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이야기] 바이러스 확산 막는 팔각회향 추출물, 타미플루 주성분이죠

입력 : 2020.02.14 03:05

식물 추출 항바이러스제

최근 유행 중인 우한 코로나 감염증을 예방하기 위해 널리 사용 중인 '손 소독제'. 이 손 소독제의 뒷면 성분 표기를 자세히 읽어본 적이 있나요? 바이러스의 단백질 껍질을 굳게 만들어 이내 죽게 한다는 에탄올이나 이소프로판올과 같은 '알코올' 성분과, 그리고 건조를 막아주는 유분 성분인 '글리세린' 이외에도 수많은 성분으로 이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식물 추출물'입니다. 식물 추출물은 좋은 향이 나는 동시에 인체에 해가 없이 바이러스의 활동을 막는 '항바이러스제' 역할을 해 손 소독제 기능을 강화합니다. 시중에서는 라임이나 레몬 껍질, 유칼립투스, 편백나무 등의 추출물을 첨가한 제품을 만날 수 있답니다.
중국에서 향신료로 쓰이는 식물인 팔각회향. 팔각회향의 추출물은 바이러스가 세포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아 독감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의 주된 성분으로 쓰입니다.
중국에서 향신료로 쓰이는 식물인 팔각회향. 팔각회향의 추출물은 바이러스가 세포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아 독감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의 주된 성분으로 쓰입니다. /위키피디아
식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아픈 사람에게 처방됐습니다. 약으로서 식물의 기능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인데요. 세계 각지에서 포도, 사과, 딸기 등 과일 성분부터 장미나 국화의 친척인 식물의 꽃 추출물, 뿌리를 먹는 식물의 뿌리 추출물 등 다양한 식물을 대상으로 항바이러스 기능에 관한 연구가 이어졌습니다. 2000년대 이르러 건강 문제에 천연 물질을 선호하는 세계적 분위기를 타고 연구가 급물살을 탔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약품의 40% 정도가 식물에서 직접 추출하거나, 가공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합니다.

식물 추출물은 어떻게 바이러스 감염을 막을까요? 우선 바이러스의 번식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될 세포 표면에 붙은 뒤 세포 안으로 침입하고, 숙주 세포의 효소를 이용해 자신을 복제하기 시작합니다. 자신과 똑같은 자손 바이러스를 만들어 낸 뒤 세포 바깥으로 퍼뜨려요.

식물 추출물은 이러한 바이러스 번식 과정의 다양한 단계에서 바이러스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붙지 못하게 하거나 세포 안에서 복제하지 못하게 하고, 또는 복제한 바이러스를 세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해조 식물의 추출물은 바이러스 표면에 달라붙어 바이러스가 세포에 붙는 것을 막습니다. 한약재로 쓰이는 식물인 마황(麻黃)의 추출물은 세포 안에서 바이러스가 자손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질의 분비를 방해해 복제 능력을 차단하지요. 중국에서 향신료로 쓰이는 식물인 팔각회향(八角茴香)의 추출물은 복제한 바이러스가 세포 밖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막아 독감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의 주된 성분으로 쓰이기도 한답니다.

최근엔 식물 체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항바이러스 기능이 있는 추출물이 만들어지는지 관찰한 뒤, 이를 인공적으로 공정화해 약을 만드는 '바이오엔지니어링' 분야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모델링과 같은 기술 발달로 여러 물질을 짧은 시간 안에 검토할 수 있는 개발 환경도 갖춰졌죠. 조만간 우한 폐렴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 소식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랍니다.



최새미 식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