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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Jun 19. 2018

흔하지만 강인하여 쓸모가 많은 나무

1. 고개 숙여 친밀한 정감-02싸리

1. 고개 숙여 친밀한 정감-02싸리
흔하지만 강인하여 쓸모가 많은 나무

작고 예쁜 노란 손수건의 가을


흔하지만 그 종류가 스무 가지가 넘는다


가을이면 작고 예쁜 노란 손수건이 걸려 있는 들판으로 나간다. 싸리를 만나러 나선다. 가까운 곳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다. 산을 깎아 길을 만든 절개지 언덕, 공원을 다듬으며 만들어 낸 경사지 곳곳에 어쩌면 흙이 무너지지 말라고 심어 놓은 나무이다. 


싸리는 눈을 호강시키고자 심는 게 아니라 특정 목적을 수행하고자 식재한 나무이다. 토목 공사로 벗겨진 토양을 고정시키는 데 매우 유용한 식물 소재이다. 싸리는 콩과식물의 전유물인 공중 질소를 고정하는 능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싸리는 20여 가지가 넘는다.

싸리는 가까운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이다.


꽃 피는 기간이 대단히 길다


싸리의 꽃은 예쁘다

한여름부터 피기 시작한다

꽃은 작지만 순수하고 소박하다

배롱나무만 100여 일 꽃이 피는 게 아니다

싸리의 꽃도 피는 기간이 그렇게 길다

꽃이 부족한 시기에 피어 꿀벌에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아주 세심하게 가까이 다가가 일삼아 바라본다 

붉은색 계통의 촘촘한 꽃이 나비를 닮아 있다 

나비를 닮은 붉은색 꽃이 좋아 한참 넋 놓고 쳐다보게 한다 


나비 모양의 붉은색 꽃이 한참을 보게 한다


나비 모양의 붉은색 꽃을 피우는 콩과식물의 싸리 속에는 싸리 말고도 조록싸리, 참싸리, 해변싸리 등이 있다. 가장 흔하게 만나는 것이 싸리, 조록싸리, 참싸리로 모두 잎 대궁 하나에 잎이 3개씩 달리는 3출엽이다. 조록싸리만 잎 끝이 뾰족하고 싸리와 참싸리는 동그스름하다. 


싸리는 꽃대의 길이가 4~5cm로 잎보다 크고, 참싸리는 꽃대가 1~2cm로 잎보다 작다. 밑에서부터 많은 가지가 올라오는데, 자연스럽게 둥근 모양으로 자란다. 바깥 가지가 바깥을 향하여 자연스럽게 늘어지기 때문에 수형이 단정하다. 줄기나 가지는 겨울철에 반 이상이 말라죽는다. 


내가 군대생활을 할 때에도 가을이면 일삼아 산으로 나가 싸리를 잘라 와서 겨울나기를 준비하였는데, 주로 싸리비를 만드는 일이었다. 마당을 쓸고 겨울 내내 눈 치우는 데 싸리비를 이용하였다. 묵은 가지를 잘라주면 새로운 가지가 더 많이 돋아나서 생육이 왕성해지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나비 모양의 붉은색 꽃이 앙증맞다


싸리의 다면적 활용은 생각보다 넓다


어릴 때 시골에서 집을 수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벽체가 지금처럼 단단하지 않아 발로 차면 구멍이 나기도 했다. 어떤 집은 수수깡으로 엮었고, 어떤 집은 싸리를 엮어서 진흙을 개서 수리하였다. 물론, 수수깡보다는 싸리가 훨씬 단단하다. 실제는 소나무나 느티나무였지만 싸리나무로 기둥을 하였다고 전해지는 건축물이 있다. 담양 척서정, 울산 만정헌, 마곡사 대웅보전, 김천 직지사 일주문, 신륵사 극락전 등이 싸리로 만든 둥근기둥(두리기둥)을 사용했다고 한다. 


싸리는 나무 줄기가 단단하고 탄력이 강하여 많은 생활용품에 사용되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싸리로 만든 빗자루이다. 전통 민속마을 답사를 가도 싸리를 엮어서 만든 문을 많이 볼 수 있다. 소쿠리, 지게 위의 발채, 물건을 담아 옮기는 삼태기, 곡식 고르는 키, 물고기를 잡는 통발, 고리, 채반, 도시락, 술을 거르는 용수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싸리는 베어지고 또 베어져 실생활의 갖은 생활도구로 되살아난다. 


싸리로 만든 생활용품은 살림의 필수품

싸리로 만든 채반

이제는 잊혀져 만들지 않지만 만드는 방법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고리는 싸리와 대나무로 만들고 떡이나 엿 등을 멀리 보낼 때 사용한다. 싸리 껍질을 벗겨 잘게 쪼개 밑이 약간 둥그스럼하게 엮고 옆은 대나무로 처리하여 매듭한다. 결혼 후 사돈댁에 떡, 엿 등의 특별한 음식을 담아 보낼 때 쓰이므로 떡고리라고도 부른다. 다락에 얹어 놓고 떡이나 엿을 두기도 한다. 


채반은 원형, 육각형, 사각형, 광주리형 등의 여러 모양이고 대나무나 싸리로 만들었으며 생선, 채소 등을 말릴 때 사용한다.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며 통기성이 좋게 만든다. 예를 들면, 지름 43㎝, 높이 10㎝ 정도로 밑은 납작하게 엮는다. 부침개, 부치미 또는 여러 가지 전을 일시 보관하거나 물에 젖은 음식 재료를 말리는 데 쓰인다. 삼태기 멍석이나 마당에 널려 있는 곡식을 고무래 갈퀴 등으로 긁어 담을 때 사용하는 용기이다. 싸리를 잘게 쪼개어 삼각 모양으로 뒤는 둥들게 엮고 앞은  납작하게 엮는다. 감자 따위를 캐서 담거나 큰 그릇으로 운반할 때, 멍석에 말린 벼나 보리 따위를 고무래로 긁어 담을 때, 잿간에서 재를 퍼서 수레에 실을 때 등 여러 가지로 쓰이므로 거의 모든 농가에서 비치하고 있었다. 


나를 키운 것은 싸리 회초리다


필요하지 않지만 필요할 때가 있는 회초리 역시 싸리로 만들었다. 회초리는 이제 물건 자체의 이름보다는 무언가 꼭 필요한 부분을 들춰서 꼭 집어 말하는 행태에 비유되기도 한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고을 원님이 되어 부임지로 가는 길에 싸리를 발견하고는 가마에서 내려 싸리에 대고 계속 절을 하였다. 주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이 사람은 자기가 고을 원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의 은덕이기도 하지만 싸리 매로 맞은 덕분이기도 하다고 하였다. 싸리 덕에 열심히 공부하여 고을 원님이 되었으니 고마워서 자꾸 절을 한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게 해 준 매가 싸리였으니 절을 하고 고마움을 새기는 것이었다. 


불에 타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용맹하다


우리나라 활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계림유사』에 “궁을 활이라고 한다.[궁왈활弓曰活]”, “쏘는 것을 활 쏘아라 한다.[사왈활삭射曰活索]”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활’과 ‘활 쏘아’는 우리 고유어임을 알 수 있다. 화살이 활 쏘아에서 유래하였다. 화살의 구조를 보면 몸체는 대나무, 오늬는 싸리, 깃은 꿩깃이다. 오늬를 싸리로 만든다는 것이다. 오늬는 ‘화살의 머리를 활시위에 끼도록 에어 낸 부분’을 가리키는 몽골어이며, 화살 윗부분을 말한다. 오늬를 활시위에 끼고 활을 당겨야 화살이 시위를 떠나 과녁을 향해 날아갈 수 있다. 이 ‘오늬’란 말은 몽골어 ‘호노’가 고려시대에 들어와 빌려 쓴 낱말이다. 국어사전에는 ‘오늬 목(木)’, ‘오늬 무늬’, ‘오늬 바람’ 등의 낱말도 실려 있다. 오늬 바람은 덜미 바람이라고도 하는데, 사대에서 과녁으로 부는 바람이다. 화살의 오늬 쪽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말이다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여행(아시아편), 2009. 9. 16., 박문사]. 


싸리는 비중이 0.88이나 되어 단단하기가 박달나무에 가깝다. 수분도 다른 나무에 비해 적어서 불이 잘 붙고 화력이 강하여 땔감으로도 유용하다. 불에 타는 소리가 매우 시끄러울 정도로 용맹하게 불에 탄다. 그래서 싸리는 횃불로도 쓰였다. 『한국 역대 제도 용어 사전』에는 ‘축목杻木’을 ‘싸리, 횃불에 사용함’이라 했고, 『우리말 발음 사전』에 홰는 ‘새장, 닭장의 홰, 횃불을 켜는 싸리나 갈대 묶음’이라고 했다.


싸리는 땅을 무너지지 않게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의 일상에서 곁을 지키며 함께 소용되던 나무


싸리는 땅을 무너지지 않게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일상에서 소용되는 생활도구가 많은 것을 보면 굉장히 오랫동안 사람과 가깝게 사귄 나무 중 하나인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너무 흔하여 큰 대접을 받지 못했나 보다. 분명한 쓰임새와 분명한 용도가 있음에도 희소가치에 까탈스러움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만큼 번식력이 뛰어나고 집단으로 모여 군식의 효과와 함께 군락을 이루는 힘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적인 면만 가지고 싸리를 평가하기에는 가을 한 철의 노란색 단풍의 잔치는 안복이라 하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누구의 시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의연하다


서리 내려 숲이 사그라지기 직전의 싸리 단풍의 뽐내는 풍경에 취해 본 적이 있는가. 한번이라도 경험하지 못하였다면 지금 당장 들로 산으로 슬쩍 발길을 내디뎌 봐라. 어찌 저 나무를 싸리비로 소쿠리로만 평가하고, 절개지의 사면 녹화의 기능으로만 대할 수 있겠는가. 한 계절 특정 시기에 어느 누구의 시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의연하게 노란 손수건을 매달고 있다. 바람에 휘날리며 꿈과 약속을 새겨주는 듯 하염없이 손짓한다. 가까이 다가가 마주하고, 돌아서는 내내 뒤돌아보게 한다. 멀어질수록 볼 만한 자연의 노란 물감이 풍경의 잔치가 되어 하루 종일 등이 노랗게 물든다. 가을 잎의 노란색이 봄꽃의 노란색보다 눈부신 것은 또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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