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Jun 04. 2021

까마귀색 대나무. 나는 어떤 색을 길러낼까

여행 정보 없는 여행 책 18

율곡 선생의 외갓집에는 까마귀색 대나무가 많다. 그냥 검은색 대나무라 하여 '흑죽'이라고 해도 될 텐데 까마귀색 대나무라고 하여 '오죽'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선조들의 표현이 재밌다. 이곳에 혹시 그 옛날 까마귀가 많았나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어린 까마귀는 자라서 어미 까마귀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해서 '효조'라고 한다는데 효심 깊은 까마귀가 이상하게도 오죽헌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건 왜일까. 아마도 오죽헌이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들 율곡 선생의 이야기가 서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오죽헌에 담겨 있는 옛이야기를 속닥속닥 나누듯 오죽헌 여기저기에는 오죽들이 무리를 지어 서 있었다. 신비로운 색의 오죽들을 바라보다가 문뜩 물음표가 머릿속에 뽕뽕뽕 하고 나타났다.


'여기에만 오죽이 있나?'

'왜 색깔이 검은색일까?'

'자라는 땅의 성분이 뭔가 특별한가?'

'오죽헌 앞에 있는 오죽과 뒤에 있는 오죽의 검은 정도는 왜 다를까?'

생각의 꼬리가 길어진다.

      

오죽은 처음에는 여느 대나무와 같은 초록색이라고 한다. 자라면서 양지바른 땅에서 햇볕을 많이 받을수록 짙은 검은색을 띤다고 한다. 어릴 때는 갈색이었다가 커서는 검은색이 되는 까마귀처럼 색의 변화가 있어 흑죽이 아니라 오죽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햇볕에 따라 색의 농도가 달라진다고 하니 오죽헌에 있는 오죽들이 제각각의 검은색을 띤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오죽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되는 순간 다시 빈자리가 만들어진 내 머릿속에 나와 내가 만나는 이들에 대한 생각이 들어왔다. 나의 직업적 특성상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아이를 위한 것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대개는 부모 자신의 대리 만족을 위한 경우가 많다. 먼저 인생을 살아 본 인생의 선배로서, 아이를 가장 사랑하고, 아이의 미래를 가장 걱정하고 기대하는 부모로서 조금 더 현명한 선택과 조언을 아이에게 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아이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나의 결핍과 내 아이의 결핍이 다르다는 것을 자주 잊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부모의 도움과 바람이 진정 아이를 위함이 아닐 때가 있다.

     

나에게도 두 아이가 있다. 두 아이는 참 많이 다르다. 성별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싫어하는 것도 다르다. 내가 낳았고 내가 길렀지만 서로 아주 많이 다르다. 난 그 다름이 싫지 않다. 만약 똑같다면 내가 아이들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버린 것일지도 모르니까.   

  


햇볕이 오죽을 차별하지 않고, 햇볕이 오죽에게 강요하지 않고, 햇볕이 오죽을 시험하지 않고 내내 고르게 비춰주듯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오죽들의 햇볕과 같은 존재이길 바란다. 또한 나는 내 아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의 빛깔을 온전히 내뿜을 수 있을 때까지 양지바른 땅이 되어주길 소망한다. 내가 어떤 색을 길러낼지는 내가 아닌 내 아이들만이 알 수 있으리라. 내가 어떤 색을 길어낼지는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리며 지켜보아야겠다.



[photo by 짝꿍]



#오죽헌 #강릉 #강원도 #신사인당 #검은대나무 #까마귀

이전 17화 600년의 배롱나무. 안아 주고 싶은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