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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본 KIU

제목[영남일보] 지역의 느림보들 [Weekly4U]

작성자
장규하
작성일
2006/06/23
조회수
813
2006/06/23 프랑스 출신 '느림의 전도사' 피에르 쌍소의 말처럼 느리게 사는 사람들은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다. 좀 게으르게 보이기도 하고 빈둥거리는 백수로 보이기 십상이지만 진짜 느림보들은 뭔가 좀 다른 구석이 있다. 제 삶에 주제가 있다. 강원도 춘천의 명물 소설가 이외수나 작고한 시인 천상병처럼 순진스러운 낭만성도 갖고 있어야 한다. 전원으로 물러나 '세월아, 네월아' 하는 식으로 살아가는 좀 있는 자들의 '전략적 여유로움'은 느림이 아니라 제외시켰다. 이제 지역의 느림보들을 만나러 가보자. 시인 서지월 종일 시만 생각하는 서지월 시인(52). 대구선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느릿한 시인이다.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그의 집 두문산방도 그처럼 느릿하게 생겼다. 오후 2시에 전화를 걸면 취침중일 때가 많다. 철야하면서 시를 빚은 탓이다. 그는 전업시인, 그래서 바쁠 필요가 없다. 그는 그것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자청했다. 그가 꾸려가는 시인학교를 통해 몇 푼 가져오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그의 서재는 '만물상' 같고 '난지도'를 방불케 한다. 이불도 늘 펴져 있고 잠옷바람으로 생활한다. 세상이 꺼져버릴까 봐 수년째 청소도 안한단다. 새벽엔 눈빛이 더 초롱하다. 담배를 피우며 모로 누워 허공을 바라본다. 다소 불온스럽지만 그 느릿함이 멋진 시의 원천이 아닐까? 사진작가 백정현 오로지 흑백사진만을 고집해왔다 낯설고 느린 시선이지만… 그 낯섦이 그에겐 세상과 연결된窓이다 예일사진 학원 백정현 원장(37). 대구시 중구 서문로 1가 고풍스러운 빌딩 3층에서 만난 박 원장은 굳이 흑백 사진만 고집하는 좀 우직한 사진작가이다. 한때 부잣집 아들로 남 부러울 것 없이 중앙대 사진학과에서 사진 공부하다가 IMF 환란 때 아버지 사업이 거덜나는 바람에 길거리로 나앉게 된 적도 있다. 그는 동굴 속 암담함 시간 속에서 느림을 만났다. 30명의 학생을 위해 매주 월·수·금요일 오후 7~9시, 수·목요일에는 경일대에 출강한다. "나에게 있어 흑백사진은 컬러사진이다"고 외친 마이클 프랭크. 그 말이 그를 미치게 한다. 흑백도 그에겐 치열한 컬러인 셈. 주제를 대변하는 사진을 포토폴리오 식으로 선별하기 위해 평균 2~3년 비슷한 동선을 유지해야 한다. 유행하는 트렌드가 있어도 그것에 시선을 줄 수 없다. 자연 돈과 멀어진다. 그는 "돈에서 멀어지지만 그럴수록 실력은 늘고 그래서 최고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98년 6월8일 동아백화점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지금은 사라진 동·서변동 재개발 과정을 흑백사진에 기록한 것. 집 잃고 배고픈 개와 걸인, 황량한 재개발 촌을 쓸쓸히 걸어가는 아이의 눈 등을 렌즈 속으로 빨아들여 '낯설은 망각'이란 제목을 붙였다. 그는 18년간 6만여 번 느릿한 셔트를 날렸고 그 중 100여 장만 세상에 공개했다. 골목지킴이 권상구 2006년 6월 골목은 '멸종'위기에 있다 그래서 미친듯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그에게 골목은 정밀한 호흡기이기 때문이다 대구는 전국적 골목의 도시. 하지만 2000년대 들면서 그 골목들이 거의 재개발 프로젝트에 밀려 멸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 광장족은 멸종이란 말을 듣고 웃을 지 모른다. 하지만 골목족에겐 이 사업이 심각하게 보인다. 지역 골목문화의 전위에 서 있는 거리문화시민네트워크 권상구 사무국장(33). 그는 골목이 도시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를 잘 안다. 그의 몸짓은 'e짓', 하지만 그 메시지는 나이답지 않게 고풍스럽다. 그는 90년대말 중구의 골목 탐사에 나선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주부 등 시민들과 함께 골목을 누볐다. 1906년쯤 철거된 대구읍성의 돌이 계성중고 아담스관 주춧돌 등으로 사용됐다는 사실 등을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골목문화 활성화를 위해 '대구문화지도'(2001), '골목은 살아 있다'(2002), '골목문화 가이드북' 등에 이어 조만간 그 동안 일을 총정리한 '대구신택리지'도 출간한다. 권 국장은 "골목이 도시민들에게 허파와 같은 구실을 한다"고 말한다. 명상예찬가 박종길 하루일이 끝나면 도망치듯 가장 고요한 곳을 찾는다 그렇게 20년을 살아왔다…그에게 그것은 격분도 다스릴 수 있는 명약인 셈이다 법무사인 박종길(52). 그의 하루는 절로 시작한다. 자신을 낮추면 맘이 더 편해진단다. 그리곤 전쟁터로 나간다. 업무가 끝나면 부리나케 도심에서 가장 고요한 공간으로 간다. 그렇게 20년 이상 살아왔다. 요즘은 영남일보 웰빙센터, 달서구 상인동 희말라야 명상센터에서 박지명 원장의 지도를 받고 있다. 그는 두달 전 '명상가족' 작전을 수립한다. 컨셉트는 좋았지만 3명의 자녀와 아내의 반대가 심했다. 센터에 식구를 데리고 오는 건 쉽지 않았다. 학교·학원 공부에 파김치가 된 자녀와 심야의 명상, 그런데 아내 예춘정씨(계명문화대 뷰티코디네이션과 교수)가 먼저 번쩍했다. 명상이 도움이 된 것이다. 아무리 화장품이 좋아도 내면의 평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결코 좋은 피부를 가질 수 없다는 게 예씨의 지론. 장녀 지민(17)·차녀 선민(15)·장남 준범(13), 셋이 다다미 깔린 센터의 한 구석에서 잠시 잠을 자고 있다.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박씨의 표정은 흡족하다. 함께 센터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박씨의 표정은 갈수록 단아해진다. 느릿한 보법 때문에 인간적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격분의 순간도 다스릴 수 있었다고 한다. 아내도 "명상 덕분에 예전과 달리 남편이 너무 타인을 배려하는 것 같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이춘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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