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함부로 대하는 것을 친밀함으로 여기게 된다면

<똑 닮은 딸>을 보고 친밀한 이들 사이의 멸시를 생각해봤네
등록 2023-09-15 14:18 수정 2023-09-22 01:28
네이버 웹툰 갈무리

네이버 웹툰 갈무리

이담 작가의 웹툰 <똑 닮은 딸>은 살인자로 의심되는 어머니와 그 딸에 대한 이야기다. 반전이 있는 스릴러 장르로, 짜임새 있게 구성된 이야기 덕에 몰입도가 높다.

이 만화의 대사는 사람의 심리와 관계에 대한 깊은 관찰을 근거로 쓰였다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류솔’이라는 캐릭터에게서 그런 점이 도드라진다. 솔은 어머니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하는 캐릭터로, 운동 코치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신도 스케이트 선수로 활동한다. 그러나 재능도 노력도 그저 그런 솔은 매번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 대부분의 주변인은 그런 솔을 낮잡아보며 함부로 대한다. 남자친구도 솔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오래 알고 지내온 친구는 솔이 대회 본선 때문에 같이 놀지 못하고 시간을 비워둬야 한다고 말하자 “네 실력에 웬 본선 걱정이냐”며 솔을 무시한다. 이 부분에서 내레이션은 이렇다. “부모의 폭력은 어째서 자식에게 비극이 될까. 그 이유는 멸시가 친밀함의 기본값이 된다는 점에 있다.”

네이버 웹툰 갈무리

네이버 웹툰 갈무리

부모의 영향으로 멸시를 친밀함으로 여기게 된다면 그것만 한 비극이 없다. 그 말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친밀함의 증거라고 믿게 된다는 거니까. 솔은 자신을 걱정하는 다른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근데 솜아, 나 진짜 걱정 안 해도 돼!! 우리 엄마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라고 말한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기 일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주위와 스스로의 시선을 의식해 일을 묻어두는 걸까. 폭력을 당하고 즉각 그에 대응하기를 요구하는 것 또한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의 일종이므로, 나는 가정폭력의 주변인이 됐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가정폭력 상황이 아니더라도, 친밀한 이들 사이의 멸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친한 친구 사이의 멸시는 ‘편하게 대한다’는 말로 무마되기 십상이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격주로 나가던 때, 배려하며 말하고 나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친구들이 조금은 ‘불편’했다. 그런데 매일 학교에서 보게 됐을 때 그 친구들은 나를 존중하는 태도를 변함없이 유지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바라는 관계를 오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와 지낸 시간이 길어 나를 ‘안다’고 자부하면서 자신이 아는 내가 전부라 생각하고, 그거로 나를 평가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함을 알게 됐다. 그게 설령 가족이라 해도.

네이버 웹툰 갈무리

네이버 웹툰 갈무리

내가 ‘안다’고 여기는 것 또한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이 만화로 알았다. <똑 닮은 딸>에서는 한두 가정을 제외하고 비중 있는 인물들의 가정은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방임 가정에서 자라거나 부모가 오빠와 차별하거나 어머니가 살인자이기도 하고 어머니에게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모르거나 간과한 채 살아간다. 큰 반전이나 실감 나는 섬뜩한 묘사와 상관없이 다양한 가정을 통해 알지 못하는 세계를 엿보게 해준다. 우리는 모르는 세계를 간접경험하게 하는 점에서, 웹툰도 예술이니까.

신채윤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저자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는 10대 후반의 작가가 인생의 절반을 봐온 웹툰의 ‘심쿵’ 장면을 추천합니다. ‘웹툰 소사이어티’는 웹툰으로 세상을 배우고 웹툰으로 이어진 것을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3주마다 연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