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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필 Sep 28. 2021

17. 가족과 함께라면


171

"히힝~운.니. 가.조.끼.리. 먹.그.닌.까. 좉.타."

스타카토 혀 짧은 소리로 애교 살살살 시동 거는 채이다.


"압.빠! 저.거.또. 머.거."

참 해맑다.

혀를 어디다 숨긴 걸까?


"으음! 마.시.또!"

그런데 좀 시끄러운 건 왜 때문인지?

"알았어 알았어... 채이야 밥 먹자..."


모두 모여 밥 먹는 자리를 행복해하는 우리 딸.

기분이 정말 좋았나 보다.

고개를 젓게 만드는 애교에 어이없으면서도 그 귀여움에 살살 녹는다.

지가 늦둥이인 줄 아는 듯하다.




172

안개가 자욱하다.

겨울비도 부슬부슬.

찰칵.

자욱한 안개 사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9초짜리 짧은 영상에는 까마귀가 까악 까악

피식.. 분위기 죽인다.


나의 베란다 사색은 유일한 통풍구다.

그것도 잠시 터덜터덜 걸어오는 껌딱지가 나타나 맛있는 걸 달란다.

(오늘 또 어린이집을 안 갔다)


그래..

들어가자.

생각을 멈춰주는 채이가 가끔은 고마울 때가 있다


시련과 좌절이 와도 행복이라 믿어라

시련은 견딜 수 있는 만큼 오는 것이니

행복의 믿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173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난 자는 말이 없다.

7년간 오며 가며 마주쳐왔던 이웃도 떠날 때는 온다 간다 말없이 떠나는 세상이다.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는 행위 조차 귀찮고 버거운 일이었을까?

오는 사람 안막고 가는 사람 가게 두라지만 왠지 모를 서운함이 가슴속 저 바닥 어딘가에서 움틀거린다.

아파트 단지 한쪽에 묵은 짐들을 버리면서 살아온 묵은 감정도 함께 버리고 간 걸까?

마주치면 주고받았던 미소와 인사말만 허공 속에 붕 떠버린 기분이다.


지난 주말에는 위층에 새로 들어올 사람이라며 앞으로 4주 동안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고 한다.

레드향 한 박스와 쓰레기봉투 그리고 마스크를  건네며 죄송하다 잘 봐주십사

미리 양해를 구하는 이가 벨을 누르지 않았다면 떠난 이가 그제야 정말로 떠났다는 사실을 몰랐을 터.


그래서 드는 감정인가.

그렇다고 엄청나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

그저 내 책상에 자리 잡고 있는 필통 안에 자주 쓰던 펜??

누군가 말도 없이 펜을 치웠다면?

또 사면되는 문제지만.... 없어진 건 서운한 거니까.

비유가 맞나 모르겠다.


오늘 아침 8시부터 듣고 있는 리모델링 소음에 새로 산 책에 집중되지 않는다.

'관계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마침 제목이 아이러니하다.

떠 난이도 관계를 정리했나 보다.


아.

읽고 싶은데..

밖은 비가 오고,

마음은 심란하고,

앞으로 4주 동안 들을 소음에 정신이 온전할까 걱정되는 날이다.


아! 나도 이사 가고 싶다~~!!

떠날 때는 말없이 말이다.





174

아이고 눈부셔!!

해줘야지요~

말 안 해주면 밤새 눈 부셔서 잠 못 들지도 몰라요.






175


"언니~새우튀김 했는데 드실래요?"

지인이 튀겨다 준 통통한 새우튀김.

바삭한 데다 크고 살집이 많아서 입안 가득 풍미가 가득했다.

 

새우튀김에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풀게 될 줄은 몰랐지만 떠오른 김에 적어볼까?


진도에 와서 인연 맺은 이들 가운데 현재 가장 오래된 인연이 아닐까 싶은 아이.

7년 전 이곳에 와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을 때가 있었다.

바로 외롭다고 아무나 닥치는 대로 만난 것.

어떻게?


바로 네이버 카페를 만들어 '수다방'을 열어

시골 안에 있는 맘(mom)들을 모은 것.

처음 취지는 좋았다.

안 쓰는 육아용품을 드림하기도 하고, 한 달 한 번 모두 모여 회식도 하고~

게임을 통해 선물을 나눠 갖기도 했다.

가게 운영을 하는 이들에게는 홍보 자격도 주고, 필요한 정보를 나누면서.

그곳은 나처럼 외로운 이들에게는 소식통이며 탈출구였다.

정말 행복한 모임이었고 모두가 신이 났었다.


수다방의 엄마들이 더 끈끈해지길 원하며 최선을 다해 이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모임이건 지랄 총량의 법칙을 위해 꼭 나타나는 이가 있다.

우리의 수다방에도 그런 이들이 생겼고 중재를 위한 방법은 그게 무엇이든 소용이 없었다.

회원들 간의 이간질과 도를 넘는 행동들에 화가 났고 결국은 소중한 소통 창을 닫아야만 했다.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기에 몇몇은 무척 아쉬워했고 몇몇은 영문도 몰랐을 터.

씨앗 단계에서 시작해 가지 단계까지 오르며 행복했던 카페는 그렇게 내 컴&폰 안에서 잠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여전히 그때 등지게  된 이들은 어딘가에서 내 흉을 보고 다닐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지만.

씁쓸하지만 그런 추억? 아니 기억이 남아 상처가 되었다.


그때 맺은 인연 가운데 아직도 연락 주고받는 이들은 크게 드물어졌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영문도 몰랐을 그녀에게 갑자기 소중한 음식도 선물 받게 되는 날도

오는구나 싶다.


그저 감사한 날.






176

징징징-

여기까지 따라와서 징징대면 어쩌자고..


"엄마! 오빠가 나 멸치래!"


흐아.. 유치하기 짝이 없군..


"알았어 채이.. 쉿! 찬혁이 어딨어 너 어어어!!!"


흐어.. 찬혁인 이미 저 멀리....

근데  멸치가 어딨나?

인증사진 찍는 엄마.


요즘 남매가 같이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둘이 툭탁 거리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아들은 점점 애가 되고 딸은 점점 오빠를 이겨먹으려 든다.

그래도 지나면 소중한 시절이니

서로 많이 많이 부대끼렴.






177

작년에 이어 올해도 유행할

'코로나 잠잠해지면 밥 한번 먹자'


그나마도 없는 인연 다 끊어지고

그런데도 남는 인연 아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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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방긋!

오랜만에 포근하고 따뜻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항상 감사한 아파트 관리소장님께 설 명절 선물을 드렸다.

전에는 찬혁이가 같이 갔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채이와 동행했다.

채이가 묻는다.

"할아버지를 뭐라고 불러 엄마?"

"응 관리소장님인데 소장님~이라고 하면 돼"

"소오자앙니임? 우아~ 이름 예쁘다^^♡"

풋..

"새해 복 마아니 받으세요~"

인사도 잊지 않는 사랑스러운 채이♡


자.. 이제 어린이집 가자~~~

어린이집에서 전통놀이하는 중






179

설날이다.

친정에 왔다.

시끌벅적한 시간은 모두 흐르고 이제는 캄캄한 밤이 되었다.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툭툭탁탁 적기 시작한다.


부아아 앙 - 우우 우웅--

엄마 집에서 자는 밤은 도로를 지나는

차 소리와 함께다.

몰랐는데 난 이 소리와 함께 잠드는 게

그리웠나 보다.

매일 밤 듣는 개소리, 귀뚜라미, 풀벌레 우는 소리보다 부앙 거리며

지나가는 차 소리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무엇 때문일까.


정 붙일 곳 없는 외지에서 온갖 상처만 받고

지친 마음으로 누워서 듣는 자연의 소리란

나에게 있어서는 평안이 아닌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 속에서

정지 버튼 없이 억지로 들어야만 하는

한낱 소음일 뿐이었던 것이다.


저 멀리서부터 도로를 훑고 지나가는

자동차 엔진 소리..

오토바이 위잉대며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소리..

눈 감고 가슴속에 새기는 밤.


며칠 후에는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내 집.

돌아가는 그 길이 내내 한숨을 뿌려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니.


점점 찌들어가는 타향살이에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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