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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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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타고 오른 논쟁의 벽

무성한 잎으로 건물 감싼 담쟁이덩굴… “건물의 아름다운 상징” vs “지독한 생명력으로 문화재 훼손하는 흉물”
등록 2011-05-26 06:06 수정 2020-05-02 19:26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수필가 이양하가 ‘신록예찬’을 쓴 5월이다. 대학본부로 쓰이는 언더우드관은 학교도 언제 심었는지 그 연혁을 모른다는 담쟁이가 아우성치며 건물 전체를 덮었다. 3층 건물과 중앙 5층 높이의 탑은 수만 장의 ‘깻잎’으로 빼곡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좌우로, 위아래로 결 따라 건물이 연녹색 몸을 떤다. 개구리 발바닥 같은 흡착판을 이용해 화강암 벽면에 찰싹 붙은 담쟁이는 무서운 기세로 뻗어 올라갔다. 뿌리는 굵고 줄기는 억세다. 게다가 서로 얽히고설켜, 이쪽 줄기가 끊어져도 저쪽 줄기가 버틴다. 흡사 인터넷 네트워크 같다. 담쟁이 잎 사이사이에 눌러앉은 벌레들만 견딜 각오를 한다면, 담쟁이 줄기 타고 3층 창문까지 기어오를 수도 있겠다 싶다.

» 연세대학교 본관인 언더우드관이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언더우드관의 담쟁이를 제거하라는 공문을 받아든 연세대는 “학교의 상징과도 같아 제거하기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겨레21 정용일

» 연세대학교 본관인 언더우드관이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언더우드관의 담쟁이를 제거하라는 공문을 받아든 연세대는 “학교의 상징과도 같아 제거하기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겨레21 정용일

“담쟁이는 소인배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에서, 줄리엣의 2층 방으로 기어올라가 어린 줄리엣의 가슴에 푹 안기던 로미오도 담쟁이를 탔던가. 혹시나 해서 책을 들춰봤더니 로미오, 새가슴이다.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로미오는 줄리엣의 유모에게 미리 맡겨둔 줄사다리로 소녀의 침실을 오르내렸다. 줄사다리라니 사랑보다 너무 안전제일 아닌가 싶지만,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를 생각하면 철 지난 담쟁이는 확실히 맥이 풀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덩굴식물인 담쟁이는 ‘지금’(地錦)이라고도 불린다. ‘땅을 덮는 비단’이라는 뜻이다. 20m까지 자란다. 이름은 예쁘지만, 남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는 소나무나 대나무 대접은 받지 못한 듯하다. (인조 14년·1636년)을 보면 담쟁이를 소인배에 빗댄 상소가 나온다. “오늘날 조정에 있는 신하 중에 신은 누가 군자고 누가 소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빼어나기가 송백과 같고 깨끗하기가 빙옥과 같은 자는 반드시 군자이고, 빌붙기를 등나무나 담쟁이같이 하는 자는 반드시 소인일 것이요….”

그래도 담쟁이의 ‘수직’ 욕구와 생명력은 힘과 위안을 준다. 해직교사 시절의 시인 도종환이 쓴 시 ‘담쟁이’는 이렇다.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여의도 국회 화장실에도 이 시가 걸려 있다. 선거나 공천에서 떨어진 의원들까지 담쟁이에게 위로를 받는다.

어쨌든 빨간 벽돌집을 꼬물꼬물 기어오르는 연초록 담쟁이는 낭만적이다. 때로는 너무 요란한 듯도 하지만, 시멘트 벽을 타오르고 시골 돌담길에 펼쳐지던 담쟁이의 아스라한 정취까지 쉬이 뺏지는 못한다. 그런데, 이 담쟁이를 두고 ‘담쟁이파’와 ‘담쟁이 제거파’가 갈리고 있다.

뿌리 1cm만 남아도 다시 자라나

2009년 12월18일 연세대는 서대문구청 문화체육과로부터 공문 한 장을 받았다. “담쟁이가 건물을 훼손시키니 제거해달라. 제거가 안 될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방안을 회신해달라”는 것이었다. 연세대에는 국가지정 문화재로 이름을 올린 건물이 세 채 있다. 언더우드관(사적 276호)을 중심으로 좌우에 쌍둥이처럼 마주 보는 2층 석조 건물인 스팀슨관(275호), 아펜젤러관(277호)이다. 세 건물 모두 1920년대에 튜더 양식으로 지어졌다. 공문에 적힌 담쟁이 위험성의 근거는 이랬다. “담쟁이가 무성하면 습기가 높아지고 이끼가 자란다. 돌의 부식이 빨라진다. 이 과정에서 석조 문화재에 해로운 화학물질도 발생한다. 돌의 부식을 촉진시킨다. 습기와 먼지 등이 10년 이상 엉키게 되면 담쟁이를 떼어내도 석재에 검은 물이 든다.” 부식과 변색이 되니 담쟁이를 제거하라는 것이다.

공문을 받아들고 회의가 열렸다. ‘연세대 하면 언더우드관, 언더우드관 하면 담쟁이.’ 학생들은 해마다 담쟁이를 배경으로 졸업사진을 찍었다. 반백의 졸업생도 담쟁이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담쟁이의 ‘위험성’은 대학 쪽도 알고 있다. 총장 공관으로 쓰이는 건물에도 담쟁이가 자라고 있었지만 건물에 물이 새기 시작해 싹 제거해야 했다. 돌 사이의 틈으로 담쟁이가 비집고 들어간 것이 원인이었다. 연세대 쪽은 “힘이 대단하다”고 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학교 수목의 연혁을 관리하지 않아 정확한 식재 시기나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언더우드관의 담쟁이는 연세대의 상징과 같은데 없앨 수는 없었다”고 했다. 대학 쪽은 ‘최대한 건물 본체에는 이상이 없도록 유지·관리를 잘하겠다’는 회신을 구청 쪽에 보냈다.

‘담쟁이 제거파’는 문화재청에 진정을 넣은 한 문화재 보호단체에 뿌리를 둔다. 2009년 3월 ‘우리 문화재 바르게 지킴이’(이하 지킴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는데, 이 단체는 ‘일제가 의도적으로 숭례문·흥인지문 등의 석벽에 담쟁이 등을 무성하게 심어 성곽과 궁궐 등의 문화재와 주변 환경을 크게 훼손시켰다. 해방 뒤에도 일제 때의 잘못된 관습은 시정되지 않았고 문화재 주변에 무분별하게 큰 나무와 담쟁이를 심는 일이 지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목조·석조 문화재에 고풍스러운 멋과 아취를 더해주는 듯했던 담쟁이가 사실은 ‘잘못된 식재’라는 것이다. 지킴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권대성(한국미술박물관장)씨는 “담쟁이는 30년쯤 자라면 뿌리 지름이 16cm가 넘는다. 뿌리를 뽑아도 잔뿌리가 1cm만 남아 있으면 몇 년 뒤 또 자라는 무서운 식물”이라고 했다. 그는 “전국의 절, 고궁, 민속마을, 서원, 향교, 전통적인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거의 다 담쟁이가 있다. 예뻐 보인다고 신나게 심은 것”이라고 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한옥 등 한국 건축과 담쟁이는 맞지 않는다. 습기를 머금은 담쟁이가 덮어버리면 목조건물은 쉽게 썩고, 벌레 등이 끓어서 집이 상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전통 가옥에서는 정원에 나무도 안 심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후원’이 발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 소장은 “한옥이나 담장 등은 잘 짜인 모습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담쟁이가 이를 싸고 있으면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담쟁이 뿌리로 성곽의 돌들이 벌어져 무너지기 때문에 조선시대만 해도 ‘성곽의 예쁜 담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20세기 초, 망한 왕조의 오래된 흑백사진을 보면 경복궁이고 창경궁이고 담쟁이만 무성하다. 담쟁이는 쇠락과 겹쳐진다. ‘보기 좋다’지만 “영국 버킹엄궁에서 담쟁이 봤느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단열, 이산화탄소 흡수 장점도

2009년 문화재청은 문화재자문위원들의 검토를 거쳐 담쟁이 제거를 결정했다. 그해 12월10일 문화재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들에 담쟁이 제거 공문을 보냈다. 문화재청에서 직접 관리하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종묘의 담쟁이도 제거됐다. 경기도 수원 화성의 담쟁이도 뿌리가 뽑혔다. 화성사업소는 5.74km에 달하는 성곽의 5% 정도를 차지하던 담쟁이를 2009년부터 해마다 제거하고 있다. 화성사업소 관계자는 “담쟁이가 습기를 빨아들이면 풍화작용으로 돌 표면이 약화되고, 돌 틈으로 줄기가 계속 번지는 문제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담쟁이가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문화재의 원형을 지켜 후대에 물려줘야 하는 ‘문화재 관리’ 차원에서는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여러 문화재의 담쟁이 제거 전과 제거 후 사진을 견줘보면, 제거 뒤가 훨씬 보기 좋은 경우가 많다. 짜맞춰진 돌담의 장식미도 도드라져 보인다. 담쟁이로 인한 성벽의 땟물도 담쟁이를 떼어내니 생각보다 심각해 보인다. 담쟁이가 있어야 그럴듯하게 보인다는 것은 현대인의 ‘착시’일 수 있다.

» 경기도 수원 화성을 관리하는 화성사업소는 2009년부터 성곽에 자라는 담쟁이를 제거하고 있다. 제거 전에는 짙푸른 담쟁이의 정취가 있다면, 제거 뒤에는 성벽의 단단함과 웅장함이 느껴진다. 우리 문화재 바르게 지킴이 제공

» 경기도 수원 화성을 관리하는 화성사업소는 2009년부터 성곽에 자라는 담쟁이를 제거하고 있다. 제거 전에는 짙푸른 담쟁이의 정취가 있다면, 제거 뒤에는 성벽의 단단함과 웅장함이 느껴진다. 우리 문화재 바르게 지킴이 제공

2009년 5월에 만들어진 문화재청 훈령 ‘성곽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일반지침’에는 ‘성곽의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목을 제거’하도록 돼 있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라고 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문화재별 특성과 현장 상황을 고려해서 지자체에서 제거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시민들이 자주 찾는 서울성곽이나 북한산성만 해도 밀림처럼 무성한 담쟁이를 빼고는 얘기하기 어렵다. 블로그마다 ‘담쟁이가 예뻐요’라는 설명을 단 상춘객들의 사진이 수북하다. 북한산관리사무소 쪽은 “산성 관리는 지자체에서 한다.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식물을 함부로 제거할 수도 없다”고 했다.

반면에 도시 녹화를 위해 담쟁이를 적극 활용하는 ‘담쟁이파’ 도시들도 늘어가고 있다. ‘전방 도시’ ‘콘크리트 회색빛’ 이미지가 강한 강원도 고성군은 지난해부터 담쟁이 심기 사업을 시작했다. 전봇대, 방음벽, 전차방호벽, 옹벽, 버스승강장 등에 대대적으로 담쟁이를 심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을 맡고 있는 김창인씨는 “단열 효과가 뛰어나고 봄·여름·가을 때 보기에도 좋다. 차량의 이산화탄소도 흡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운 도시의 대명사인 대구도 2009년부터 건물 벽면, 옹벽, 교각 등에 담쟁이를 심고 있다. 담쟁이를 ‘가습기’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대성 지킴이 대표는 문화재뿐만 아니라 일반 건물의 담쟁이도 제거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여름철 단열 효과나 이산화탄소 흡수 등의 장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건축물 수명을 단축시키고 겨울에는 지저분하다. 아름답게 집을 지어놓고 이를 담쟁이로 다 덮어버리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고 했다.

“획일적 제거 혹은 유지 논박 피해야”

담쟁이파와 담쟁이 제거파 사이에서, 무엇이든 획일적으로 가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통·생태조경을 연구하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성종상 교수는 “전통이라는 것이 신라왕관처럼 보존 처리를 잘한 뒤 박물관 안에 모셔야 하는 것도 있지만, 건축 문화재처럼 세월의 풍상에 부딪혀가며 때와 이끼가 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전통도 있다”며 “익숙하고 정다운 풍경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을 너무 기능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국의 아이비리그는 담쟁이 때문에 유명해지지 않았느냐”고 했다. 문화재와 담쟁이를 너무 상극으로만 보지 말라는 주문이다. 그는 “도시 녹화를 한다고 모든 지자체가 획일적으로 담쟁이 하나로만 가는 것도 문제지만, 장점이 많은 담쟁이를 무조건 다 제거하자는 것도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뭐든지 과하면 징그럽다는 얘기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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