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학창 시절의 추억…‘고교 얄개’가 유치하지 않은 이유

1970년대 중후반 극장가에 ‘얄개’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석래명 감독(1936~2003)은 데뷔작 <미워도 안녕>(1972) 이후 5년여만인 1977년 1월 <고교 얄개>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영화는 개봉 2주만에 관객 10만명을 돌파했다. 당시로는 엄청난 흥행기록이다.

조흔파(본명 조봉순)의 명랑소설 ‘얄개전’은 1965년 한차례 영화화됐다. 당시 주인공 나두수 역을 안성기가 맡았는데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12년 후 <고교 얄개>에서는 이승현이 나두수를 연기해 얄개를 상징하는 배우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얄개는 ‘야살스러운 짓을 하는 아이’를 뜻한다. 야살스럽다는 ‘보기에 얄망궂고 되바라진 데가 있다’는 뜻이고, 얄망궂다는 ‘성질이나 태도가 괴상하고 까다로워 얄미운 데가 있다’는 뜻이다. 종합하면 얄개는 ‘보기에 괴상하고 얄미우며 되바라진 짓을 하는 아이’를 뜻하는 셈이다.

그 시절 하이틴 영화가 그랬듯 <고교 얄개>도 단순한 스토리를 직설적으로 다뤘다. 캐릭터의 성격이 분명하다. 고교 2학년 낙제생인 주인공 두수(이승현), 같은 낙제생 단짝 용호(진유영), 고자질쟁이 모범생 호철(김정훈), 하숙집 딸 인숙(강주희)…. 당시 어느 학교에서나 있었을 법한 친구들이다.

영화의 깊이나 완성도를 따진다면 굳이 안 봐도 될 영화일 수 있다. 그게 아니라 아련한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살린다면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그 시절을 보낸 시기가 다르다고 해서 그때 경험한 설레임, 무모함, 순수함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고교 얄개(1977) 진짜진짜 잊지마(1976)
고교 얄개(1977) 진짜진짜 잊지마(1976)

1970년대 중후반 학원물은 둘로 나뉜다. 문여송 감독(1932~2009)의 ‘진짜진짜’ 시리즈와 석래명 감독의 ‘얄개’ 시리즈다. 1976년 개봉한 <진짜진짜 잊지마> <진짜진짜 미안해> 등 ‘진짜진짜’ 시리즈는 고교생들의 풋풋한 사랑에, 1977년 개봉한 <고교 얄개> <얄개 행진곡> 등 ‘얄개’ 시리즈는 고교생들의 짠한 우정에 초점이 맞춰졌다.

‘진짜진짜’ 시리즈가 임예진을 국민 첫사랑으로 만들었다면, ‘얄개’ 시리즈는 꽃미남과는 거리가 먼 이승현을 하이틴 스타로 등극시켰다. 그는 <고교 얄개>와 후속편 격인 <얄개 행진곡>은 물론 <고교 우량아> <고교 꺼꾸리군 장다리군> <괴짜 만세> <고교 유단자> <우리들의 고교시대> <고교 명랑교실> <고교 고단자> 등 한 해에 예닐곱 편씩 영화를 찍었다.

어린 시절 TV를 통해 ‘얄개’ 시리즈를 보고 또 보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예배 시간에 코를 골며 자고, 자명종으로 선생님을 속여 수업을 끝내는 등 장난기가 몸에 밴 주인공 두수가 한눈에 반한 하숙집 딸 인숙과의 데이트를 기다리며 주문처럼 외던 말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데이트”.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와 같은 말장난으로 원래대로 하면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데이트”가 된다.


‘여고 얄개’ ‘대학 얄개‘, 그리고 ‘신입사원 얄개‘

여고 얄개(1977) 주연을 맡은 이승현과 김보연
여고 얄개(1977) 주연을 맡은 이승현과 김보연

1970년대 중후반 <고교 얄개>의 선풍적인 인기는 ‘얄개’ 시리즈를 무한확장 시켰다. 제작사와 분쟁이 생긴 석래명 감독은 영화사를 옮겨 <얄개 행진곡>(1977)을 연출했다. 등장인물, 출연진, 스토리 등이 <고교 얄개>와 연결된 후속작이다.

석 감독은 이어 <여고 얄개>(1977)를 내놨다. 김보연이 주인공 신애 역을 맡았다. <고교 얄개>에서 모범생 호철 역을 맡았던 김정훈도 나온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스토리 라인 역시 <고교 얄개>와 닮았다.

원래 영화사는 이미 30여편의 영화를 연출한 베테랑 김응천 감독(1935~2001)을 앞세워 <고교 우량아>(1977)를 먼저 내놨다. 여기에도 <고교 얄개> 출연진이 그대로 나온다. 다만 주인공 이름이 두수가 아니라 배우명인 승현이다.

1978년 <고교 명랑교실>을 연출한 김 감독은 ‘얄개’ 붐이 한풀 꺾일 무렵인 1982년 <대학 얄개>로 돌아왔다. 이승현·강주희에 이덕화·전영록까지 출연했다. 이듬해인 1983년에는 선우완 감독의 <신입사원 얄개>도 나왔다. 이승현과 조용원, 그리고 김형곤이 주연을 맡았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