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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Sep 13. 2023

승무 -조지훈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 -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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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로 연락 주신 독자분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 조지훈 님의 승무입니다.


어린 시절 학교 수업 시간에 자주 들어서인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반가운 시입니다.


승무를 바라보던 시인의 뜨거운 감정을 이제야 잠깐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하여 전문을 천천히 읽어봅니다.

그 옛날의 춤사위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허공을 펄럭이며 바람에 얹혀있는듯합니다.


오늘은 이 문장에 눈이 멈춥니다.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그러게요.

세월을 살면서 피고 지는 그 모든 번뇌가 돌아보면 별빛입니다.

그 춤사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그 번뇌가 별빛임을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 들락거리는 번뇌도, 우리의 어깨를 누르는 세상사도 다 별빛일 겁니다.

다 피고 지는 것이겠지요.

펄럭이는 승무를 떠올리며 마음 다스려보는 오늘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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