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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여니맘 Apr 21. 2023

마침내, '씀바귀김치'




올봄, 보약같은 '씀바귀김치'를 먹으며.



나: "내가 생각해도 이번에는 성공한 것 같아. 이게 (씀바귀김치) 나는 맛있는데..."

남편: "입맛도 살고 맛있네. 이렇게 뜨끈한 밥에 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아. 누룽지 끓여 얹어 먹어도 좋을 것 같아. 몇 달 전 먹은 것보다 맛있는 것 같은데?"


나: "몇 달 전? 아하 그건 고들빼기김치야. 이건 씀바귀로 담근거고. 그땐 좀 샀지"

남편: "식감이 같은 것 같은데? 달라? 산거였구나!"


나: "둘 다 비슷하긴 한데 이게(씀바귀) 훨씬 써. 그때 고들빼기김치가 좀 먹고 싶더라고. 가을에 많이 팔거든. 그래서 사서 담가볼까? 했는데, 막상 귀찮은 거야. 가을에 손도 많이 아팠잖아. 그래서 조금 샀던 건데, 다른 김치들보다 좀 비싼 편이더라고. 엄마가 참 많이 해주셨는데..."

"이게 밥도둑이네!"


어젯밤 밥상에서 남편과 나눈 이야기다. 이미 몇 번이나 지난주에 담근 씀바귀김치를 밥상에 올렸고, 그때마다 자화자찬 후 남편 입맛을 확인하곤 했다.


"이거 정말 맛있지? 이번에는 정말 잘 담가진 것 같아"

"나는 맛있는데 당신은?"

"이제부턴 해마다 해줄게"

이렇게 말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어른들이 좋아했던 그 쓴 맛은, '삶'과 같아서



어린 시절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던 어른들만의 음식들이 있었다. 이즈음 한창 먹는 머위된장무침도 그중 하나였다. 우리 집 장독대와 우물가(수돗가) 주변에는 머위가 풍성하게 자랐다. 친정엄마는 해마다 봄이면 머위잎된장무침을 몇 번이나 밥상에 올리곤 했는데, 반갑지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한두번 먹는 것으로 젓가락을 망설였다.


쓴맛 때문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즐기던 쓴맛은 머위잎으로 그치지 않았다.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 이즈음, 들에 갔다 돌아오는 엄마 손에는 걸핏하면 씀바귀와 고들빼기, 뽀리뱅이(박주(조)가리나물. 보리뱅이. 아래 뽀리뱅이)이 뿌리째 들려 있곤 했다. 그렇게 뜯어온 것을 이삼일 정도 모아 머위잎처럼 혹은 머위잎과 섞어 된장으로 무쳐 밥상에 올리곤 했는데, 얼떨결에 먹었다가 밥까지 왈칵 토해버린 기억까지 있다.


밥투정을 할 수 없는 시골 밥상이었다. 콩자반이나 달걀찜도 언제나 올라오는 음식이 아니었다. 채소만으로 된 밥상이기 일쑤였다. 무엇이드 사먹을 수 있는 시대에 자라난 세대들은 실감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자라던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겨울에 보관해두고 먹던 것도 떨어지거나 먹지 못하게 상하거나 싹이 돋고, 수확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이즈음부터 한동안 반찬이 가장 조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봄과 가을에 몇 번은 올라오는 쓴 나물들을 외면하면 먹을 것이 그만큼 없었다. 게다가 부모님은"쓴 약이 몸에 좋은 것처럼 이 나물도 몸에 좋다"로 달래 보다가 그래도 먹지 않는 우리들을 보며 "이걸 눈 딱 감고 세 번만 먹으면 밥이 더 멋있어진다"로 달래기도 했다. 그래도 먹지 않으면 화난 것이 조금 느껴지기도 하는 잔소리로 했다. 그래서 머위잎은 먹어볼까?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씀바귀나물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즐겼던 쓴 맛 음식들이 이제는 그리 싫지만은 않은 것은, 아니 애써 해 먹고 싶을 정도로 좋아진 것은 삶의 쓴맛 단맛을 어지간히 겪은 나이이기 때문일까?




엄마가 좋아하셨던 개떡



이제야, '엄마도 쓴맛보다 단맛이 더 좋았을 거야'



"우리 엄마 씀바귀 참 좋아했는데..."

"엄마가 좋아했던 씀바귀는 씀바귀중에 가장 쓴 잎이 작은 그 씀바귀, 논둑에 많이 자라던 그 씀바귀였던 것 알아?"

"씀비귀처럼 쓴 것들이 우리 몸에 그렇게 좋다잖아. 엄마가 나이 들어가면서 그토록 두려워했던 치매도 요양병원도 겪지 않고 삶을 마무리하실 수 있었는지도 몰라!"


언니도, 동생도 씀바귀가 보이면 아마도 나처럼 씀바귀를 뜯어오시던 그때를 떠올리며 누가 이렇게 말하고, 나머지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엄마는 씀바귀들을(어른이 되어서야 엄마가 씀바귀만이 아니라 뽀리뱅이, 고들빼기 구분없이 뜯어와 해주셨다는 것을 알았다)를 좋아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잘 잡수셨다. 그럼에도 엄마가 좋아했다고 기억하는 것은 엄마가 뜯어와 엄마가 음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작년 이즈음, 텃밭가에 뽀리뱅이가 제법 많이 자라 뽑아 김치로 담가 먹었다. 그때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손질 까다로운 이게 그렇게 맛있었어?" 그때 엄마는 대답했다. "쓴 맛 때문에 먹었지!"


그땐 무심코 듣고 무심코 넘겼는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지난날 엄마 삶을 헤아려 보는 것이 늘었다. 혹은 생각하기도 했다. 올 봄에도, 며칠전 씀바귀김치를 담그면서도. 요즘 씀바귀김치를 먹으며 헤아려보곤 한다.


'엄마가 정말 쓴맛이 좋아서 씀바귀들을 그렇게 먹었을까?'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니까,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해서, 어떻게든 입맛 놓치지 않으려고 쓴 나물들을 그렇게 먹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라고 단맛보다 쓴맛이 더 좋았겠어?'





벌씀바귀 꽃
뽀리뱅이 꽃


텃밭에 날아와 잘 살아준 씀바귀야, 고마워!


친정엄마가 씀바귀와 고들빼기, 뽀리뱅이(뽀리뱅이, 박주(조)가리나물. 아래 뽀리뱅이)를 구별하지 않고 뽑아오곤 했던 것은 이 셋 모두 쓴맛이 강한 것들이라 해 먹는 방법이 같은 데다가(쓴맛을 우린 후), 음식으로 해놓고 나면 맛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이들은 모두 국화과 식물들이다. 잎은 다르지만 꽃이 비슷, 씨앗도 비슷하다. 꽃피는 시기도 비슷하다.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풀들이다.


이중 고들빼기만 재배, 나머지는 야생에서 채취해 먹는 편이다. 그러니 고들빼기라면 모를까. 나머지 뽀리뱅이나 씀바귀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어쩌면 쉽게 먹을 수 없는 그런 나물일 수도 있겠다. 내가 그랬다. 이 동네로 이사오기 전까지 봄이면 쑥과 냉이에 목말라 시골에 가서 나물 좀 캐올까? 한동안 뒤숭숭해지곤 했더랬다. 그랬던 만큼 텃밭을 얻은 이듬해부터 먹을 수 있는 풀이 보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몇 년째 텃밭에서 키워먹는 풀은 뽀리뱅이와 냉이, 우슬, 개망초 등. 이중 뽀리뱅이는 씀바귀, 고들빼기와 맛이 비슷하다. 셋다 쓰다. 그런데 씀바귀가 가장 쓰다. 셋다 쓰다 보니 데쳐 우려낸 후 나물로 버무려 먹거나, 소금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후 김치로 담근다. 이렇다 보니 시골 어르신들은 우리 친정엄마처럼 구별하지 않고 채취해 함께 해 먹는 경우가 많다.


엄마는 이들(씀바귀, 뽀리뱅이, 고들빼기)을 봄에는 나물로, 가을에는 김치로 해주셨다. 데치면 쓴맛이 조금은 줄어든다. 그래도 김치로 해 먹을 때보다 쌉싸래하다. 그래서 나물로 무쳐주면 먹지 않았지만 김치로 담가주시면 좀 많이 먹었다. 엄마 품을 떠나 살며 우리가 고들빼기김치로 불렀지만 실은 씀바귀와 뽀리뱅이가 솔찮이 섞였던, 씀바귀가 제일 많이 들어간 그 김치가 가끔 그리울 정도로.


올봄 남편과 내 입맛을 사로잡은 (벌) 씀바귀가 언제 우리 밭으로 날아들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몇 년 전부터 수많은 풀들과 함께 자라 꽃을 피우곤 했다. 지난해 봄에도 그랬다. 해마다 그래왔던 것처럼 그냥 뒀다. 꽃이 예뻐서였다. 겨우 몇 포기 보이곤 해 보다 많이 퍼져 자라길 바라며 그냥 뒀더랬다. 먹을 수 있는 풀을 분별해내지 못하는 남편에게 이렇게 생긴 것은 뽑지 말아 줘요! 부탁도 하면서.


그랬더니 올해는 봄이련가, 유독 새싹으로 씀바귀가 많이 보여 한껏 기대를 했었다. 어서 자라 김치까지 담글 수 있기를. 그렇게 몇 줄을 기다림으로 보낸 후 마침내 지난주 텃밭에 갔는데 몇몇 포기에서 꽃대가 보이기 시작해 뽑아 김치를 담그기까지 했던 것이고. 씀바귀김치 맛이 원했던 대로 되어서 남편에게는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만 조용히 계획하고 있다.


 '다음엔 민들레김치를 담가보자. 씀바귀처럼 쓴맛을 우려낸 후 담그면 될 것 같아!"




벌씀바귀
며칠 후 뜯어 먹을 우슬 어린 잎


텃밭에 자라는 보약 같은 풀들은...


씀바귀와 고들빼기, 뽀리뱅이, 셋다 풀이다. 그것도 생명력이 매우 강해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그런 흔한 풀이다. 지난가을에 씨 뿌려 올봄에 먹을 수 있고, 올봄에 씨 뿌린 것은 가을에 먹던가, 못 먹으면 내년 봄에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키워 가꾸기가 워낙 쉽다. 밭가에 심어도 혹은 구석진 곳에서도 잘자란다. 그런 만큼 길러먹는 것도 좋겠다. 아니 일부러 키우지 않고 날아와 자란 것을 뽑지 않으면 그 보답을 한다. 올 봄 우리밭 씀바귀처럼.


작물들은 옆에 풀이 자라거나 하면 더디 자라거나 죽기도 한다. 병충해 피해를 입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래도 ! 잡초 본성에 가깝다. 고들빼기는 재배하기도 하는지라 작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는데 엄연히 풀!,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자라는 그런 풀이다.  


이런 이들의 효능은 비슷비슷하다. 조금씩 차이는 있는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 -피를 맑게 한다, -여러 가지 비타민이 많다, -항암성분이 있다, -면역력 증강 성분이 있다, 노화 억제 물질이 있다, -인슐린이 있다, -인삼 대표성분인 사포닌이 들어 있다, -소화를 돕는다, -상처 회복을 돕는다, -봄날 나른함을 막아준다. 대략 이 정도다. 이렇게 좋은 성분들이 많은지라 이들 나물들을 보약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다.


몸에 좋은 성분이 많다고 해도 맛이 없으면 먹기 고역스럽다. 그런데 올봄 씀바귀나물이 너무나 맛있다. 그리고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 노년층이 아닌 오십 중반의 이 나이에 노년의 건강에 더할 나위 없이 도움 된다는 성분이 많은 씀바귀의 맛있는 쓴맛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1차 손질해 둔 쪽파, 그리고 뽀리뱅이와 벌씀바귀
여러 번 씻은 후 보다 세심하게 정리, 짭쪼롬한 소금물에 2~3일간 담가두면 쓴맛이 좀 덜하다.


보약 씀바귀김치 담그기, 어렵지 않다


①1차 다듬기: 이들 중에는 봄에 싹 틔운 것도 있지만 지난가을에 싹이 터 자라다가 겨울을 난 것들도 있다. 초록잎 사이에 있는 까맣게 죽은 잎이 지난가을에 자랐던 것. 떼어낸다. 지저분한 초록잎이 보이면 그것도 떼어버린다. 잔뿌리도 좀 뜯어버린다.


②2차 다듬기: 물에 충분히 씻은 후 보다 세심하게 손질한다. (나는요. 바로 씻지 못했어요. 뜯어온 그날 오후 바빴거든요. 다음날 씻으려고 보니 팍 시들었더라고요. 그걸 물에 30분쯤 담가뒀더니 쑥쑥 살아나더라고요. 생명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 바로 씻지 못해 시들었어도 버리지 마시길!)


③손질한 것을 짭조름한 소금물에 2~3일 담그면 쓴맛이 먹기 좋도록 우러난다.


④씻어 소쿠리에 담아 물이 빠지게 한 후 가볍게 쥐어 나머지 물기를 짜낸다. 쪽파 몇가닥과 준비한 양념으로 버무린다. 버무린 것을 통에 담은 후 하룻밤 식탁에 두는 것으로 양념이 골고루 배이도록(익도록) 한 후 냉장고에 넣는다.


(난, 목요일 점심 무렵에 소금물에 담가뒀다가 토요일 저녁밥을 먹은 후 버무렸다)


양념은, 다소 되직하게 쑨 찹쌀풀, 고춧가루, 쪽파 한줌, 액젓(소금물에 담갔던 것이라 조금만), 다진 마늘 조금, 설탕 약간(자일로스나 원당이 그나마 몸에 덜 해롭다), 통참깨 약간, 굵은소금 몇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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