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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Jul 20. 2023

까치발을 한 뽀리뱅이


집에서 조금 먼 미용실을 찾아갔다. 머리를 하러 간 게 아니라 풀잎 친구의 안부를 보기 위해서였다.

친구의 이름은 뽀리뱅이. 사람들은 내 친구를 잡초라 한다. ‘전략가 잡초’를 쓴 이나가키 히데히로에 의하면 잡초는 사람이 바라지 않는 데서 자라는 풀이라고 한다. 내 친구 뽀리뱅이도 미용실 주인이 원치 않는 곳에서 눈치껏 살고 있었다. 미용실 입구 바로 옆 벽틈으로 최대한 몸을 숨기며 없는 듯 서 있었다.

다른 뽀리뱅이처럼 잎을 맘껏 펼치지도 못하고 들고나는 손님들 발에 치일세라 위로만 키를 늘였다. 그 모습이 까치발을 하고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는 미어캣 같았다. 안타깝고 대견해서 나는 뽀리뱅이를 친구로 삼았다.

뽀리는 4년을 내리 같은 자리에서 자라고 씨앗을 퍼뜨렸다. 자잘한 노란 꽃이 잔가지 끝에서 피고 지면 어느새 초여름이다. 뽀리는 솜털에 쌓인 갓씨를 바람결에 훌훌 떠나 보냈다. 한없이 가볍고 더없이 충만하게.

그런데 이번에 와보니 뽀리뱅이가 없다. 주인이나 그 누군가가 뽀리가 있던 주변을 싹싹 긁어훼손했다. 씨앗을 날리고 나면 연한 잎 두어 장으로 늦가을까지 존재감을 나타냈는데. 이제 친구를 다시 볼 수 없다니 힘이 쪽 빠졌다. 쓰레기처럼 버려졌을 친구가 마음에 사무쳤다. 

허망하게 떠난 친구를 추억하며 터덜터덜 돌아오던 길.

보도블럭 주위로 오랑캐꽃 민들레 꽃다지 냉이가 납작 엎드려 흔들리고 있었다.

작고 연약하지만 자기만의 우주를 품은 모습들이다. 우리가 하찮다고 얕보는 존재들도 어엿한 우주의 구성원이다. 인간만이 우주의 주인이라는 오만은 부디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사실 인간이 없으면 잡초도 없다.

토끼풀은 인간에겐 잡초지만 토끼에겐 주식이다. 하여, 잡초라는 말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작명이다. 잡초가 성가신 애물단지라는 편견은 식물을 주제로 한 어느 다큐멘터리를 보면 와장창 깨진다. 애초에 지구라는 행성은 인간이 아니라 풀이 주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풀 중에서도 잡초라고 하는 군집들이 지구를 자정, 순환, 영속케하는 영웅들이다. 그런데도 잡초는 인간의 눈과 발을 피해 도망 다니는 서글픈 신세다. 심한 주객의 전도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어느 늦가을 구룡포에 간 적이 있다. 빈집이 얇은 햇살에 혼자 야위고 있었다. 그런데 삭아가는 집 곳곳에 소루쟁이와 억새가 우렁우렁 자랐다. 갈라진 시멘트 사이로 흐드러진 개망초가 빈집의 궁티를 쓸어냈다. 바스러지는 집의 등뼈를 잡초가 굳건히 떠받치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엄했다. 잡초는 인간보다 잘 견디고 영원하다.     



여시아문 칼럼(불교신문)


고훈실 (동화작가. 시인)


길 섶에 서 있는 뽀리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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