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동물 이야기] 땅 기름지게 하는 '흙속의 보물'… 폭염 땐 수분 말라 비상

입력 : 2018.07.27 03:00

지렁이

원래 여름철 비가 오면 지렁이〈사진〉가 여기저기 나타나지요. 흙 속에 물이 차올라 밖으로 기어나온 거예요. 밖으로 나왔다가 흙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말라 죽기도 하죠. 지렁이는 촉촉한 피부로 숨을 쉬는데 피부가 마르면 숨을 쉬지 못해요. 비가 그치고 개미 떼가 죽은 지렁이에 들러붙어 지렁이를 끌고 가는 모습도 볼 수 있어요.

지렁이
/게티이미지코리아
요즘같이 폭염이 찾아오면 지렁이는 더욱 살기 힘들어져요. 지렁이가 사는 흙 속의 수분이 말라버리기 때문이에요. 지렁이는 햇살과 자외선에 민감해 태양 아래서 1시간 정도만 있어도 마비가 돼 영영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답니다. 가뭄과 홍수, 뜨거운 햇볕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거지요.

지렁이의 천적은 두더지예요. 두더지가 땅을 팔 때 생기는 진동과 빗방울이 떨어질 때 나는 진동이 비슷해 비가 오면 천적이 나타난 줄 알고 지렁이가 땅 밖으로 기어나온다는 얘기도 있어요.

빛에 민감한 지렁이는 땅속에서도 주로 밤에 활동해요. 흙 속을 돌아다녀도 연한 피부에 상처가 나지 않는 이유는 느릿느릿 움직이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피부에서 점액질이 나와 피부를 보호해주죠.

개미는 물론 새와 곤충도 지렁이를 잘 먹는답니다. 다리가 많고 입이 무서운 벌레들보다 순한 모습인 데다가 땅에 많아 쉽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물고기도 지렁이를 좋아해 낚시 미끼로도 많이 써요.

정작 사람은 지렁이를 잘 먹지 않아요. 식물 부스러기나 미생물이 있는 흙을 집어삼키기 때문에 지렁이 창자 속은 흙투성이예요. 꼬막이나 조개의 펄을 손질하듯 지렁이를 손질하면 좋은 단백질 식품이 될지도 몰라요. 몸이 길어도 창자는 구부러지지 않아 창자 내용물을 비우기 어렵지 않을 거예요. 동글동글 뭉쳐진 지렁이 흙똥이 많은 땅에선 동물들이 살기 좋고 식물 뿌리도 튼튼하게 자라죠. 지렁이는 땅을 기름지게 하는 '흙 속의 보물'이에요.

호주와 뉴질랜드에는 최대 길이 3m에 굵기가 떡가래만 한 왕지렁이가 사는데 원주민이 즐겨 먹어요. 우리가 흔히 보는 지렁이는 연필 굵기에 길이가약 20㎝예요. 많이 오염된 물 바닥에 빨갛게 모여 사는 실지렁이는 고무줄처럼 가늘어요. 바다에 사는 갯지렁이 등을 포함해 세상에는 지렁이가 수천 종 있어요. 사는 곳이나 크기, 모양이 달라도 이들은 몸마디가 대부분 100개가 넘고 몸통은 기다란 원통 같은 환형동물이에요. 가까이 들여다보면 동전을 줄줄이 줄에 꿴 듯한 모습이죠.

지렁이는 머리 부분이 잘리면 죽지만 몸과 꼬리는 잘려도 다시 생겨날 정도로 재생 능력이 좋답니다.


김종민 박사·전 국립생태원 생태조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