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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Jan 27. 2022

냄새는 특이하고 고약하지만 맛있는, 뤄쓰펀(螺蛳粉)

우렁이면_水平有限螺蛳粉


앨러스테어 험프리스가 <모험은 문밖에 있다>에서 언급한 신조어 '마이크로 어드벤처'. 멀리 떠나지 않고 짧게, 쉽게, 언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 속 탐험과 모험을 의미한다. 이방인에게 마이크로 어드벤처를 찾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다.  집 앞 거리에만 나가도 작고 소소한 모험들이 잔뜩 숨어 있으니까. 자전거를 오래 타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거리마다 놓여 있는 자전거가, 중식을 즐기지 않는 자에게는 어느 마트에서나 파는 지앤빙(煎饼)이, 하다못해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어려운 맥도널드의 토란 파이(香芋派)도 작은 모험이 될 수 있다. 작은 도전에 열려 있는 마음. 이 마음의 유무는 꽤 큰 차이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기에 도시 산책자에게 꼭 필요한 마음 가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런 마음으로 똘똘 뭉친 도전을 사랑하는 나로서도 조금씩은 꺼려졌던 것들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설탕으로 얼굴을 떡칠한 것 같았던 '탕후루(糖葫芦)', 두 번째가 고약한 냄새와 무서운 이름으로 주저되었던 '처우떠우푸(臭豆腐_취두부)', 세 번째가 우렁이 육수로 역시 고약한 냄새가 특징인 '뤄쓰펀(螺蛳粉)'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어드벤처는 모두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이제 세 번째 뤄쓰펀에 도전할 차례다.




뤄쓰펀은 광시좡족자치구 리우저우시(柳州)에서 제일 유명한 면이다. 우렁이를 의미하는 뤄쓰(螺蛳)펀은 2012년 CCTV 다큐멘터리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에 약 10초 등장한 후 전국적으로 인기를 휩쓸었다고 한다. 당시 '빌리빌리'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서 (고약한 냄새나는) 뤄쓰펀 먹어보는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그랬더랬다. 아주 예전부터 이 면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먹어보지 않았던 건 고약한 냄새 때문이었다. <중국요리 백과사전>에서 뤄쓰펀을 묘사한 부분을 읽어보자. '우렁이를 끓인 육수에 쌀국수를 넣어 먹는데 음식물 쓰레기의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여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요리입니다.' 이 부분을 읽고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음식물 쓰레기?!?!!!! 갑자기 마이크로 어드벤처 정신을 굳이 뤄쓰펀까지 발휘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중국은 넓고 누들은 쌔고 쌨으니까!! 하지만 궁금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전국적으로 인기가 폭발하여 인스턴트 상품까지 나온 그 누들이. 


그래서 어디가 맛집인지 알아는 봐 둘까 하는 마음으로 따종디앤핑을 검색했다. 나 혼자 하고 있는 21년 하반기 최대 프로젝트 '중국 누들 로드'의 원칙은 따종디앤핑 순위가 기본이다. 특정한 항목으로 검색하면 따종에서 인기 맛집 순위(排行榜_서점으로 따지면 베스트셀러)를 보여주는데 대략 TOP 5 중에서 위치, 후기, 좋아요 순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내 맘대로 고른다. 아니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이지. 운명의 장난처럼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뤄쓰펀 맛집이 있었다. 이쯤이면 가서 한 번쯤 맛 보라는 신의 계시인가. 온 우주가 뤄쓰펀을 한번 먹어보도록 나를 돕고 있는 것이 아닐까?


뤄쓰펀 맛집은 우리 집에서 자전거 타고 10분을 달리면 도착하는 '望京国际商业中心'(라고 쓰고 화탕이라고 부름)에 위치하고 있는 <水平有限螺蛳粉>이라는 가게였다. 우다오커우, 펑차오 등에도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 뤄쓰펀 체인점이다. 왕징점은 야외 테라스 석도 대거 보유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동안 갔던 누들 집 중에서는 큰 수준에 속했다. 오후 1시가 훌쩍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누들을 먹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 맛집인 듯했다. 가게 내에 진동하고 있는 시큼한 향을 킁킁 맡으며 주문을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뤄쓰펀을 기다렸다. 螺蛳粉 전문점답게 三鲜/原味/干捞/牛杂 등 총 4가지 종류의 면이 있었다. 처음 먹는 음식은 기본적이고 순수한 본연의 맛을 확인해 보고 싶기에 거의 '原味'을 선택하는 편이다. 이날도 原味螺蛳粉을 선택했다.


뤄쓰펀은 돼지 뼈와 신 죽순, 우렁이로 낸 진한 육수에 무 절임, 땅콩, 파, 마늘 등을 토핑으로 얹어 먹는다. 쌀 70%에 옥수수 전분과 밀가루를 배합한 반죽으로 면을 만들어 일반 쌀국수보다 훨씬 쫀득하다. 빛의 속도로 뤄쓰펀이 나오고 드디어 한 입 맛봤다! 어? 생각보다 맛있네? 초 울트라 긍정적 식탐을 가진 나라서 그런가? 하는 의심을 잔뜩 품고 한 입 더 먹어보고 국물도 마셔보았지만 기대보다 훨씬 무난한 맛이었다. 퀴퀴한 냄새는 아마도 우렁이 육수와 절인 죽순이 혼합된 냄새겠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마이크로 어드벤처 정신도 필요 없는 맛. 그냥 가끔 와서 먹어도 괜찮을 맛이었다.


<중국요리 백과사전>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 이후 뤄쓰펀이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리우저우에는 순식간에 50개의 뤄쓰펀 공장이 생겼고, 200여 개의 브랜드가 생겨났으며 2018년 뤄쓰펀 가공업 판매량이 한화 약 6,825억 원을 넘어섰다고 하니... 정말 차이나다운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오늘의 마이크로 어드벤처 대성공!


파와 酸辣汁를 팍팍 칩니다
이 면은 정말이지 너무나 탱글탱글하여 입에서 춤을 추는 느낌이 든다. 목구멍으로 넘기는 데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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