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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l 05. 2022

능소화 만개하는 집

아파트에서 즐기는 사계

능소화를 좋아한다. 능소화가 피는 시기면 일부러 검색창에 능소화 담장, 능소화 전봇대, 능소화 길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서 새로 올라온 능소화 풍경을 구경한다. 오늘은 능소화 꽃잎을 검색했더니 능소화 가지 끝으로 땅에 떨어진 꽃들이 처연하고도 아름답게 스러져 있었다. 한참 스크롤을 내리니 능소화 그림이 제법 많이 나왔다. 다시 능소화 그림을 검색했더니 한지에 부채에 하얀 천에 꽃이 피었다. 어떤 것은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능소화를 좋아하지만 우리 아파트에는 능소화가 없다. 그런데도 능소화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sns에서 다운로드한 건데, 출처를 몰라서 심히 마음이 불편하다. 이 사진의 주인이시여, 혹시 문제가 된다면 바로 내리겠습니다. 어쨌든 이 사진으로 인해 글을 쓰게 되었으니 이 글을 님께 바칩니다...      


사실 이 사진을 보기 전에 또 한 장의 사진이 내 마음을 능소화에게로 이끌었다. 그런데 그 사진은 올리지 않을 생각이다. 왜냐면 그 사진을 보면 능소화를 볼 때마다 그 사진이 떠올라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가 잘못되길 바라게 되고 도대체 왜 그랬을까 생각하게 되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러니 나만 보고 마는 걸로. 안 본 눈 보호해야 한다.

그냥 그 사진에 대한 설명만 조금 해보겠다. 얼마 전 경산의 한 능소화 집이 뉴스에 나왔다. 능소화가 한창일 6월 중순의 일인데, 누군가 나무 밑둥치를 톱으로 베어버려 처참해진 모습이었다. 죽은 나뭇가지들로 뒤덮인 집의 모습도 안쓰럽지만 밑둥치가 잘린 그 적나라한 장면 정말 경악을 금치 못다. 원래 그곳은 오래된 2층 집인데, 능소화가 지붕까지 뒤덮여 만개하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사진을 찍는 명소라고 한다.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런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인간은 정말 사악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다.      


능소화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다. 능소화뿐 아니라 꽃을 잘 몰랐다. 아니 지금도 잘 모른다. 한때 시골 생활을 몇 년 하면서 밭농사도 짓고 밭 주변에 꽃을 심었다. 그때 꽃이 참 예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팔꽃처럼 생긴 메꽃, 먹을 수도 있다는 한련화, 천일홍과 백일홍, 나무 백일홍이라는 배롱나무 등등. 그전에도 보았지만 그때까지는 내 마음을 주지 않았던 꽃들.

능소화를 알게 된 것은 마당이 있는 집을 지으면서였다. 우연히 발견한 땅에 홀려 덜컥 사고는 집을 지으려고 보니 너무 막막했다. 마침 지인의 이웃이 자신의 집을 세 번째 지었는데 아예 업자로 나설까 생각 중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 사람 집에 슬쩍 가보고는 소개해달라고 지인을 졸랐다. 정식으로 업자가 되기 전에 우리 집까지 지어달라는 요청에 그 사람은 집에 대한 나의 로망을 열 개만 써보라고 했다. 내용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는데, 대부분 마당에 대한 것이었다. 과실나무를 심고 싶다, 텃밭을 만들고 싶다, 뭐 그런 거. 내 로망이라는 것이 참으로 하찮다고 생각했는지 별 망설임 없이 집을 지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집만 달랑 지었지 마당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아니, 원한 건 다 해준 셈이기도 했다. 꼬챙이 같은 과실나무가 있기는 했으니까. 어쨌든 덩그런 마당을 채우는 건 살면서 하나씩 해가는 거라는 말에 설득되어 한쪽에 텃밭을 일구고 해바라기를 심고 모래놀이터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영 태가 나지 않아 다시 수소문을 해서 조경설계사를 소개받았다. 막 유학을 떠나려고 돈을 급히 모으는 중이라 저렴하게 해준다고 했다. 그 사람에게 바란 건 두 가지였다. 마당 한가운데 놓인 수도계량기함을 가려줄 것, 전봇대를 가려줄 것. 50만 원을 주고 받은 설계도에는 지금 마당 모양을 상세히 그린 설계도 위에 소나무 한그루와 능소화 한그루가 더 그려져 있었다. 옆으로 구불구불한 소나무와 전봇대를 타로 올라간 능소화 말이다. 기가 막혔다. 하지만 이미 유학을 가버린 뒤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로서는 최선의 설계를 해준 것 같기도 하다.


능소화 얘기하다 너무 멀리 갔다. 어쨌든 그 뒤로 전봇대에 걸린 능소화만 눈에 들어왔다. 멀뚱하게 서있는 전봇대를 가리기에 능소화는 너무 안성맞춤이지 않는가.

딱 이 시기에 강변길을 달리다 보면 도로벽을 따라 능소화가 늘어져 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능소화는 전봇대 옆에만 심을 생각을 했고, 아파트에 오니 전봇대가 없어서 능소화를 심을 계획 따위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아마도 능소화 꽃가루가 눈을 멀게 한다는 속설을 들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건 완전 근거 없는 낭설이고 심지어 아무 문제없다는 연구결과까지 있다는데.

내게 능소화는 약간 그림의 떡 같은 거였다.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막연히 동경하는 대상. 그러다 저 사진을 본 거다. 붉은 벽돌타고 올라간 능소화, 마당에서 지붕까지 온통 붉은 능소화. 꿀꺽 욕심이 올라왔다. 저 능소화가 아파트 담벼락을 타고 올라간다면 얼마나 멋질까! 


우리 아파트 옆으로는 기차가 다니고 소음 방지벽이 높게 쳐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삭막했다. 매일 산책하는 길이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림을 그린 곳도 있는데 너무 작위적이라 별로다. 뭔가 다른 방법으로 가릴 수는 없을까 걸을 때마다 골몰했다. 그 답을 찾은 거다. 능소화가 딱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그뒤로 산책길이 즐겁다. 없는 능소화가 내눈에 보이는 거다. 능소화가 늘어진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 진짜 있는 것처럼 흐뭇해하며 지나갈 수 있다.  

거기서 끝내지 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기로 한다. 아파트 건물에도 능소화를 심는 거다. 저 사진처럼. 10년이 지나 5층까지 올라간 능소화를 상상해보면, 20년이 지나 10층까지 올라간 능소화를 상상해보면,  상상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것만 같다. 우리 아파트는 15층이니까 30년만 지나면 꼭대기까지 올라간 능소화를 볼 수 있다.  아파트도 시멘트로 만들어졌다는 오명을 벗고 나무와 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 좋겠다. 도시에 다시 벌과 나비가 오고 창가에 새가 울겠지. 너도 나도 능소화를 심을 거고 그 비슷한 식물이 각광을 받겠지.

먼저 우리 아파트가 대전 최고의 명품 아파트가 되는 거다. 명품이  별거냐? 보고 또 보고 싶고 자랑하고 또 자랑하고 싶은 게 명품이지.

나, 명품 아파트를 만들 금손 아닐까?

일단 한그루라도 심어야겠지? 아파트 공용공간에 나무를 심으려면 관리사무소에 가서 허락을 받아야 하나? 발걸음이 살짝 무거워지려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능소화는 꽃으로 피기 전에는 별모양이다. 도라지도 그렇다. 별에서 온 그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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