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Sam1212 2011. 9. 27. 11:25

 

꿩(장끼)을 잡아본 사람이면 그 깃털의 현란한 색채에 놀라게 된다.

붉은 뺨 아래 목덜미로 내려오며 윤기 흐르는 푸른 깃털은 비취 사파이어 에메랄드 어떤 보석으로도 그 오묘한 색감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청색의 깃털이 끝나는 목덜미에 두른 순 백색의 띠는 정장한 여인이 흰 털실 목도리를 두른 듯 신선하고 청초한 멋을 풍긴다. 온통 황금빛 깃털로 덮인 통통한 몸통은 짙은 황금색과 연한 잿빛 부분으로 나눠지고 색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검은 깃털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마지막 치장의 압권은 긴 꽁지깃이다. 30-40센티미터에 이르는 밤색의 얼룩무니 깃털 두세 개가 꽁지에서 길게 뻗어 나갔다.

 

 

풀 섶에서 나와 밭둑에 올라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거리는 꿩을 바라다보면 마치 최고의 디자이너가 갓 지은 옷을 걸치고 파티에 나타난 귀공자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고, 운동으로 잘 단련된 근육형의 늘씬한 그리스 청년 조각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공작새나 앵무새의 깃털이 아름답다하나, 우리 야산에 서식하는 장끼에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꿩 요리를 맛보기위해서는 이 아름다운 깃털들을 모두 뜯어내 버려야 한다. 꿩을 잡는 사람이 아무리 무심하다 할지라도 그 아름다운 깃털을 모두 뽑아버리는 데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았으리라.

 

꿩은 심산에 살지 않고 야산에 서식하는 텃새다. 높이 날지 않고 피를 토하는 듯한 요란한 울음소리와 함께 날아올라 낮게 비행한 후에 재빨리 풀숲에 숨어버린다. 땅위에선 두발로 기어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좀처럼 모습을 내보이지 않으려한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겨울이오면 동네 아저씨 한분이 독극물을 사용해 꿩을 잡아오는 걸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던 추억이 있다. 어쩌다 뽑아버린 꽁지깃을 하나 얻기라도 하면 그 날은 신나는 하루가 되었다.

 

요즘은 총으로 사냥을 해 잡든지 꿩 도 닭처럼 대량 사육하여 고기를 얻지만 옛날에는 꿩을 잡아 고기를 취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꿩을 잡기는 불가능했고 겨울철 폭설이 내리면 꿩의 움직임이 노출되어 숨기가 어려워지거나 먹이가 부족하여 산간 농가에 내려올 때 활이나 덫을 사용하여 잡았을 것이다. 매를 훈련시켜서 잡는 사람도 오늘날 보다는 훨씬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꿩과 우리 생활과의 관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기록들에 나타나고 있다. 실크로드의 사마르칸트에 남아있는 벽화나 당나라 때 사신도使臣圖를 보면 신라인으로 보이는 사신의 머리에 깃털을 꼽은 모습이 나온다. 당시 흔한 닭의 깃털을 사용하거나 아메리카 인디안 처럼 독수리 깃털을 사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꿩의 꽁지깃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얻기 어렵고 아름다운 꽁지깃은 당연히 상류층의 귀한 장식물이 됐으리란 생각이다.

 

조선시대에 관리들의 꿩고기를 즐기는 미식문화美食文化가 일본 에도시대 농민들을 혹사 시켰다는 일본의 기록도 나온다. 도쿠가와이에야스는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건너온 사신 일행에게 최고의 접대를 하라는 명을 지방의 영주들에게 내렸다.

 

 통신사를 맞이하는 영주들은 자기 영지를 통과하는 통신사 일행이 꿩고기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알아내어 농민들에게 꿩을 생포해오라고 지시를 내린다. 아무리 둔한 일본의 꿩이라도 일본 농민들을 힘들게 했음은 분명하다.

 

꿩의 아름다운 자태는 그림을 그리는 화원畵員들에게도 좋은 소재가 되었다. 조선시대 유명 화가들이 꿩을 소재로 한 많은 그림을 남겼다.

 

많은 꿩 그림 중에서 장끼의 화려한 깃털 색을 잘 그려낸 작품은 오원 장승업의 쌍치도雙雉圖다. 커다란 고목나무 위에 장끼가 앉아 나무 아래 풀 섶에 숨은 까투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그림을 보고 어딘지 어색하고   잘 못 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꿩은 낮에 나무위에 앉지 않는다. 꿩의 생태 습성을 화가는 모르고 있다. 산촌 생활 경험이 없는 화가는 평소 나무 위에에 앉는 까치 참새 독수리를 그리던 관습으로 꿩을 그려냈다는 생각이 든다.

 

야생의 꿩이 한 낮에 나무 위에 앉지 않는 이유는 꿩이 서식하고 있는 우리의 야산에는 매가 하늘 높이 떠서 빙빙 돌면서 그 예리한 눈을 번득이고 있기 때문이다. 꿩은 하늘 위에선 멀리 날지 못하고 비행 속도 도 떨어지기 때문에  맹금류의 좋은 먹이감이 되기때문이다. 

 

 화가의 실수 만이 아니다. 옛 그림을 설명한 유명 미술평론가들이나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학예사의 글을 읽다보면 꿩의 자연 생태습성에 대해선 무지한 채 나무위에 오른 꿩을 그린 화가의 작품에 전문용어를 사용한 찬사와 비상한 수사들로 가득 차있다.

 

 도서관과 미술관의 형광등 불빛아래서 만들어낸 지식이다. 이런 지식과 학위는 때로는 산골 소년의 상식에도 못 미칠 때가있다.

 

걷기를 즐기다보면 서울 인근의 산에서도 이따금 꿩을 발견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산속 오솔길을 혼자 걸어가다 갑작스런 울음소리와 함께 튀어 오르는 꿩에 놀래보는 경험을 다시 한 번 가져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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