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호국인물 <김상옥 의사>
Name. 관리자    Date. [21.11.01] 1136    Hit.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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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의사는 1889년 1월 5일 한성부 동부 건덕방 어의동(現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서 태어났다. 동대문감리교회와 야학을 통해 신문물과 사상을 접하였고, 17세부터 국산품장려운동, 대한광복단에 참가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나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19년 4월에 동지들과 '혁신단'을 조직하고 <혁신공보>를 발행하여 시민들에게 배포했으며, 이듬해 한 훈, 김동순 등과 

함께 암살단을 조직하여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을 모의하였다. 1920년 10월에는 중국으로 떠나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1년 7월 국내로 잠입해 지명 수배된 상황 속에서도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했다. 

1922년 11월, 사이토 총독 암살을 위해 안홍한 등과 국내로 진입했으나 여의치 않자 목표를 '종로경찰서'로 변경하고 1923년 1월 12일 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종로경찰서 투탄 의거) 의거 후 

경성부 심판통(現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매부 고봉근의 집으로 몸을 숨겼지만 결국 발각되었다. 김상옥 의사는 총격전 속에서 종로경찰서 형사부장 다무라 등을 사살하고 포위망을 벗어나 피신하였다. 

그러나 1923년 1월 22일 새벽, 일본 경찰은 1천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효제동(독립운동가 이혜수의 집)에 은거하고 있던 김상옥 의사를 포위하였다. 

김상옥 의사는 지붕과 담장을 넘나들며 일본 군겨과 3시간 동안 총격전을 벌이며 15명 이상을 사살했지만, 총알이 다 떨어지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남은 한발로 자결하였다. 

김상옥 의사의 시신은 유족에게 인계되어 27일 오후 고양군 숭인면 이문동(現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뒷산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김상옥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복장(현재 건구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1966년에는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現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당시 종로경찰서가 있던 곳(現 종각역 8번 출구 앞 보도)에는 <김상옥 의거 터> 표석이, 삼판통 고봉근의 집이 있던 곳(현재 서울 용산구 후암로 28바길 5)에는 <김상옥 의사 항거 터> 안내판이,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는 <김상옥 열사의 상>이, 효제초등학교에는 그의 어록이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