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경인 Dec 12. 2020

주나라 재상을 상징하는 묏대추나무

극棘, 이극樲棘, 산조酸棗 (향토문화의사랑방안동, 2021년 3/4월호)

회화나무 괴槐를 설명하는 글에서 <천자문>의 노협괴경路挾槐卿, 즉 “길 양 옆에는 괴槐와 경卿이 늘어서 있다”을 인용한 적이 있다. 성백효 선생이 번역한 <주해천자문>에는 “길(路)은 왕조의 길이다. 길 왼쪽에는 세 그루의 회화나무(槐)를 심었으니 삼공三公의 자리이고, 길 오른쪽에는 아홉 그루의 ‘가시나무(棘)’를 심었으니, 구경九卿의 자리이다. 괴槐는 삼공을 의미한다”*라고 주해를 붙였다. 천자문에서 인용된 이 삼괴구극三槐九棘은 줄여서 괴극槐棘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흔히 중국 조정의 삼공과 구경, 즉 고위 관료를 상징하는 성어로 고전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나는 이 주해를 읽고서 하필이면 왜 경卿을 ‘가시나무’로 상징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대추나무 가시, 2020.7.12 성남


가시나무라면 과연 무슨 나무일까? 가시나무는 ‘가시가 있는 나무’를 뜻할 수도 있고, 종(species)으로서 ‘가시나무’일 수도 있다. <한국고전종합DB>에서 검색해보면, 극棘을 한 두 군데에서 ‘묏대추나무’로 주석을 달기도 했지만, 대부분 ‘극목棘木’, ‘가시나무’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전 번역가들은 대부분의 옥편에서 극棘을 가시가 있는 초목을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를 참조하여 종으로서 ‘가시나무’가 아니라 ‘가시가 많은 나무’의 의미로 번역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찔레나무나 산딸기에 가시가 많아서 가시나무로 부른 기억이 있지만 이 나무들은 키가 작은 관목이다. 교목으로는 아카시나무나 음나무에 가시가 있다. 주엽나무나 중국 원산의 조각자나무도 나무 줄기에 무시무시한 가시를 달고 있다. 시무나무나 대추나무에도 가시는 있다. 종으로서의 가시나무(Quercus myrsinifolia Blume)는,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중국 중남부 지방에 자생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전라남도 진도군 등에서 자생하고 있는, 참나무과 참나무속(Quercus)의 상록수이다. 이 나무는 가을이 되면 도토리를 열매로 달지만 가시는 없으므로 극棘은 아닐 터이다. 이제 극棘이 과연 어떤 나무인지 문헌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묏대추나무, 2021.1.9 의성

우선 삼괴구극三槐九棘은 <주례周禮>의 추관秋官 조사朝士 편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조사朝士는 나라의 외조外朝를 건설하는 법을 관장하여 왼쪽에 구극九棘을 심어서 고孤, 경卿, 대부大夫들이 자리하게 하고, 여러 사士들은 그 뒤쪽에 있게 하며, 오른쪽에 구극九棘을 심어서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이 자리하게 하고, 여러 관리들은 그 뒤쪽에 있게 하며, 정면에는 삼괴三槐를 심어서 삼공三公이 자리하게 하고, 주장州長이나 뭇 서민들은 그 뒤에 있게 한다”**. 이렇게 고관을 상징하고 자리를 지정하는 나무인 극棘이, 삼공을 상징하는 회화나무의 크기에 비추어 관목은 아닐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극棘은 <시경>에도 나온다.


대추나무 꽃, 2020.7.12 성남


<시경>에서 극棘은 패풍邶風의 ‘남풍 (凱風)’, 위풍魏風의 ‘동산에 복숭아나무 (園有桃)’, 당풍唐風의 ‘칡덩굴 자라 (葛生)’ 등 여러 곳에 나온다. 특히 ‘동산에 복숭아나무 (園有桃)’에는 “동산에 극棘이 있어, 그 열매 먹을 만해라 (園有棘 其實之食)”라는 구절이 있어서, 극棘 나무의 열매를 식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초강목>을 보면 극棘은 대추(棗)의 한 종류로, “큰 것을 조棗라고 하고 작은 것을 극棘이라고 한다. 극棘은 산조酸棗이다. 조棗의 성질이 높아서(高) 자朿(가시)를 아래 위로 거듭해서 썼고, 극棘의 성질은 낮으므로(低) 자朿를 옆으로 나란히 썼다. 자朿의 음은 차次이다. 조棗와 극棘은 모두 가시가 있다. 회의會意 글자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극棘이 대추나무 종류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시경식물도감>은 극棘을 묏대추나무(Ziziphus jujuba Mill.)로 보고, 산조酸棗라고 한다고 했다. <중약대사전>도 극棘, 산조酸棗, 산조 山棗를 묏대추나무(Ziziphus jujuba Mill.)로, 조棗, 대조大棗를 대추나무(Ziziphus jujuba Mill. var. inermis (Bunge) Rehder)로 본다. 일본 학자의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도 극棘을 묏대추나무(Ziziphus jujuba var. spinosa), 조棗를 대추나무(Ziziphus jujuba, Z. jujuba var. inermis)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이제 괴극槐棘의 극棘을 가시가 있는 나무 중에서 묏대추나무라고 판단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대추나무라고 하면 동양에서 예로부터 과일 나무로 재배한 역사가 깊으므로, 주周 왕조의 공경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좌) 대추, 2020.11.7 양평, (우) 묏대추 추정, 2021.1.9 의성


우리나라 문헌으로 <훈몽자회>에서는 극棘을 ‘가새 극, 즉, 산조酸棗이다. 일명 이樲’라고 설명하고, 조棗를 ‘대초 조’라고 했다. <물명고>에서도 극棘을 ‘산조酸棗’라고 했으며, <광재물보>는 ‘작은 대추(棗)’라고 하여 <본초강목>의 내용과 일치한다. <전운옥편>에서도 “棘극, 작은 대추로 가시가 많다 (小棗多刺)”라고 했다. 즉, 우리나라 문헌도 나무 종으로서의 극棘을 산조酸棗, 즉 묏대추나무로 봤음이 틀림없다고 하겠다. 이제 <시경> 위풍魏風의 시, ‘동산에 복숭아나무 (園有桃)’ 한 구절을 읽어본다. 올바른 정치가 행해지지 못하는 것을 탄식한 내용이라고 한다.


園有棘                              동산에 묏대추나무가 있어

其實之食                          그 열매 먹을 만해라.

心之憂矣                          마음에 근심이 있어

聊以行國                          나는 애오라지 도성 안이나 쏘다니네.

不知我者                          내 맘속을 모르는 이들은

謂我士也罔極                   나더러 젊은이가 불평 끝없다네.

彼人是哉                          그분 하시는 게 다 옳은데

子曰何其                          그대 무얼 따지느냐네.

心之憂矣                          마음에 근심 있건만

其誰知之                          그 뉘라서 알랴?

其誰知之                          뉘라서 알아

蓋亦勿思                          근심 않을 수 있으랴?****


묏대추나무는 <맹자孟子> 고자告子 편에도 나온다. “지금 원예사가 벽오동(梧)과 만주개오동(檟)을 버리고 묏대추나무(樲棘)를 기른다면 형편없는 원예사가 되는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주희朱熹가 “이극樲棘은 소조小棗이니 아름다운 재목이 아니다”라는 주석을 달았는데, 소조小棗는 묏대추나무를 가리킨다. 이 글에서 맹자는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서 몸만 기르지 말고 심지心志도 키워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데, 맹자가 주나라의 고관을 상징하는 묏대추나무를 좋은 재목이 아니라고 평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대추, 2020.7.18 청계산 옛골


하여간, 조율이시棗栗梨柹니, 조동율서棗東栗西니 하는 말이 알려주듯이 제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실과인 대추를 뜻하는 조棗는 많이 알려진 글자이다. <본초강목>에서 설명했듯이 조棗와 극棘은 회의會意 문자이다. 키가 크거나 작은 것을 나타내기 위해 자朿를 위 아래로 쓰거나, 옆으로 나란히 쓴 차이는 있지만, 옛날에 이 두 글자는 같은 종류의 나무를 뜻했다고도 한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조棗는 대추나무, 극棘은 묏대추나무를 가리키는 글자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이 두 나무는 모두 갈매나무과에 속하는 Ziziphus jujuba Mill.의 변종들로서 대단히 유사한 나무이다.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묏대추나무는 중국과 우리나라에 분포하며, 관목 및 소교목으로, 과실수로 재배하는 대추나무에 비해 탁엽이 변한 가시가 발달하며, 열매가 둥글고 핵의 양 끝이 가시처럼 뾰족해지지 않는 점이 다르다고 한다. 


<끝>

*路王朝之路也 夾路左 植三槐 三公位焉 右植九棘 九卿位焉 槐謂三公也 – 주해천자문

**朝士 掌建邦外朝之法 左九棘 孤卿大夫位焉 群士在其後 右九棘 公侯伯子男位焉 群吏在其後 面三槐 三公位焉 州長眾庶在其後 – 주례 추관

***棗, 大曰棗 小曰棘 棘酸棗也 棗性高 故重朿 棘性低 故並朿 朿音次 棗棘皆有刺針 會意也 – 본초강목

****이가원 번역 <시경> 참조

*****今有場師 舍其梧檟 養其樲棘 則爲賤場師焉 – 孟子/告子.

이전 16화 숨은 선비를 상징하는 초사의 벽려薜荔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