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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인명 쥐락펴락하는 두꺼비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두꺼비독은 심근이나 신경에 작용해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어 소량의 독은 강심제나 암세포 증식 억제제로 이용

▎2011년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출품된 영화 <정복자 독두꺼비>의 한 장면. / 사진제공·EBS 국제다큐영화제
지난 4월 중순경 신문이나 TV, 라디오에 시끌벅적 난리 굿이 났었다. 간단히 말해서, “대전에 사는 황모(57)씨가 대덕구의 한 단골식당에서 친구들과 황소개구리매운탕을 먹고 구토증세가 나서 입원했으나 숨졌는데 사인(死因)을 밝히기 위해 그가 먹었던 매운탕 찌꺼기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성분 분석을 한 결과 두꺼비 독성물질인 ‘부포탈린(bufotalin)’과 ‘아레노부포톡신(arenobufotoxin)’이 검출됐다. 두꺼비의 피부에서 분비되는 두꺼비독은 심근(心筋)이나 신경에 작용하여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참고로 몸 길이 20㎝에 몸무게 400g에 달하는 황소개구리(Rana catesbeiana , American bullfrog)는 원래 식용 개구리로 들여왔던 놈이다.

이들에게 큰 탈을 나게 한 것이 두꺼비 종류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노상 물에 사는 물두꺼비(Bufostejneger)였을까? 아니면 산란하러 내려간 땅에 사는 두꺼비(Bufo gargarizans)였을까?

그럼 물두꺼비(Korean water toad)부터 보자. 한반도와 중국 북부에 분포하는 한국 특산종인 물두꺼비는 물두꺼빗과에 속하는 양서류로 강원도 오대산이나 경기도 가평 등지의 물 맑은 고지대(고도 200~700m)의 두메산골 계류(溪流)에 서식한다.

몸 빛깔은 암수가 달라서 수컷의 등짝은 거의 흑갈색이나 암컷은 황갈, 회갈, 적갈, 흑갈색 등 다양하고, 암수 모두 우둘투둘한 사마귀(wart) 돌기가 나며, 배는 연한 황색이다. 물두꺼비는 두꺼비와 흡사하나 두꺼비에 비해 몸집이 작고(4㎝), 체색이 전연 다르며, 몸에 돌기가 적다. 주로 물에 살고, 두꺼비와 마찬가지로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디곡신(digoxin) 등의 여러 독을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 살펴본 바로는 대전 사건의 주범이 물두꺼비가 아님을 알았다. 대전에 한반도 중북부의 산간 계류에만 나는 물두꺼비가 있을 리가 만무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두꺼비(B. gargarizans)가 정범(正犯)임이 틀림없다. 산기슭에서 월동을 끝낸 두꺼비들이 산란하려 강이나 연못으로 내려간 녀석들을 황소개구리 새끼로 알고 잡았던 것이다.

다음은 두꺼비 이야기다. 두꺼비(asiatic toad)는 양서류, 두꺼빗과로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가 원산지다. 암놈(13㎝)이 수놈(8㎝)보다 훨씬 크고, 최대 몸무게 80g 정도이며, 두 눈은 우뚝 솟았고, 눈동자(pupil)가 가로로 찢어졌다. 살갗이 가죽같이 질기고 딱딱하기에 되게 건조한 곳에서도 살고, 피부색은 환경에 따라 그때그때 보호색을 띤다. 장마철이면 산등성이 길가에 어슬렁거려 발길에 차일 만큼 흔하던 두꺼비가 요샌 당최 보기 힘들어졌다.

두꺼비는 날씨가 풀리는 3월 말에서 4월 초면 우물쭈물할 틈도 없이 저 아래 정해진 산란 터(바로 제가 태어난 물가)로 떼 지어 엉금엉금 앞다퉈 내려간다. 아예 미리 와 자리 잡고 기다리는 수놈들의 시끌벅적한 사랑노래(mating call)를 듣고 암놈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리로 몰려든다. 아등바등 죽기살기로 치열하게 힘을 겨뤄 이긴 수컷 놈이 기어이 암컷을 꿰찬다.

‘두꺼비씨름 누가 질지, 이길지’


두꺼비(common toad) 몸에는 꺼림칙하게 도드라진 사마귀혹들이 한가득 났고, 피부는 물론이고 귀밑샘(이하선, 耳下腺) 독선(毒腺, toxic gland)에서 두꺼비독이 나온다. 흠씬 삶아도 변성하지 않는 지방성인 흰 독액을 먹으면 사람도 동물도 한 방에 간다.

포식자(천적)를 무찌르기 위한 두꺼비독(toad venom/ bufotoxin)에는 부포테닌(bufotenin)·부포탈린(bufotalin)·부팔리톡신(bufalitoxin) 등의 독기가 있어서 눈·입·코·목에 닿으면 심한 자극(따가움)과 통증을 유발하고, 먹으면 심장과 호흡에 이상을 초래한다. 마비, 발작, 구토, 타액 분비 이상, 환각, 칼륨 과잉 및 피부가 파래지는 청색증(靑色症)도 일으킨다. 그러나 해독제(anti-venom)가 없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르듯이 이독제독(以毒制毒), 독으로 독은 잡는다. 사람들은 두꺼비를 커다란 병에 집어넣고 놈들을 놀리거나 쿡쿡 찔러 겁을 주어서 귀밑샘에서 진득한 유액(乳液)을 분비케 하여 그것을 모아서 약으로 사용한다. 소량으로 강심제나 암세포 증식 억제제로 이용하고, 또 말린 두꺼비살갗을 몸이 붓는 수종(水腫)에 쓰며, 두꺼비를 조려 기름을 짠 두꺼비기름(toad‘s oil)은 피부병에 그만이라 한다. 게다가 근래 와서 항(抗)세균물질을 추출하였다고 한다. 여하튼 ‘병은 하나여도 약은 만 가지’라더니 만 두꺼비도 용한 약이 된다.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이란 말은 음식을 재빨리 먹어버리는 모습을 비꼰 말이다. 녀석들이 장마철이면 우리 집 마당에 어정어정, 뒤뚱뒤뚱 앉은뱅이걸음으로 기어들어 저지레를 했지.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따로 없다. 마루턱에는 꿀벌 몇 통이 있었으니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놈들이 벌통 어귀에 너부죽이 엎드려 바글바글 들락거리는 꿀벌을 비호(飛虎)같이 큼 큼, 날름날름 온통 잡아챈다.

뻔뻔스런 녀석들이 덥석덥석 다 잡아먹을 듯이 덤빈다. 이러다가 삽시간에 다 털릴 판이다. 곤욕스런 분탕질을 두고 볼 수 없다. 한시바삐 손을 써야지 발만 구르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부지깽이 몽당이로 자치기하듯 뱃바닥을 치켜들어 멀찌감치 휙 내동댕이친다. 뿔난 나에게 흠씬 얻어맞고도 녀석이 어수룩하게 눈만 끔벅거리며 배를 불룩 부풀리고는 버티고 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따로 없다.

두꺼비는 성체가 되면서 꼬리가 없어지고 흔적만 남는다. 너무 작아 마치 없는 것과 다름없을 때를 비겨 “두꺼비 꽁지만하다”고 하고, 또 힘이 비슷하여 서로 다투어도 승부가 나지 않을 때 ‘두꺼비씨름 누가 질지, 누가 이길지’라 한다. 또한 복스럽고 탐스럽게 생긴 갓 난 사내아이를 “떡두꺼비 같다”라 한다지.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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