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주일 [(백)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정 성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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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2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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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마태오 2,13-15. 19-23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5.19-23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9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20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21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22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23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한 가정의 행복은 하느님의 선물이므로 가정의 일원들에게 헌신과 애정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행복은 서로를 사랑으로 감싸 줄 때 충만해집니다. 모든 이의 공동선을 위한 헌신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행복의 조건입니다.오늘 복음에서는 아기와 그 어머니의 목숨을 살리고자 전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요셉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동방 박사들에게서 메시아의 탄생 이야기를 들은 헤로데 임금은 베들레헴과 그 인근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입니다. 예수님에게도 그런 위험이 닥쳐오자 주님께서 요셉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요셉은 일어나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서둘러 피신합니다. 부리나케 떠나면서 그동안 공들여 쌓은 성과와 집과 친구들을 모두 버립니다. 그의 행복은 아기와 그 어머니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헤로데의 아들이 다스리는 유다로 들어가지 않고 갈릴래아의 작은 고을, 나자렛으로 갑니다. 요셉의 태도는 하느님의 부성에 대한 반영과 동참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기와 그 어머니를 참으로 걱정하시고 천사를 보내시어 요셉에게 해야 할 일을 일러 주십니다. 요셉의 배려는 하느님의 배려를 가리킵니다. 하느님에게서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나오고 요셉의 가정은 그분의 인도를 받습니다.가정에서 애정이 이기적으로 변하면 나쁜 감정과 관계 때문에 불목이 가정을 지배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요셉이 아기와 그 어머니와 함께하였던 것처럼, 가장 힘없는 이들, 가장 작은 이들, 가장 소홀히 한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_by Gerard van Honthorst_in the Centraal Museum in Utrecht_Netherlands

헤라드 반 혼토르스트(Gerard van Honthorst)의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David)

성인명

다윗 (David)

축일

12월 2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왕, 예언자, 구약인물

활동지역

이스라엘(Israel)

활동연도

+10세기BC

같은이름

다비드, 데이비드

성 다윗은 이사이의 막내아들로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다윗 왕조의 태조로서 예루살렘에서 기원전 1000-961년 사이에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이었다. 다윗은 유다 지방 베들레헴 출신이고 룻기 4장 18-22절에 의하면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 사이에서 태어난 오벳의 손자이다. ‘다윗’이란 이름은 전통적으로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백성들의 요구에 못 이겨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왕정 제도를 시작한 예언자이자 판관인 사무엘(Samuel, 8월 20일)은 사울이 왕으로 살아 있을 때 이미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미래의 왕으로 세웠다(1사무 16,1-13). 이는 이사이도 다윗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앞서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아말렉의 왕 아각과 가장 좋은 양과 소와 짐승들을 없애지 않음으로써 헤렘(Herem) 법을 지키지 않았다. 그로 인해 주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다는 말씀과 함께 그를 왕위에서 배척하셨다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1사무 15,10-31).

주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면서 사울은 악령의 괴롭힘을 받았다. 그러면서 다윗이 사울을 위한 비파 연주자로 발탁되어 사울의 총애를 받으며 그의 무기병이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음악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다윗은 사울에게 악령이 내릴 때마다 비파를 타서 악령을 쫓아내고 사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1사무 16,14-23). 이어서 다윗은 필리스티아의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1사무 17장).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침략한 갓 출신의 필리스티아인 투사로서 엄청난 키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군인이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그를 보고 도망갈 때, 다윗은 돌멩이 다섯 개를 넣은 양치기 가방을 메고 손에는 무릿매 끈을 들고 다가갔다. 그리고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골리앗의 이마를 맞혀 쓰러뜨리고 그를 죽였다. 이스라엘의 승리와 함께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사울 왕 앞에 나섰다. 이 모든 것은 주 하느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다윗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듯 구약성경은 다윗의 출현을 다양한 전승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시기를 받아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외적과의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며 이스라엘과 유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사울의 딸 미칼과 결혼해 그의 사위가 되었으나 왕의 시기와 위협은 그치지 않았다. 다윗의 절친한 친구인 요나탄 왕자의 중재로 겨우 현상 유지는 했으나 이 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다윗은 라마로 도망갔다가(1사무 19,18-24) 놉으로 가서 사제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았다(1사무 21장). 그리고 필리스티아의 갓 나라 임금 아키스에게 가서 잠시 머물다가(1사무 21,10-15) 아둘람으로 가서 곤경에 빠진 이들, 빚진 이들, 그 밖에 불만에 찬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 수는 사백 명가량 되었다(1사무 22,1-2). 그 후로 사울의 추적을 피해 모압의 미츠파, 크일라, 지프 광야, 마온 광야, 엔 게디 산성을 전전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군대를 이끌고 엔 게디 광야로 왔을 때, 다윗은 동굴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고 단지 겉옷 자락만 잘라왔다(1사무 24장).

마온에서 포악한 부자 나발을 물리치고 슬기로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한 다윗(1사무 25장)은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으로 망명해 갓의 임금 아키스와 더불어 살았다. 다윗은 아키스에게 청해 치클락 성읍을 받아 부하들과 함께 아키스의 용병으로 1년 4개월을 살았다(1사무 27,1-7). 사울이 죽자 다윗은 주님의 뜻에 따라 필리스티아를 떠나 헤브론으로 이주하였다. 두 아내와 부하들을 데리고 헤브론 성읍에 자리 잡자 유다 사람들이 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유다의 임금으로 세웠다(2사무 2,4). 헤브론은 곧 유다의 수도가 되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사울 군대의 장수인 아브네르가 마하나임으로 가서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을 온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2사무 2,9). 이렇게 유다와 이스라엘은 개별국가로 대립했다.

이스 보셋이 살해된 후(2사무 4,1-12)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자 그는 예루살렘을 점령해 수도로 삼고 새로운 성전 건립을 구상하며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합을 이루고자 했다. 이를 위해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다(2사무 6장). 예루살렘에서 33년의 통치 기간 중 이스라엘은 강대한 국가로 거듭났다. 그러나 시련도 많았다. 다윗이 총애했던 셋째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 대표적이었다(2사무 15,1-18,17). 많은 아내를 두었던 다윗은 왕자들의 암투와 반란까지 겪게 되었다. 이미 예언자 나탄이 왕자의 난을 예언한 적이 있다. 다윗 왕이 밧 세바에게 빠져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했을 때다.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2사무 12,10) 압살롬의 반란이 진정되자 다시 벤야민 지파 세바가 반란을 일으켰다. 다윗은 강경 진압으로 초기에 반란을 진압했지만, 앙금이 남아 솔로몬 사후 북쪽 지방이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다윗은 구약성경에 800번 이상 등장할 만큼 이스라엘 역사에 중요한 인물이다. 마태오와 루카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족보를 보더라도 분명 예수님의 조상이다. 구약성경은 이런 다윗의 다양한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긍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모습도 진솔하게 전해준다. 이는 왕정 제도에 대한 긍정적 · 부정적 견해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경은 무엇보다 주님의 선택과 그 선택이 다윗에게 변함없이 머물렀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때때로 주님의 질책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돌아서서 하느님을 향했던 다윗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다윗을 사랑하셨고, 그의 후손을 일으키시어 그의 왕좌를 튼튼히 해주셨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지고 바빌론 유배를 경험하면서 다윗을 떠올리며 그와 같은 임금, 새로운 다윗을 희망하게 되었고, 그 희망은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참고자료

정진석 추기경 저,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한 성왕 다윗, 서울(가톨릭출판사), 2008년.

폴 보샹 저, 이용권 역, 성경인물50 - 다윗, 서울(생활성서), 2014년, 162-184쪽.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3권 - '다윗',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6년, 1506-15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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