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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Feb 10. 2021

무늬가 아름다운 나무 의椅는?

이나무와 만주개오동

2018년 11월 중순, 제주도 숲을 걸으면서 만난 나무 중에 내 눈길을 가장 많이 사로잡은 나무는 이나무(Idesia polycarpa Maxim.)였다. 청수 곶자왈 곳곳에서 만났는데, 온 나무에 빨갛게 익은 열매 송이를 주렁주렁 늘어뜨리고 있는, 처음 본 남국의 나무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이나무 열매, 2018.11.10 제주도 청수곶자왈


화순 곶자왈에서도 다시 만났는데, “이나무 / 椅, 柞木, 산오동낭 / Idesia polycarpa Maxim. / 해발 600m 이하의 저지대의 숲 속에 나는 낙엽 교목”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었다. 이나무 앞에 이 팻말이 세워져 있었으므로, 이나무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했다. ‘산오동낭’은 이나무의 제주도 방언인 듯 했지만, 의椅와 작목柞木이 정말로 ‘이나무’를 뜻하는지 궁금해졌다.  


(좌) 이나무 수피, (우) 이나무 푯말, 2018.11.11 제주도


우선 <중국식물지>를 보면, 작목柞木은 산유자나무(Xylosma congesta Merr.)의 중국명으로 고전에도 작柞으로 가끔 등장하는 나무이다. 아마도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 1943>에서 의나무(Idesia polycarpa Max.)의 한자명으로 의椅와 작목柞木를 기록하고 있어서 이런 팻말이 붙은 것 같지만, 이나무의 한자명으로 작목柞木은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 같은 산유자나무과에 속하는 이나무는 중국명이 산동자山桐子인데, 의椅, 의수椅樹 등도 이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나무’라는 이름은 한자 의椅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큰데, 의椅는 <시경> 용풍鄘風 에 보인다.


정성이 하늘 한 가운데 - 定之方中/鄘風/詩經


定之方中 정성이 하늘 한가운데 뜬 시월에

作于楚宮 초구 언덕에다 종묘를 짓네.

揆之以日 해 그림자로 재어서 방향을 잡고

作于楚室 초구의 언덕에다 궁전을 짓네.

樹之榛栗 개암나무, 밤나무 심고

椅桐梓漆 의椅나무, 오동나무, 개오동, 옻나무 심어

爰伐琴瑟 뒷날 베어서 거문고를 만든다네


개오동 열매, 2021.1.17 용인


일본의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는 의椅를 ‘이이기리(Idesia polycarpa)’, 즉, ‘이나무’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 학자인 반부준은 <시경식물도감>에서 의椅를 Catalpa bungei C. A. Mey., 즉 만주개오동으로 설명하면서, “일본 학자들이 의椅를 산동자(山桐子, Idesia polycarpa Maxim.)로 오해하지만, 그 나무 종류는 화남華南 및 서남부의 여러 성에서 겨우 자라므로 시경 중에는 나타날 수 없는 나무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을 뒷받침하듯이, 중국의 고전 <이아>를 보면, “의椅는 재梓이다”가 나온다. 재梓는 고향을 상징하는 나무인 개오동(Catalpa ovata)인데, <본초강목>에서도 이시진은 “개오동(梓) 중에서 무늬가 아름다운 것을 의椅라고 한다**”고 했다. 이를 보면 대체로 중국에서는 의椅를 개오동 종류로 봤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의椅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 보자. 우선 <훈몽자회>에서 “梓, 가래나모재, 결이 매끈한 것이 재梓이고, 용茸(맹아 혹은 잔털)이 흰 것이 추楸이다. 또한 의椅라고 한다”로 되어 있어서, 재梓와 같은 종류로 보고 있다. <물명고>에서도 “개오동(梓) 열매에 오동나무(桐) 껍질을 의椅라고 한다. 크게 보아 같은 종류이지만 조금 다르다***”라고 했고, <전운옥편>에도 “개오동(梓) 열매에 오동나무(桐) 껍질”이라고 했다. <자전석요>에서, “재梓이다. 노나무 의(椅)”라고 했고, <한선문신옥편, 1913>과 <한일선신옥편, 1935>에서도 “노나무 의(椅)”라고 했다. 노나무는 개오동의 다른 이름이다.


이나무, 2019.3.6 해남 - 열매를 다 떨구어낸 이나무의 열매자루 모습


이렇든 것이,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 1943>에서 Idesia polycarpa Max.를 “의나무(Eui-namu), 漢子名 椅, 柞木”라고 했고, 그 후부터 1966년에 초판이 발행된 민중서림 <한한대자전>에서는 “椅, 의나무 의, 산유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바로 ‘이나무’를 지칭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의椅를 재梓와 같은 개오동 종류로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것이, 정태현의 연구 이후에 ‘이나무’를 지칭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태현이 Idesia polycarpa에 ‘이나무’라는 이름을 부여할 때 우리나라 문헌을 근거로 하지 않은 듯 하고 일본 학자의 연구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이제 의椅가 무슨 나무인지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다가왔지만, 선뜻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시경에서 의椅는 용풍鄘風 뿐 아니라 소아小雅의 ‘담로湛露’에도 다음과 같이 나온다.


이나무 열매, 2020.11.14 제주도


함초롬히 내린 이슬 - 湛露/小雅


其桐其椅 오동나무와 의椅나무에

其實離離 그 열매 주렁주렁

豈弟君子 즐겁고 편안한 오늘 밤 군자들은

莫不令儀 모두가 아름다운 몸가짐일세.


이나무와 만주개오동은 둘 다 '주렁주렁'이라는 수식어로 표현할 수 있는 열매를 달고 있다. 소아는 주나라 조정이 있던 현재의 시안(西安)에서 불린 노래이므로, 시안과 용鄘 지방에 ‘이나무’가 자라는 지 확인해보면 되겠지만, 이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둔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전 번역서들에서 의椅를 산유자나무, 가래나무, 오동나무 등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재고해보아야 한다.


이나무 잎, 2020.11.14 제주도


하여튼 의椅라는 글자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큰 이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남도 및 제주도에 분포하는 낙엽 교목이다. 나는 열두달숲 모임을 통해 제주도와 전라남도 진도, 해남 지역에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모습과 열매가 다 지고 앙상해진 모습, 잎이 말라가는 모습 등을 보았다. 아직 꽃이 피어있는 이나무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잎자루가 길고 큼직한 잎이 모여난 모습은 오동나무를 연상시키기도 하여 제주도에서 산오동낭으로 불리었을 것이다.


<2019년 1월 쓰고, 2021년 2월 보완, 이가원 번역 시경 참고>


* 日本學者誤解椅爲山桐子 (Idesia polycarpa Maxim.), 該樹種僅産于華南及西南諸省 不應出現于詩經之中 - 潘富俊 詩經植物圖鑑

** 梓木處處有之 有三種 木理白者為梓 赤者為楸 梓之美紋者為椅 楸之小者榎 – 본초강목

*** 梓實桐皮曰椅 大類同而小別 (물명고)

+표지사진-이나무 열매, 2018.11.10 제주도 청수곶자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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