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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리한 탐색가 Feb 27. 2023

일주일에 한 나무씩, 친해보자 2월 셋째주

겨우 살아갈 지라도 겨울엔 내가 주인공! 겨우살이

 겨우 살아갈 지라도 겨울엔 내가 주인공! 겨우살이 


분명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 있을 거라 예상했던 겨울 나무에 초록의 잎들이 마치 새의 둥지처럼 무성하게 모여 있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놀라웠다. 나중에 그것이 다른 나무에 달려 기생이라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겨우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더구나 겨우살이가 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그의 생태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런데 겨우살이를 우연찮게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동네 근처 식당에서였다. 그 식당은 장뇌삼과 각종 약재들을 취급하며 보양음식을 하는 식당이었다. 안에 들어가면 그런 식당스럽게 무엇인가가 들어있는 커다란 갈색 유리병들이 가득했다 그런 와중에 커다란 양파자루같은 주머니들이 한 곳에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살이였다. 주인아저씨는 직접 산에서 뜯어왔다며 자부심에 꽉 찬 눈빛을 보이곤, 먹으면 어디 어디에 좋다는 얘기를 하시며 열변을 토하셨다. 실제로 겨우살이를 검색해보면 효능과 복용방법에 관한 자료들이 넘쳐나고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를 알 수 있다. 그 덕에 국립공원과 같은 곳에서는 몰래 채취하려는 사람과 보호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많은 실랑이가 오가기도 한다. 

추운 겨울을 겨우 살아 넘기므로 겨우살이라고 한다고 하고 또는 겨울에도 푸르게 살아있으므로 겨우살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도 한다. 전국의 산에 드물게 자라는 늘푸른 작은나무로 주로 참나무류, 팽나무, 물오리나무, 밤나무, 자작나무, 배나무 등에 기생한다고 한다. 내가  본 벚나무에서 싹트는 겨우살이의 예를 보면 더 다양한 종류에 기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겨우살이 말고도 남쪽지방과 제주도를 중심으로 동백나무에 기생하는 동백나무겨우살이와 붉은 열매가 달리는 붉은겨우살이, 노란열매가 포도송이처럼 줄지어 달리는 꼬리겨우살이들이 있다. 내가 사는 용인 주변에는 대부분 그냥 겨우살이이다. 소나무겨우살이라고 하여 새롭게 주목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추운 북쪽지역의 높은 산 소나무에 많이 걸쳐 사는 이끼종류이다. 이름만 겨우살이라는 이름을 빌렸으니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겨우살이는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가 아니라 활엽수에 기생하는 나무이다. 

항상 키 큰 나무 꼭대기에 있어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겨우살이를 이렇게 직접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식당에서 조금 얻어왔다. 너무 뿌듯했다. 이윽고 겨우살이 관찰에 들어갔다. 정말 나무 같다. 줄기도 딱딱하고 잎도 풀잎처럼 하늘하늘한게 아니라 사철나무나 동백나무 잎처럼 두껍고 딱딱했다. 다만 크기가 좀 작은 내 손가락 두마디 정도의 길이였다. 가지가 Y자로 갈라지고 마디가 생기고 또 Y자로 갈라지고를 네 다섯 번 반복하다가 끝에 잎이 두 개가 마주보고 나 있다. 

열매도 보였다. 지름이 1cm도 채 안되는 연한 연두색 구슬같이 생긴 동그란 열매다. 먹을 수 있는 건가? 손으로 만지는 순간 찝찝함이 후끈 들어왔다. 열매를 만지자 푹 터지면서 안에 있던 씨앗이 보이는데 씨앗을 감싸고 있는 액체가 끈적끈적였다. 씨앗이 마치 내 손가락에 찰싹 달라붙듯이 끈적였다. 겨우살이는 왜 이런 씨앗을 갖게 되었을까?

겨우살이는 아주 독특한 삶을 선택했다. 동그란 열매는 새들의 눈에 띄는 좋은 먹이가 된다. 직박구리 같은 새들이 많이 먹게 되는데  열매를 먹게 되면 새들은 이동을 하며 똥을 싸게 된다. 그 똥과 함께 소화되지 않은 씨앗이 나오게 되는데 끈적끈적한 액체는 새들의 몸을 통과해서도 끈적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새의 몸에서 땅으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앉아있는 새의 엉덩이에서 쭈욱 늘어져 나와 조금 아래에 있는 줄기에 떨어지게 되는데  여기서도 끈적함은 유감없이 발휘되어 가지에 부딪쳐 튕겨지는 것이 아니라 가지에 찰싹 달라붙게 된다. 또는 새가 열매를 먹을 때 씨앗을 뱉으려고 하는데 부리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자 줄기에 대고 비비다가 줄기에 붙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씨앗은 새들로 인해 어미나무로부터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싹을 틔우게 된다. 

그러나 올라앉은 나무의 줄기엔 흙도 물도 없이 척박한 곳이다. 어디 기대어 자랄 수도 없다. 살아남기 위해 겨우살이는 나무의 줄기 안으로 뿌리를 박아 버티고 서야 한다. 나름 초록색 잎을 갖고 있어 광합성이라는 생산작용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가기에 그 양이 부족하여 숙주가 되는 나무의 양분과 수분을 가로채는 얌체짓을 할 수 밖에 없는 반기생 상태로 살아간다. 

그래서 겨우살이가 기생하는 나무는 생장이 느리게 되고 수명도 짧아진진다고 한다. 또한 겨우살이가 뚫고 들어간 틈 사이로 해충이나 병균 등이 침입하기도 한다고 하니 나무들에게 있어 겨우살이가 반갑지는 않을 터이다. 그런데 주로 햇빛경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키 큰 나무들에게만 겨우살이가 붙는다 하니 어쩜 그 아래 그늘에 사는 키작은 나무들에게는 응원군이 될 수 있겠다. 역시 생태계에선 영원한 약자와 강자도, 일방적인 희생이나 군림도 없다. 

다른 계절엔 숙주가 되는 큰 나무의 잎들로 인해 겨우살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갈까? 겨우살이는 높은 가지 위에서 3월에 노란 꽃을 피우고 10월에 열매를 단다. 올라붙은 나무의 줄기 안으로 뿌리를 박고 그 나무로부터 물과 양분을 얻어먹으면서 자신의 몸을 키우고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내고 잎을 만들고 열매를 만들며 성장하게 된다.

화려한 주인공에 가려져 보이지 않더라도 꾸준히 자기 몫을 하며 극의 완성도를 높혀주는 조연배우들이 있다. 그러다가 짧은 순간 자신이 부각될 때 미친 존재감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조연배우들을 우리는 신스틸러 라고 부른다. 

겨우살이가 그런 것 같다. 척박한 가지위에서 숙주의 나무껍질에 붙어 씨앗이 싹을 틔워 첫 잎이 나기까지는 5년쯤 걸린다. 그리고 나서도 봄 여름 가을 좋은 시절엔 좀처럼 보이지 않다가 겨울이 되어 나무가 한 숨 고르며 잠시 쉬어갈 때 ‘나 여기 있어요.’ 작은 초록 생명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순간만큼은 겨우살이가 주인공이다. 겨울의 신스틸러! 겨우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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