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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의 제왕 모란을 화폭에 수놓다 ‘모란도’
작성일
2017-04-04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9169

꽃의 제왕 모란을 화폭에 수놓다‘모란도’ - 예로부터 부귀와 권위 그리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꽃, 모란. 꽃 중의 제왕으로 불리는 모란은 그 자태와 화려함으로 병풍 곳곳에 새겨졌다. 부귀영화를 바라던 소원을 품고 구중궁궐과 일반 백성의 민가에 피어나 우리네 삶을 장식했던 모란의 이야기를 읽어본다. 01.<괴석모란도> 19세기, 비단에 채색, 각 180.7×54.5cm, ⓒ국립고궁박물관

권위와 부귀, 절세미인을 상징하는 모란

신라 선덕여왕 때의 일이다. 당나라 태종이 선덕여왕에게 모란도 석 점과 모란 씨 석 되를 선물했다. 지혜로운 여왕은 그 선물들이 배필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희롱하는 것이란 사실을 금방 알아챘다. 그림의 내용이 향기 없는 모란(여왕)에는 벌과 나비(남자)가 찾아 들지 않는다는 걸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향기 없는 왕’이 아니라 ‘향기 나는 왕’임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보란 듯이 경주에 분황사(芬皇寺)를 세웠다. 분황사란 ‘향기 나는 왕의 절’이란 뜻이다. 이와 같은 일화에서 나타나 있듯 모란은 임금을 상징한다. 창덕궁 신선원전의 모란도 위치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창덕궁 신선원전에는 왕의 초상인 어진이 봉안되어 있다. 어진은 일월오봉도가 ㄷ자 모양으로 둘러쳐진 공간에 설치되어 있는데, 일월오봉도 뒤쪽에는 모란병풍이 있다. 모란도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에 버금갈 정도의 위상이라는 의미다.

왕의 권위뿐만 아니라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다.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는 “모란은 꽃 중에서 부귀한 꽃이다”라고 말했다. ‘부귀하다’는 것은 재산이 많고, 출세하여 귀한 사람이라는 뜻이니, 현실적으로 이보다 더 좋은 복락이 어디 있겠는가. 여기에 모란의 상징을 하나 더 붙이면, 모란은 절세미인을 뜻한다. 특히 양귀비처럼 풍염한 몸매의 여인을 사람들은 모란에 비유했다. 당나라 현종이 침향정(沈香亭)에서 양귀비와 모란꽃을 구경하다가 이백(李白)을 불러 시를 짓게 했다고 하는데,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 글귀가 전해진다.

“유명한 꽃과 경국지색 모두 기쁨을 선사해서, 군왕이 언제나 미소 띠고 바라본다네. 봄바람의 끝없는 한을 풀어 녹이려고,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섰다오.”

이처럼 권위, 부귀, 미를 상징하는 모란은 궁중의 그림이나 문양의 소재로 제격이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모란병풍이 일월오봉도나 십장생도 병풍만큼 다수 제작되어, 왕이 거처하는 어전이나 침전에 주로 설치되었다. 더불어 왕실의 혼례인 가례(嘉禮)나 왕세자를 책봉하는 예식인 책례(冊禮)와 같은 잔칫날뿐만 아니라, 제례나 상례와 같은 의례 때도 사용됐다. 모란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서로운 꽃이었던 것이다.

화려함으로 장식된 궁중의 모란병풍

궁중모란도는 10폭 전체에 걸쳐 자연스럽게 모란밭이 펼쳐진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폭마다 모란꽃들이 한 아름씩 담긴다. 일정한 패턴으로 배치된 꽃은 그 화려함과 장식성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모란꽃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까닭은 꽃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부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부귀를 뜻하는 모란과 장수를 의미하는 괴석을 함께 그리기도 했다. 4폭의 <괴석모란도>(그림1) 병풍은 괴석과 모란을 그린 작품 가운데 압권이다. 모란 장식을 표현한 기법은 궁중 모란도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환상적으로 꿈틀거리는 괴석의 웅장한 형상은 궁중 모란도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이 괴석은 중국인들이 정원석으로 가장 좋아하는 태호석(太湖石)이다. 태호석은 수추누투(瘦皺漏透), 즉 몸이 바짝 마르고 못생기며 구멍이 숭숭 뚫리고 이들 구멍이 서로 연결되는 모양을 최고로 친다. 수석(壽石)이라고도 불리는 괴석과 모란은 합해져서 행복을 축원하는 의미로 배가 되었다.

02.<모란그림팔곡병풍> 19세기 전반, 한지, 각 50cmx115cm, ⓒ온양민속박물관

민가에서 사랑받은 모란병풍

모란병풍은 민간에서도 사랑을 듬뿍 받았다. 경기도 성주굿의 사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란병풍에 인물병풍, 화초병풍을 얼기설기 쌍으로 쳐놓고…” 성주굿은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할하는 성주신에게 재앙을 물리치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비는 굿이다. 모란병풍을 첫머리에 내세운 것은 그만큼 모란이 행운을 비는 꽃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궁중에서처럼 민간의 혼례 때도 마당에 모란대병(牡丹大屛)을 설치했다. 평소에는 현실로 이뤄지기 불가능한 꿈같은 일이지만, 혼인하는 날만큼은 모란병풍을 두르고 왕처럼 대접을 받았다. 문제는 모란대병의 값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모란대병을 제작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든다. 이 때문에 왕실에 필요한 의복·식품 등을 관장한 관청인 제용감(濟用監)에서 가난한 선비들을 위해 혼례 때 모란대병을 빌려주는 대민 서비스를 제공했다. 민간에서는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할 때도 모란을 사용했다. 상 여 곳곳을 모란으로 장식했고, 제사 때 모란병풍을 사용하기도 했다. 사찰에서는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비는 명부전에 모란병풍을 설치했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모란꽃으로 된 지화(紙花, 종이꽃)를 들고 여러 신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모란은 기쁨이나 슬픔 등 어느 한 정서에나, 종교에도 국한되지 않고 다방면으로 사용되었던 길한 꽃이었다.

03.<모란도> 19세기, 종이에 채색, 각 76×37.5cm, ⓒ파리 기메동양박물관

민가의 병풍, 궁중화에 없는 소박한 정이 듬뿍

민화 모란도병풍은 궁중 모란도병의 도식적인 표현에서 탈피하여 다채로운 변용이 엿보인다. 특히 모란보다는 ‘괴석’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난다. 괴석을 동물이나 사람 형상으로 변모하여 표현하거나 화려한 색채를 사용해 다양하고 개성적으로 묘사한다.

온양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특이한 괴석이 돋보이는 모란도(그림2)를 살펴보자. 세로 115cm로 궁중 모란도와 비슷한 크기이지만, 전혀 다른 민화만의 특색이 보인다. 이 그림에서 한껏 영근 모란꽃은 꽃 사이사이 여백을 충분히 항유하며 제각기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세 덩어리로 연결된 괴석은 청색, 황색, 적색의 배열로 이뤄져 색다르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 형태에서도 꿈틀대는 생동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파리 기메동양박물관에 있는 민화 <모란도>(모란병풍 중 두폭,그림3)는 서민의 정서가 궁중과 어떻게 다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빽빽이 들어앉았던 모란꽃들이 소담스럽게 핀 몇 송이로 표현되어 있고, 화면에 넉넉한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 이런 여유로움 덕분에 한 폭에는 흰 나비, 다른 한 폭에는 검은 나비가 그림에 등장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그림의 괴석은 중국의 태호석이 아니다. 수직의 결을 선보이는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돌이다.

이렇듯 민화에서는 중국의 괴석이 아니라 우리나라식으로 새롭게 변용된 괴석이 등장한다. 단순하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민화의 괴석 모란도. 민화 작가들은 부귀를 뜻하는 꽃의 제왕 모란을 인간적인 바람 속에서 소박하고 향기로운 모란으로 다시 피워낸 것이다.

 

글‧정병모(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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