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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ug 13. 2019

다시 만난 독일 의대생 커플, 다리안, 니콜라

인연으로 우리의 생은 반짝반짝 

-민우, 어디야? 우리 트빌리시에서 쿠타이시로 넘어가. 오래는 못 있어. 일찍 넘어가야 해서. 


케이블카를 안 탔다면 이런 인생사진을 찍을 수 있었겠어?

이런이런! 시간이 없으면 차만 마셔야지. 아니지. 아르메니아에서 넘어오는 거잖아. 그러면 아블라바리역(Ablavari) 앞에서 내릴 거 아냐? 케이블카를 타야지. 5분만 걸으면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고. 정상 바로 밑에 카페가 있거든. 거기서 아르고 맥주 마시자. 기가 막힐 거야. 


-민우, 우리 그냥 하루 트빌리시에 있을래. 너 묵는 곳이 어디야? 가까운 데서 묵을래. 


쿠타이시에서 프로메테우스 동굴을 보겠다며? 이틀 남았는데, 하루를 트빌리시에서 보내겠다고? 음. 예외적으로 좀 다정해져 볼까? 그렇게 내가 좋냐? 나는 너희들 만큼은 아니야. 아니지. 아니고, 말고. 난 유명 작가님이셔. 한국에서 종일 돌아다녀도 아무도 몰라 보지만, 어쨌든 유명 작가님이시지. 내 책을 읽으면, 저절로 인생 책이 돼. 따지지 말고, 자세히 캐묻지 마. 유명 작가라면 그런 줄 알아. 너희들만 내가 간절한 게 아니야. 내 일상이 궁금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래서 내겐 너무 당연하지만, 그래도 손님이니까. 나 때문에 하루를 머물겠다니까. 한 번 거하게 쏠게. 호텔 식당이야. 멜로그라노(Melograno)로 와. 


야, 그렇게 격하게 끌어안고 그러지 마. 사람들이 다 보잖아. 마음껏 시키라고. 형이, 오빠 전재산이 80만 원이거든. 10만 원까지 쓸 생각이야. 런치 메뉴가 있는 줄 몰랐네. 수프, 메인, 커피까지 다 합쳐서 10라리(4천 원). 정말 몰랐어. 놀랐어. 트빌리시 어디에서 먹어도 인당 최소 20라리야. 10라리? 호텔 밥이? 소름 돋았어. 착하게 살면, 베풀겠다고 마음먹으면 기적이 일어나는구나. 기적이야. 하늘을 나는 양탄자와 10라리 호텔 밥 중 어느 게 더 신비롭냐고? 당연히 하늘을 나는 양탄자지. 무슨 그런 정신 빠진 질문을 하고 그래? 10만 원 쓸 생각 했는데, 만 원에 이천 원만 보태면 되네. 마음껏 먹으렴. 추가로 케이크도 먹어. 커피도 더 시키고. 막 먹어, 더 먹어. 너네 나이 때는 새벽에도 배고파서 일어나잖아. 96년생이라고? 오빠가 93학번이니까? 응? 잠깐 96학번 아니고, 96년생? 학교에서 96학번도 가물가물한데 96년생? 96년에 잉태된 생명체가 언제 이렇게 성체가 된 거야? 나 군대 있을 때, 너희들이 신생아실에 있었겠구나. 내 샌드위치도 더 가져가. 프렌치프라이도 너네 거야. 내가 아빠겠구나. 너네 부모님이랑 어울려야 맞는 건데 말이야. 나중에 홍삼 한 박스 들고 찾아뵐게. 


케이블카 타길 잘했지? 트빌리시에 이틀 머물 때 뭐한 거야? 케이블카는 꼭 타야 한다고 했어, 안 했어? 이유를 알겠지? 맥주 맛이 다르지? 트빌리시에서 여기 안 보면, 안 온 거나 마찬가지야. 동의하지? 그만 말해. 나 떠들 시간 줄어들잖아. 알아, 내가 좀 말이 많은 거. 셋이서 밤기차를 타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산을 탔잖아. 술을 퍼마시고, 춤을 췄잖아. 그것도 뭐, 재미난 경험이지만, 끝이면 끝인 거잖아. 그립다고 말하지만, 인사치레지. 절절이 그립다면 개오버지. 다시 만나면서도 놀라워. 며칠 있으면 딱 견적 나오거든. 지루하지 않으면서, 따뜻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알지. 너네들이야. 그래 영광인 줄 알라고. 내가 인정할게. 인증해 줄게. 배려하고, 듣고, 먼저 찾아. 감정을 드러내지. 겁도 없이, 내가 보고 싶었다고 말해. 내내 사랑받아서, 어디서나 관심받아서 당당한 거니? 너희들의 이야기가 재밌어.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아서 의사가 되고 싶다니. 니콜라! 넌 정말 따뜻한 의사가 되겠구나. 그래도 길거리 개들에게 음식 좀 그만 줘. 식당 주인이 눈치 주잖아. 쿠르드족 아버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리안. 쿠르드어를 완벽하게 하고 싶다고? 나라도 없이 사는 쿠르드족이, 쿠르드족의 언어가 너에겐 뿌리인 거지? 나 때문에 한국이 궁금해졌어? 꼭 와보고 싶은 나라가 됐어? 내가 사람 많이 만나 봤잖아. 수백 번의 이별을 했잖아. 다들 흐릿해지다가, 결국 잊혀. 너희들도 그럴 거야. 왜 확신하냐면, 시간이 가늠 못하게 위대하거든. 너네가 아무리 아니라고 잡아떼도, 우리는 희미해질 거야. 못 만날 확률이 90%지. 그렇더라. 살다 보면 바빠지고, 나머지를 놓게 되더라. 우리는 쿠폰을 다 쓴 느낌이 들어. 두 번을 만나다니. 너희들이니? 나니? 누구의 그리움이니? 누구의 힘으로 우리가 지금 함께 밥을 먹는 거니? 너희들이 희미해져도,  이 순간의 놀라움은 간직할 생각이야. 흐릿해짐을 속상해할 생각이야. 내가 낸다고 했지? 저녁 밥값을 너네가 내면 내가 뭐가 되니? 점심밥 값보다 두 배는 더 나왔잖아. 그럼, 내일 파브리카 조식은 내가 낼게. 안 그러면 안 갈 거야. 진짜로 삐질 거야. 


너네 고집도 징글징글하다. 내 카드를 뺏어가? 건방지게? 독일에서 자라서 나이차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구나. 독일 안 간다. 너네 안 본다. 협박도 안 통하는 징글징글한 것들아. 쿠타이시로 얼른 가. 그만 좀 꾸물대고. 니콜라 너는 배탈까지 나서는 뭐하러 아침을 먹재? 차 안에서 똥 지리면 내 탓 아니다. 다리안은 우산 준비해. 그리고, 언제든 차 세워달라고 소리 지를 준비도 하고. 만약의 사태가 되면, 그냥 네 사랑만 지켜. 풀이 무성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우산으로 가려주라고. 아무리 아파도, 세상이 흔들어도 단 한 명만 지키고 있으면 돼. 버티고 있으면 돼. 한없이 강해질 필요도 없어. 너의 마음이, 너의 진동이 드러나기만 하면 돼. 그것만 보여주면 돼. 그거면 되는 거야. 오늘이라도 안 늦었어. 어서어서 프로메테우스의 동굴을 보라고. 가장 보고 싶었던 걸, 꼭 보라고. 배탈이 났으니, 더 감동적일 거야. 아플 때 함께니까, 모든 순간이 다 기적인 거야. 너희들을 축복해. 나는 이미 충분하다. 그러니 너희들의 축복 필요 없어. 다 가지고 가. 다시 보자는 말은  하지 말자. 약속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듯, 다짐하지 않은 내일은 모두 우리 거야. 우리는 그 안에서 마음껏 그리워하면 되는 거야. 즐겁게, 너무 애틋하지 않게. 


PS 매일 여행기를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 방식이랄까요? 조금씩 잡념이 없어지고요. 결국 깨달음에 닿지 않을까 허망한 욕심이 있어요. 매일 한 권의 책을 더 팔고 싶다. 이런 유치한 욕망도 있고요. 혹시 동네 도서관에 제 책이 있나요? 박민우의 책들을 추천해 주실래요? 좋은 책입니다. 정말.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방콕 갈 때 이 책을 안 가져가시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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