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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봉봉 Oct 10. 2023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슬럼프가 찾아온다면

창업 성공, 그 이후의 삶 (5)


공방을 운영하다 보면 종종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옵니다. 바로 슬럼프라는 녀석이지요. 즐겁고 열정을 가지고 하던 일이 어느 순간 무의미해지는 시기가 와요. 분명히 어제 까지만 해도 기꺼이 해 냈던 일들이 하루아침에 버겁게 느껴지는 거죠.


첫 시작은 아주 가벼운 잽으로 시작해요. ‘에게... 이게 펀치야?’ 라며 여유 있게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요. 그런데 가벼운 펀치가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네 번이 되면... 시퍼런 멍투성이가 되어 버려 있는 것이죠.


그때가 되면 내 자식처럼 예쁘던 작품들이 발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평범해 보입니다. 나만의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구겨지죠.


“내가 과연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녀석이 찾아오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먼저, 외부의 요인들이 있죠. 원자재의 비용이 올랐거나, 경기가 안 좋아서 클래스를 예약하는 사람이 줄어들을 수 있어요. 암울한 현실 앞에 속이 얹힌 듯 답답해질 때가 있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인지라 마음에 생채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면전에서 비난이나 비꼬는 말을 듣게 되면 속이 싸르르 아립니다. 공방에서 만드는 작품들은 때론 분신처럼 소중하기에, 작은 평가도 개인적으로 다가오곤 하니까요.


내부적인 요인도 있을 거예요. 건강이 나빠지면 항상 해오던 일도 힘에 부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그래서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마음도 함께 앓게 되죠.


이상과 현실이 다를 때도 슬럼프는 찾아옵니다. 희망하는 수준의 디자인이나 맛이 구현되지 않아 좌절하는 순간이죠. 망친 재료들과 망친 작품들을 바라보며 한숨과 함께 주저앉는 날도 있어요.


하지만 가장 무서운 슬럼프는 이유 없이 찾아오는 슬럼프입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덜컥, 마음을 비집고 들어 오니까요.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납덩이같은 무기력함을 마음에 얹으면서요.


저도 슬럼프를 겪느냐고요? 당연하지요! 인스타그램으로는 밝고 아름다운 모습을 주로 보여드리지만, 사실 저도 생각보다 슬럼프라는 녀석과 자주 조우 한답니다. 때때로 그냥 털썩 주저앉아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을 때가 있어요.


눈에 보이는 화려한 모습은 빙산의 일각 일 뿐이지요. 실제로는 수면 위에서만 우아한 백조처럼 정신없이 두 다리를 버둥대고 있어요. 지금도요. 노력해서 연구 한 작품이 결실을 맺었을 때, 수강생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완성 작품을 촬영할 때… 빛나고 행복한 찰나의 순간을 위해서 귀찮고 하기 싫은 일들을 버텨 냅니다.


그런데 어떤 날은 손이 고장이라도 난 건지, 도무지 풀리지가 않는 날들이 있어요. 멀쩡하게 잘 끓여지던 양갱이 너무 빨리 굳기도, 너무 퍽퍽하기도, 너무 부드럽기도 해요. 분명 머릿속에 그리던 화과자가 있었는데, 완성된 모습은 촌스럽고 조잡스럽게 보이기도 하죠. SNS 속 동종업계 공방에선 다들 어쩜 그렇게 기발한 작품을 만드는지!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반기지 않아도 찾아오는 슬럼프! 이 녀석이 슬쩍 방문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는 생각의 전환입니다. 익숙한 장소를 박차고 나가세요. 바람을 쐬고 생각의 전환을 하세요. 전시, 책, 영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거예요. 평소에 가지 않았던 길로 걸어 가 보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장소로 여행을 가 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의 첫 슬럼프는 창업 3년 차에 찾아왔어요. 열심히 준비하고 계획했던 해외 출강이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되고, 강의를 진행하던 업체와 계약 연장이 되지 않고,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었어요.


그때 우연히 눈에 띈 4주짜리 수채화 클래스를 수강했죠. 공방에서 하는 일과 크게 상관없는 수채화를 그리며 마음이 차분하게 진정되고, 회복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슬럼프를 겪으며 그랬던 수채화들 (왼쪽) 그리고 수채화 기법을 적용해서 만든 디저트들 (오른쪽) 


전설적인 프로골퍼 박세리 선수도 슬럼프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지인의 권유로 낚시를 시작하면서 슬럼프를 극복했다고 해요.


“낚시를 하면서 점점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앞만 보고 달렸는데 슬럼프 때 많은 걸 배웠다”


박세리 선수의 고백입니다. 골프와 전혀 상관없는 낚시 덕분에 다시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고 우승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꾸준히 일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슬럼프가 오지 않은 양, 매일의 루틴을 유지하는 것이지요. 슬럼프가 오건 말건 인스타그램에 1일 1 피드를 올리고 블로그에 1일 1 포스팅을 올리세요. 창작을 하고 사진 촬영할 여유가 없다면 과거에 만든 작품과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올려보아도 좋습니다.


슬럼프에 빠졌다고 모든 활동을 멈춘다면, 다시 바닥을 박차고 올라오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답니다. 깊은 구렁텅이에서 언제 다시 온전히 회복하게 될지는 모르는 하루하루. 꾸준히 일상의 루틴을 지속해 보세요. 마음이 따라오지 않더라 도요.


피겨여왕으로 불리는 김연아 선수도 18년의 선수 생활동안 슬럼프를 자주 겪었다고 합니다. 은퇴 후 한 강연에서 “좋은 기억은 순간뿐이고 슬럼프는 항상 함께 했다”라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적도 있으니까요. 슬럼프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매일매일의 루틴이었다고 해요.


“슬럼프 극복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어릴 때는 화도 내고 울고 했는데, 이제는 괜찮아질 걸 아니까 ‘언젠가는 지나가겠지’ 하고 내버려 둔다. 슬럼프가 와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매달려야 한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샌가 슬럼프가 지나가 있다”


소아정신과 지나영박사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에서 하루 3분 동안 꼭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자존감과 성취도를 높여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슬럼프에도 불구하고 1일 1 피드를 올린 당신을 으스러질 정도로 꼭 안아주세요. 어느덧 슬럼프에서 회복되어 웃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슬럼프가 올 때는 잠시 쉬어가도 괜찮습니다. 그대로 멈추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거든요. 어떤 슬럼프는 평범한 일상조차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기도 합니다. 진흙탕 속 괴물의 손처럼 당신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죠. 깊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요.


그럴 때는 저항하지 마세요. 발버둥 칠 수록 수렁으로 더욱 빠져들 뿐이니까요. 우뚝 멈춰 서세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 타이밍이 온 것뿐이에요.


이성복 시인은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에서 “청년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멀리 보지 말고 자기 발밑을 보세요. 잘 안되면 똑같이 어느 순간엔 시동을 꺼야 해요. 어느 날 내가 면도를 하다 면도기가 잘 안 들어 서비스 센터에 전화했더니, 완전히 끄고 다시 켜래. 하지만 상황에 빠지면 끌 생각을 못하죠.”


고장 난 면도기 같이 멈춰서는 날이 찾아온다면. 그럴 때는 잠시 시동을 끄세요. 그래야 다시 제대로 켜질 수 있으니까요.






슬럼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보아요. 슬럼프 요놈이 왔구나! 하며 미소를 지어보세요.


어쩌면 슬럼프는 당신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을 줄 수도 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던 일상에 변화를 줄 절호의 기회 인지도 모르지요. 지친 몸과 마음이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인을 보낸 것 일 수도 있고요. 슬럼프를 핑계로 잠시 쉼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지금은 세상을 떠난 유대인 강연자이자 랍비인 재커라이아 월러스타인 (Rabbi Zecharia Wallerstein)은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깊고 어두운 땅속에 매장된 것 같지만
사실... 당신은 그곳에 심긴 거예요."

Sometimes when you’re in a dark place you think you’ve been buried,
but actually… You have been planted.


심연처럼 어두운 슬럼프 속에 잠겨 있을 . 어쩌면 파묻힌 것이 아니라 잠시 깊은 땅속에 심겨 있는  일지도 몰라요.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인 것이죠. 그러니 잠깐, 멈춰가도 괜찮습니다.



기억하세요.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아요.다시 시작해도 괜찮아요.쉬어가도 괜찮아요.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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