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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밍 Jul 26. 2017

사느라고 애들 쓴다

김용택, <쉬는 날>



쉬는 날 / 김용택


사느라고 애들 쓴다


오늘은 시도 읽지 말고 모두 그냥 쉬어라

맑은 가을 하늘가에 서서


시드는 햇볕이나 발로 툭툭 차며 놀아라





 많다. 뭐든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 머릿속과 나의 주변을 윙윙 맴도는 이야기들이. 각종 SNS의 소식과 끊임없이 울려대는 카톡들이. 안부를 묻는 연락조차 하지 않을 공허한 이름의 목록들이. 얼굴을 맞대고서 서로의 삶을 이야기할 순간이 결코 오지 않을 화면 너머의 사람들이. 나의 행성과는 같은 궤도를 공유하지 않을 타인의 근황과 일상들이. 나의 고민과 내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움도. 순간의 감정들도. 조울의 나날들까지도. 너무 모든 것이 과잉인 세상이라 자주 지치고 힘겹다.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어도 내 귓가는 금세 소란스러워진다. 네모난 화면 속 작은 세상을 내려놓아도, 꾹 눈을 감아보아도, 깊은 잠을 한숨 자고 난 뒤에도 이 소란은 사라지지가 않는다. 살아있음의 시끄러움. 그 요란한 리듬에 나의 머리는 곧잘 지끈거리고. 너무 많은 선과 연결되어있어 이제는 모두가 뒤엉켜버린 내 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용기를 내어 가위를 집어들지만. 어느 것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도통 알 수가 없어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시, 힘없이. 그 살아있음의 언저리로 발걸음을 옮기고야 마는 것이다.


과잉의 세상에서 "사느라고 애들 쓴다"는 어느 시인의 덤덤한 목소리는 꽤나 낯설다. 시도 소설도 그 어떤 것도 읽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어가라는 조용한 이야기. 바쁜 것이 미덕이자 미학으로 자리잡은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감히 나의 인생에게 쉬어감의 사치를 선물해보려 한다. '자극적이지 않은 컨텐츠'를 업로드하는 것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페이스북의 어떤 페이지처럼, 내 삶 역시 그런 모습이기를 가만히 바라본다. 너무 시끄럽고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조금은 단촐하고 밋밋해 보이더라도 조용하고 편안한 삶이기를. 여유와 사유가 주는 부드러운 행복을 잔뜩 누릴 수 있는 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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