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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과 과수원에 농약을 뿌렸다. 다른 과일은 몰라도, 특히 사과는 농약을 주지 않고서는 상품성 있는 과일을 만들어내기가 힘들다. 우리 집 사과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무농약 재배한 것인지를 묻는다. 물론 아니다. 자연농업 자재를 사용하면 농약을 뿌리는 횟수를 줄일 수는 있지만 (저농약 재배), 무농약재배로는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탐스러운 사과를 만들어 낼 재간이 없다. 옛날에는 농약 없이도 사과를 재배했다고 말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사과는 품종개량으로, 옛날과는 전혀 다른 과일이 되었다.
'기적의 사과'라고, 일본에서 농약도 비료도 전혀 주지도 않고 재배한 사과가, 맛도 좋고 썩지도 않는다고 한동안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책도 나오고 영화도 나왔다. 그 사과는 가격도 엄청나게 비쌌지만, 예약도 순식간에 끝나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초짜 농부였던 나에게는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나도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의욕만 앞섰지 지금까지 그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책 '기적의 사과' 표지와, 실제의 주인공인 '기무라 아키노리'의 사진.
그리고 지금은 책에 씌어진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실제로는 얼마나 구현하기 힘든 것인지를 잘 안다.
처음에는 단지 비료와 농약을 주지 않고 몇 년만 버티면, 저절로 '기적의 사과'가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 몇 년 이내로 과수원이 완전히 망가진다. 나에게 코치를 해준다며 모범을 보였던 한 지인의 과수원은 거의 망가졌다. 중간에 포기한 나는 겨우 살아남았다.
내 경우와 같이, 특히 심은 지 몇 년 안된 유목인 경우는 더욱 주의를 해야 한다. 책에서 '이미 사과가 열리던 나무를, 무비료 무농약으로 바꾸고 나서 9년 만에 꽃이 피었다'라고 하니, 나무가 적어도 15년 이상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정도면 이미 뿌리가 엄청나게 뻗어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나무가 9년이나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뿌리도 뻗지 못한 유목을, 흙도 별로인 과수원에서 그런 식으로 키우려 들면 나무가 다 결딴나는 게 당연하다.
또 '다른 밭의 사과나무의 뿌리는 대개 몇 미터 정도 뻗어 있다. 그러나 그의 밭의 사과나무는 뿌리를 20미터씩 뻗고 있다'. 사과나무는 뿌리는 그렇게 길게 뻗지 않는다. 그래서 사과가 많이 매달린 상태에서 태풍이라도 불면 나무가 쓰러지는 일도 종종 있다. 그래서 지지대를 받쳐주기도 한다. 그런데 뿌리를 20미터씩 자라게 만들려면 엄청난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땅 만들기로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자연농업에서는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 토양 만들기이다. 실제로 '기적의 사과'를 만든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도 생명농업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업'이란 책을 읽고 도전하였다고 한다.
먼저 토양을 자연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 거름이 많으면 뿌리가 그렇게 길게 자라지 않는다. 웬만한 밭에서는 나무를 심고 첫해에는 거름을 주지 않는 이유다. 풀도 일 년에 한 번만 가을에 깎아, 밭에 깔아준다. 어깨까지 자란 풀들 때문에 과수원에서 움직이기도 힘들다. 갑작스럽게 바뀐 이러한 환경 속에서, 처음에는 온갖 벌레가 다 모여든다. 당연히 사과가 제대로 열리기도 힘들고, 크게 자라지도 못한다.
'병이 만연하고, 해충이 급격히 발생했다. 농약을 쓰지 않는 한, 그 앞에 기다리는 것은 사과밭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뿐이었다'. 다른 대안이 없다. 손으로 직접 벌레를 잡아주고, 병을 치유할 수 있도록 온갖 방법을 다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무가 말라죽는다. 그리고 이 힘든 시기가 지나, 벌레도 풀도 나무도 서로 균형이 이루어지고, 나무도 자생력이 생겨나야 비로소 무농약 재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말이 쉽지 이 시점이 될 때까지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글도 있다. '말라죽지는 말라며 부탁하고 돌아다녔다. 애원에도 불구하고 말라죽은 사과나무는 적지 않다. 밭 여기저기에 메마른 사과나무가 서 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갖고 보살펴 주었는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미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했을 터이고, 아마 그로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마지막으로 나무에게 죽지 말라고 부탁하고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도 말라죽은 나무가 적지 않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별로 크지도 않고, 형태는 살짝 일그러져 있고, 작은 상처도 있다'라고 '기적의 사과'를 묘사하고 있다. 그 '기적의 사과'라는 것은, 현재 우리가 구입하는 '크고 색깔 좋고 흠집 하나 없는' 그런 사과를 생각하면 안 된다. 자연에서 스스로 병충해와 싸워 이겨낸 사과라면, 결코 투혼의 흔적조차 없는 그런 크고 매끈한 사과가 될 수가 없다. 병균의 침입을 막으려면 껍질도 두꺼워져야 한다. 비닐하우스에서 온갖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상추가 노지에서 재배하는 상추보다 더 연하고 부드러운 이유다.
기적의 사과를 만드는 것은 이렇게 어렵다. 이것은 단순한 농사가 아니고, 자연과의 조화이며, 심혈을 기울인 자신과의 싸움처럼 보인다. 적당히 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살포하고, 제초제를 뿌리는 현재의 일반적인 농사 법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영화 '기적의 사과'의 한 장면. 오랜 노력 끝에 사과를 수확한 행복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기적의 사과'가 만약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였다면, 그는 아마도 지금까지도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결국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농사를 때려치웠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시장에서는 아무리 무농약 무비료로 농사를 지었다고 해도, 제값을 받기가 어려운 것이 현 실정이다. 온갖 고생을 다해 양심껏 키웠더라도, 작고 상처투성이의 사과를 판매할 곳은 없다. 반대로 정부의 인증제란 것도 소비자에게는 그렇게 믿을 만한 것이 못되어 보인다. 또 미안하지만, 우리네 소비자도 상품의 진가를 판별하여 구매하기에는, 아직 시장이 덜 성숙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도 그의 농사법을 결코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다행스러운 면이 있다면 자연농업에 대하여 일찍 배울 기회가 있었고, 또 그동안 부분적으로나마 흉내 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땅을 만들고 풀을 키우면서 흙도 엄청 좋아졌다. 또 비료 대신 자연농업 자재를 만들어 주어서인지, 나무가 제법 강해졌고 과일의 맛도 바뀌었다.
그러나 나의 농사법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말로는 자연농업과 관행농업의 절충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내가 아직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어쩌면 자연농업은 나에게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영원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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