 盧대통령에게 쓴소리를 가장 많이 한다고 합니다.

『두 분 내외의 일이라서 남이 잘 알 수 없지 않겠습니까(웃음). 다만, 언론 보도나 시중 여론을 조용히 대통령께 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부인께서는 연설도 잘하시고, 만나는 분마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알게 모르게 행사가 많은데 청와대로 사람들을 부르는 경우도 있고, 직접 참여하시기도 합니다』

―평생 처음 권부에서 일했는데,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지금 청와대 사람 치고 「우리가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세상에 청와대라 해서 어디 전화해서 부탁 들어줄 사람이 있습니까? 청와대 수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일에만 매달리는 분위기입니다. 한마디로 권력 잡았다고 청와대에서 폼 잡는 사람은 없습니다』

―업무 외에 청와대內에서 「맏형」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일을 자유스럽게 했어요. 내가 뭐 이쪽저쪽 다 알고 있으니 상하좌우를 아우르는 역할을 했습니다. 시간을 내서 직원들과 퇴근 후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직원들이 개인적 고민이나 상사에 대한 건의사항을 제게 쉽게 털어놓는 편입니다. 제가 시민사회수석실 방문을 열어 놓고 업무를 보는 스타일이라 오며 가며 많은 사람들이 들러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웃음)』

『비교적 천거를 많이 한 게 사실』

그는 참여정부의 대구·경북 창구 역할을 해왔다. 주로 인사 천거를 했다. 그 때문에 참여정부 초기에 鄭燦龍(정찬용) 前 대통령 인사수석과 갈등을 빚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참여정부 장·차관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들은 대부분 李前 수석이 직접 천거했거나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천거라기보다, 아무래도 제가 대구·경북 현안을 포함해 대통령과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으니까, 그런 계제에 유능한 분들을 추천했죠』

―인사 천거를 해서 성공률이 얼마나 됐습니까.

『결정은 대통령이 하지만, 비교적 추천을 많이 한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마구 추천을 하진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능력이 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청와대 민정室에서 검증을 세게 합니다. 능력 없는 분은 아무리 추천해도 안 되더군요(웃음). 한번은 인연이 있는 분을 추천한 적이 있는데 끝내 안 됐어요. 문제점이 덜컥 나오면 「이 사람 꼭 시켜야 한다」는 말을 더 이상 못 하겠더라구요』

―盧대통령의 人材등용 시스템을 어떻게 보십니까. 사실 청와대 내부에서 같은 사람이 여러 자리를 옮겨 다니는, 이른바 「돌려막기」式 인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李炳浣(이병완) 비서실장 임용을 두고서도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 걸 보면, 인사풀이 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청와대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가 아닙니까. 대통령의 생각과 반하는 사람은, 부처 장관은 몰라도 청와대內에 있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청와대 참모는 실무형으로 짜니까 대통령과 생각이 같은 분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4전5기의 도전, 10·26 재·보궐 선거

1993년 영국 정부 초청으로 9박10일간 영국의 지방자치제도를 시찰하고 있는 盧武鉉과 李康哲.

李前 수석은 1974년 일어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민청학련 연루자 중에는 배지를 단 사람이 적지 않다.

李海瓚 국무총리와 金槿泰(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물론 姜昌一(강창일)·元惠榮(원혜영)·柳基洪(유기홍)·柳寅泰·李浩雄(이호웅)·張永達(장영달)·崔圭成(최규성)·韓明淑(한명숙) 의원과 李哲·諸廷坵前 의원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상당수가 국회에 진출, 명예를 회복했지만 대구는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못생긴 굽은 나무가 마을을 지키듯 그는 대구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 9월15일 대법원이 선거구민에게 선심 관광을 시킨 혐의 등(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한나라당 朴昌達(박창달) 의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오는 10월26일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자 李前 수석은 다시 대구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몇 번 출마했습니까.

『대구에서 네 번 출마해 모두 떨어졌습니다. 이번 도전이 4전5기인 셈이지요』

―이번 대구 보궐선거가 「盧대통령과 한나라당 朴槿惠 대표의 대리戰」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죠.

『네 번 연거푸 떨어지면 雪辱(설욕)을 생각하기보다는, 당락에 초연한 무욕의 상태가 됩니다(웃음). 대구 발전을 위해 일할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朴槿惠 한나라당 대표는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국회에서는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을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하자고 합니다. 제도와 구조를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이전에 대구시민의 손으로 지역주의의 한 담벽을 허물어 주었으면, 그렇게 기대합니다』

그는 1997년 당시 한나라당 大選 후보였던 李會昌 후보를 지지했다는 「과거 前歷」이 드러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대구 매일신문의 1997년 12월4일자의 보도 내용은 이렇다.

<신정치추진연합 대구지부 이강철 대표는 대구를 찾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맞이해 대구·경북지역 대학 전임 학생회장단 주최로 「3金 청산 국민대통합의 새로운 정치를 위한 이회창 지지 기자회견」을 열고 李후보를 지지하는 의사를 밝혔다. (中略)>

―당시 李會昌 후보를 지지하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십시오.

『숨길 게 없습니다. 1997년 大選을 앞두고 국민통합추진회의를 결성하여 야권통합을 추진하면서 「3金 청산이 먼저냐」, 「정권교체가 먼저냐」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3金 정치가 빨리 청산돼야 우리 정치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DJ와 JP의 연합에 의한 영남 포위 전략은 국민 분열만 심화시킬 수 있다고 봤습니다』

「농부가 밭을 탓하지 말라」

―직접 만나 본 대구 유권자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과거보다 열린당에 대한 민심이 크게 바뀌지 않아 보이지만, 지역경제와 지역발전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은 편이라고 느낍니다. 「(열린)우리당이고 남의당이고 간에 먹고 좀 살자」,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여론이 잠재돼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국회 의석을 한 석도 주지 않은 대구·경북지역에 대해 盧대통령이 상당히 섭섭한 감정을 느낄 것 같은데.

『「농부가 밭을 탓하지 말라」는 말로 盧대통령의 대구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네요. 盧대통령이 집권 후 李廷雨(이정우) 경북大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에 기용했고, 그 후임으로 영남大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金秉準(김병준) 교수를 기용했습니다. 尹德弘(윤덕홍) 한국학중앙연구원장(옛 정신문화연구원), 노동부 장관을 맡았던 權奇洪(권기홍) 단국大 총장, 秋秉直(추병직) 건교부 장관 등 참여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TK 인사들은 부지기수입니다. 최근 李在庸(이재용) 열린당 前 대구시 당 위원장을 환경부 장관으로 임용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盧대통령은 2003년 6월 대구를 방문,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정책기조를 발표했습니다. 「돈과 권력과 사람이 수도권에만 있는 불균형을 그냥 놔둬선 안 된다」는 선언이었는데, 盧대통령은 이 정책을 「대구 구상」이라 불렀어요. 참여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정책인 국가 균형발전 정책에 「대구 구상」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서 盧대통령의 대구 사랑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