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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Mar 21. 2024

골목길 야생화 10 생강나무

오밀조밀 노란 꽃, 알싸한 생강내음


생강나무


오늘 주인공은 생강나무입니다.

얼마 전 산수유 소개해드렸죠?

마치 짝을 이룬 듯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꽃을 피우는 게 생강나무라고 했었지요.

잎을 따서 비비거나 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아보면 생강 냄새가 요.


우선은 수피 즉 나무껍질로 구분한다고 했죠?

너덜너덜 산수유, 매끈매끈 생강나무.

꽃잎 수도 다릅니다.

산수유는 4장, 생강나무는 6장.

작은 꽃이 이루는 꽃송이 모양도 차이가 나요.

산수유는 성글성글, 생강나무는 오밀조밀.


오밀조밀한 생강나무 꽃.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산수유 잎은 긴 세로줄 맥이 뚜렷하고 윤기가 나는 긴 타원형. 생강나무는 털이 약간 난 공룡 발바닥 모양입니다.

둘 다 꽃이 지고 난 뒤에 잎을 틔우니, 잎으로 비교하는 건 한참 뒤에나 가능합니다.


산수유는 층층나무과.

생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완전 다른 종족이지요.


산수유는 우리 주변에 흔하지만, 생강나무는 주로 산에서 자라요.

산수유는 암수한그루, 생강나무는 암수딴그루.

생강나무 열매를 보기 어려운 건, 암나무와 숫나무가 따로이기 때문입니다.


산수유는 빨갛고 길쭉한 열매, 생강나무는 검고 둥근 열매.

빨간 열매 맺는 산수유는 남자한테 좋다 했죠?

생강나무 열매는 여인들에게 환영받았어요.

그 이유는 저 아래에 소개했습니다.


나무과 식물들 대부분이 특이한 향기를 내는 기름, 방향성 정유(芳香性 精油)를 함유하고 있답니다.

생강나무는 생강내 나는 기름성분이 많은 거지요.


생강은 1608년쯤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는 바로 이 생강나무의 어린 가지와 잎을 말렸다가 가루를 내어 향신료로 썼대요.

그 맛은 생강처럼 톡 쏘지 않고 산뜻.


생강나무는 갈잎떨기나무(낙엽관목)입니다.

앞에 편에서 살펴본 회양목은 늘푸른떨기나무였고요.

관목은 다 자라도 3m 정도에, 줄기가 없이 가지들이 땅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지요?

복습하세요^^


암수딴그루는 암꽃 피는 나무 따로, 수꽃 피는 나무 따로라는 뜻입니다.

그 반대는? 암수한그루.


생강나무 암꽃.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이명호 선생님
생강나무 수꽃.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이명호 선생님


꽃 피기 전 꽃망울에는 금이 있어요.

나무에 물이 오르면, 그 금을 따라 꽃잎(정확히는 꽃덮개)이 벌어져요.

꽃자루가 짧아 가지에 붙은 것처럼 보입니다.


7월쯤의 생강나무. 잎의 끝이 세갈래로 갈라져 있다. 열매가 달려 익기를 기다린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잎  모양도 향기처럼 독특해요.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잎의 끝쪽이 3갈래로 갈라져 뭉툭한 포크 모양을 이룹니다.

일러스트로 표현하면 공룡 발바닥 모양?

갈라지지 않는 잎도 함께 갖고 있답니다.

단풍 들면 노란색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요..

 

9월부터 열매가 익는데요.

처음엔 노랑, 다음엔 빨강, 마지막으로는 깜장.

독특하죠?


검은콩처럼 다 익은 열매. 이 열매를 채취해 기름을 짠다. 동백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이라고 부른다. 사진 = 들꽃사랑연구회


지역에 따라 개동백, 단향매, 새양나무, 아기나무, 산동백, 동백, 동박 등 다양하게 불려요.

영어명은 Korean spicebush, Japanese spicebush. 이 역시 그 맛과 냄새 때문에 붙여졌겠죠.


어린잎으로 차를 만들고, 잎을 말려 나물로도 먹는대요.

타박상이나 어혈, 멍들거나 삔 데 잘 듣는답니다.

허리나 발목을 삐었을 때 잔가지나 뿌리를 잘게 썰어 진하게 달여 마시라네요. 그런 뒤에 땀을 내면 통증이 없어지고 어혈도 풀린대요.

한방에선 황매목(黃梅木)이라는 이름으로 위를 튼튼하게 하는  건위제, 또는 해열제로 써요.

복통, 오한, 산후풍 등에 좋다는군요.


꽃말은 매혹, 수줍음, 사랑의 고백, 영원히 당신의 것.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 마지막 부분입니다.

꽃말을 염두에 두고 읽으셔요.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17살 동갑내기로 마름의 딸인 왈가닥 점순이와 소작인의 아들인 '나'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인데요.

이 장면은 그러니까 점순이가 동백꽃 흐드러진 곳에서 남자 주인공을 자빠뜨리는 순간인 거죠.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ᆢ.

여기서 동백꽃이란, 바닷가에서 자라는 붉은 동백이 아니에요.

바로 이 생강나무 꽃입니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의 꽃을 ‘동백꽃’ 또는 ‘산동백’이라고 부릅니다.

생강나무 열매로 짠 기름을 동백기름 대용으로 썼기 때문이래요.

날씨가 추운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아요

당연히 동백기름이 귀했겠지요.

따라서 흔하디 흔한 생강나무의 열매로 짠 기름을 머릿기름으로 사용한 겁니다. 향이 좋아 여인들에게 인기였대요.


열매가 익을 무렵이면 이를 채취하러 처녀들이 산으로 가는데, 외출의 명분으로는 더없이 좋았나 봐요.

이때를 노려 동네 총각들도 산에 얼씬거렸겠죠.


봄이면 지난해 못 다 주운 열매 줍는다는 핑계로, 뱃사공에게 저쪽으로 배를 태워달라는 노래도 있군요.


얼떨결에 자빠뜨려져 정신이 아찔한 이 총각.

그게 그저 향긋하고 알싸한 동백꽃 냄새 때문만이었을까요?

김유정이 그려낸 이 순간의 건강한 에로티시즘은 생강 향기처럼 매콤 상큼하네요.


경춘선에는 사람 이름을 딴 김유정역이 있다. 역 근처에 김유정문학촌이 있고, 해마다 3월 29일 추모제를 지낸다.


서울 경춘선 타고 가다 춘천 못 미처에 있는 김유정역은 사람 이름을 쓴 기차역으로는 국내 유일입니다.

매년 3월 29일에는 역과 가까운 김유정 문학촌에서 김유정 추모제가 열립니다.

생강나무를 따라가다 보면, 동백꽃을 만나게 되고, 끝내는 김유정에 이르게 됩니다.


"물 보면 물이 되고 꽃 보면 꽃과 하나 되어 물 따라 흐르는 꽃을 본다."

서옹 스님 말씀입니다.


거스르지 말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물이 권력자는 아니겠지요?

흐드러진 꽃들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니 누가 누구를 거스르지 말라는 걸까요?


교수신문은 교수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뽑은 네 글자로 된  사자성어를 소개합니다.

2017년 연말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니,

물은 물에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


원전은 <순자(荀子)>의 왕제(王制) 편에 나옵니다.


傳曰 君者舟也 庶人者水也(전왈 군자주야 서인자수야), 水則載舟 水則覆舟(수즉재주 수즉복주), 此之謂也(차지위야).

故君人者欲安(고군인자욕안), 則莫若平政愛民矣(즉막약평정애민의)


전해지는 말에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뒤집기도 한다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편안하고자 한다면, 정치에 사사로움이 없게 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이 글이 백성 입장에서는 못 살겠으니 뒤집어엎자로도 읽히고,

권력자 입장에서는 편안하려면 사사로움 없이, 백성을 사랑하라고 읽히기도 합니다.


해석은 여러분의 자유에 맡기겠습니다.


2024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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