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인형

<연지인형>사도세자 영조는 왜 아들을 뒤주에 가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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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1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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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 "어찌하여 너와난..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와서야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밖에 없단 말이더냐..."







 

 


영조 : "난 자식을 죽인 애비로 기록 될 것이다.."







 


 


영조 : "넌 임금을 죽이려 한 역적이 아닌...


미쳐서.....


아비를 죽이려 한 광인이 될 것이야..."






 



영조 : "그래야.. 니아들이 산다..."







영조 : "내가 임금이 아니고.. 니가 임금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런일이 있겠느냐....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용상의 주인>





아버지가 아들을, 왕이 세자를


죽인사건..


이런 희대의 비극을 겪어야만 했는가...









숙종과 최무수리의 사이에서 태어난 연잉군(영조)









장희빈 또한 자의대비를 모시는 궁녀출신이나


경종의 생모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경종인현왕후의 아들


인정되었기에.. 경종이 오래동안 조선을 다스렸어야만


뒷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늘 어디선가 꼬임의 연속이던가..








숙종의 장희빈에 대한 총애가 시들시들해질 즈음..







폐위된 인현왕후의 생일을

궁안에서 기리는 최무수리가

숙종의 눈에 들어오게된다.



 






아들을 낳은 최무수리. 정일품

숙빈으로 신분상승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연잉군(영조)은 천것의

자식이라는 뗄 수 없는 꼬리표의 시작으로


평생을트라우마스트레스

시달리게된다.






(경종이 건강하고, 후사를 이어줬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기록이 되어있을지..)





우여곡절 끝에 생모 장희빈, 법적모 인현왕후의 아들

경종께서 보위에 올랐으나...



경종의 치명적 단점..


1.후사를 볼 수없는점.


2.병약한몸


왕으로서 가장 중요한일을


못하였기에...





당시 집권여당 소론은 권력을 빼앗길까 늘 전전긍긍 하였고,


비집권 야당 노론은 이 때다 싶어 연잉군에 줄을 서게된다.






하여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여

경종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는데,






이에 분노한 경종께선


신임사화(노론숙청사건:피바람)


를 일으켜 앞으로의 운명이


풍전등화과 같은 연잉군(영조)은


잔뜩 겁에질려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숙종의 세번째 정실부인 "인원왕후"께서

영조를 몸소 보호 하였고,









 


경종의 건강을 걱정한(??) 연잉군은 입이짧고 잘 먹지않는 이복형

이윤(숙종)에게 간장게장과 감을 올린다.




현대 한의학에서도 고단백 간장게장

타닌성분을 지닌 감이 만나면


소화불량, 설사, 식중독등이 발생 할 수 있다 전한다.


이후 배탈로 급사한 경종..


이로인해 연잉군(영조)은 또하나의

스트레스를 더 짊어지고 가게되는데..

바로 경종독살설이다.



(이일의 진실은 영조만 알고있다.)






가까스로 용상의주인이 된 연잉군

조선의 21대왕

영조이다.






보위에 올랐으나,

대표적인 평생의 컴플렉스로 개인적으론

불운한 인생을 살았던 왕이 아닌가싶다.








(일생을 미천한 서자 출신때문에 손가락질 받은군왕...)






최숙빈의 아들,






형을죽인살인자,




노론의 갑질



이로인해 영조4년 

무신란까지 겪지만

현명했던 영조는 정미환국

끝까지 도성을 사수하여


소론이 일으킨 반란을 소론이 진압하게 만들어




 


반역을 도모한 이인좌를


참수시키고, 가담한 백성 모두를 벌하는 것이 아닌


핵심인물만 벌하는 군왕의 모습을 보인다.







<정미환국>

노론과 소론의 극심한 당쟁을 조정하기 위해

소론이 정계에 복귀하도록 정국의 인사를 개편한일







<무신란>

1728년(영조 4)에 소론(少論) 과격파들과

남인(南人)이 영조(英祖)와 노론을 제거하고

소현세자의 증손자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







하지만 이복형 경족독살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영조 본인만 알지만, 경종 측근들 전부 영조가


경종을 독살한 것이라 믿고 있었기에


사실이던 아니던 무조건 몰아가기식


마녀사냥을 평생생 겪어야만했다.





영조 즉위 31년 천의소감


"그 생감과 간장게장 내가 형님께 올린게 아니라고 이놈들아!!"


라는 글을 쓴 것으로 보아 30년동안 극심한 트라우마


시달렸음을 짐작게 하는 부분이다.





천의소감

영조의 집권과 그 의리를 저술한 책으로 자신의 즉위에 대한 정당성을 대대적으로 알리고자함.






또한 노론이 만든왕이었기에..







노론 대신들은 영조를 꼭두각시 화 시켜 마음대로

조종하려든다.


(대신들은 신임사화로 희생된 자신들의 가족을 들먹이며

만든왕이란 빌미로 영조의 아킬레스건을 쥐락펴락

이권을 챙겼을듯 하다.)




 




영조 : "역시 믿을건 나밖에 없구나..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 것들이 언제 내 등뒤에 칼침을 넣을지 모를일이지.."







이렇기에






영조는 예민, 까칠, 깐깐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보위에 오르고 나서도 자신을 왕으로 세운 노론에게


허점을 조금만 보여도 대신들이 꼬투리를 잡아


자신을 공격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세자에게 엄격했던 이유.>




 




그걸 알아차린 영조는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였다.








끼니를 거르는법 없이 채식위주 소식으로 천천히 꼭꼭 씹어드시고,






 





손에서 책을 놓는법 없이 하루 15시간 이상 되는 살인적인 정무를

딱딱한 바닥에서 허리펴고 앉아 끝까지 보신다.








이후 정빈이씨의 소생 적장자 효장세자가 10세에 죽고,







영빈이씨의 소생 이선(사도세자)가 태어난다.







영조 마흔하나에 낳은 고귀한 아들. 안이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만 2세 때부터 글자를 알아


왕이란 글자는 영조를 가르키고


세자라는 글자는 자신을 가르켰으며


천지/부모 등 63자를 알고 있었다.



[천자문]을 읽다가 ‘사치할 치(侈)’자를

보고는 입고 있던 반소매 옷과 자줏빛

비단으로 만든 구슬 꾸미개로 장식한


모자를 가리키면서 “이것이 사치한 것”

이라고 하고는 즉시 벗어버렸다.



이정도면 영조 이상으로 영특한 아들이고,

제2의 세종대왕,문종대왕 성군조화를 기대할 수 있었으나...





하지만 어찌하여...



<비극의 시작>


너무 기쁜나머지 영조는 비극의 시초가 되는 큰 실수를 하게된다.


늦게 얻은 자식이라 조급함도 있었을 것인데,



 


(동궁전- 세자가 사는곳.

왕실의 동쪽에 위치. 떠오르는 태양을 의미

이로서 사도세자는 자연히 젖먹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부모의 사랑을 받아 이쁨만 받아야 할 시기에


조선 최연소 세자 책봉 (생후 1년만에 세자가 된 이선)을


하게된다.


(이건 마치 갖 태어난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꼴..)



사실 세자는 어느정도 장성한 다음에


이 아이가 세자로서 적합한지 판단후 책봉 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하여 부모의 사랑은 고사하고

동궁전에 홀로 지내게 된 사도세자.)



여기서 더 이상한일이 발생한다.




영조는 경종을 모시던 나인들을 세자의 보모로 앉혀놓은 것이다.





영조 : "자네들이 우리 형님을 잘 모셨던 것으로 아네. 우리 세자를

자네들이 맏아주게."



보모들 :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성심을 다해 세자저라를

보필하겠나이다."




보모상궁 : ("드디어 때가 왔구나. 연잉군 네이놈!! 니가 우리

경종대왕님을 잘도 죽였겠다?

죽이고도 무사할성 싶더냐!?  하늘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계실 경종대왕의 한을

네놈 자식 앞길 망치는데 풀것이다.!")






보모2 : ("내 경종께서 승하하신날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느니라

미천한 무수리 출신의 아들주제에 감히 용상에

앉아있는가? 내 니 일가족 모두 처참히 무너지는 꼴을

반드시 보고 말게야!")





보모3 : "저또한 마마님들과 같은생각입니다. 세자 이선을

연잉군과 갈라놓는데 돕겠습니다.

경종대왕님의 한 반드시 풀어드리지요."







 

왜? 영조는 경종의 보모나인들을


세자양육에 배치했는지 미스테리하다.




 



경종을 살해한 주범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 궁녀들인데..





 


결과는 뻔했다. 영조와 사이를 갈라놓고,







무술을 가르쳐 문학에 뛰어나고 아버지와 사이좋은 건강한

세자로서 성장하지못하게 막은 것이다.


밖에서 뛰어놀고 무술하며 그림그리고

서유기등을 읽는 것이 어린나이에 공부보다

재밌는 것은 당연하다.








혜경궁홍씨(의황후)가 저술한 한중록엔


"세자를 일찍 책봉하여 동궁전에 보낸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고,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 단절게 한 계기가 되었다"


라 기록 되있다.



만약 여기서 영조가 욕심 부리지 않고, 적정 시기에

세자로 책봉했더라면...


"영조, 장조(사도세자), 정조


세종대왕,문종대왕 이상의 성군들이 세번 연달아

탄생 했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든다.







완벽주의 왕이 세자를 위해 밤잠 설쳐가며 책까지 써주었는데,


공부는 뒷전이고, 무술에 개그림 그리는 세자의


모습을 본 영조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자신은 생존을 위해 죽기살기로 공부하여 이자리까지 왔고,







현재 자신을 허수아비 왕으로 만드려는


노론 대신들이 주는 스트레스로 맘편할날이 단 하루도 없는 현시기


자신의 생각대로 따라오지 않는 세자가 원망스럽고


한편으론 나중에 노론대신들 등살을 이겨내야 할 세자가


걱정 되었을 것이다.








사도세자가 현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연예인, 디자이너, 무술인이

되지 않았을런지..


공부쪽으로 천재성이 있기는 하나 무예/ 예체능에

흥미있고 잘 아이에게 외교관, 판검사, 의사 하라고

억지로 공부시키려 했으니..


현시대 자녀의 꿈으로 부모와 자식간의 흔한 갈등이

조선시대 왕과 세자에게 일어난 것은 비극이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설상가상으로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영조.







부자관계는 대리청정을 계기로 회복 할 수 없을만큼 갈라진다.







 




<세자더러 뭐 어쩌라고... 그럼 영조 당신은

왜 젖먹이 때 동궁전으로보내 보모들의 세뇌와 잘못된

교육에 세자를 맏기고, 준비가 덜되었는데 대리청정을 왜 시켰소..>




영조 : "지금이 어떠한 상황이던가.. 난 죽을뻔한 경험을 겪고

가까스로 살아왔느니라. 허나 세자는 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멀리하다니..! 끌끌..

일국의 왕이 될 나라의 뿌리가

공부를 게을리 하면 쓰겠는가!?


저 노론 것들은 호시탐탐 약점 잡을 기회만

노리고 있는 마당에.! 세자가 저리하면

노론을 어찌 감당 하겠는가!?>





모든일에 철두철미한 영조눈엔 당연히 세자가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고, 노론의 요구를 들어주어야만 하는 입장에

계속 아슬아슬한 딜을

봐야하는 영조소론쪽을 지지하던 세자


당연히 서로 멀어지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노론또한 세자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드려 온갖 노력을 다해봤겠지만,

이미 소론파 보모들에 의해 세뇌된 세자이선.











결국 문안인사도 안드리게 되는 세자..

6개월간 혹은 1년넘게 인사를 드리지 않아


서로간에 대화중단,불통,의심,오해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자의 선생과 있는 자리에선 말도잘하고

웃음도 많았던 이선(세자)이 아버지앞에

 서기전 청심환을 먹지 않으면

상대를 할 수 없었다 한다.




결국 아버지 앞에서 실어증이 걸린 이선..





영조 : "뭐 말해."


사도 : "ㅁㅇ..어버버버...





영조 : "아 뭐!!! 말을 하라고!!!!"






(세자는 기절)


아버지 앞에선 실어증에 야단치면 기절하는 세자이선.

이런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정상이었던 사람도

이런식으로 매일 갈굼 받으면 미치지 않는게 이상하다.



이를 지켜본 혜경궁 홍씨는 보살이 될 수밖에 없던 비운의여인..


 그로인해 세자는 마음의병(의대증,뇌벽증,경계증)이 생겼고,


영조에게 소문이 들리는데,




<마음의 >



밖에 놀러다니며 기생과 여승과 놀며 술마셨고,



옷이 살갖에 닿거나(의대증) 쳐다봤다 죽여

고인의 머리를 들고다니며 자랑스럽게 여겼다 한다.





세자 : "그인간한테 사랑받는 것들 여기 다모였네.~"





!!!!!





 


세자 : "난 그인간하고 도저히 한공간에서 살 수가 없어.."




 

세자 : "그늙은이 당장 경희궁으로 옮기라해!!!!!"





 



세자 : "아니면 다같이 죽는거야..."





화완옹주 : "아.. 알았어 알았어. 내 무슨수를 써서라도 옮기게 하리다. 내.. 내가 옮기게 하리다 오라버니.."





영조는 "사람을 죽여라" 라는 말을 하면 이를닦고,

누군가를 "참하였습니다."란 얘기를 들으면 귀를씻는데,

이것을 자식 만날때 한다.








영조 : "밥 먹었냐?"


세자 : "예.."



(이후 영조는 귀를 씻고, 이선이 사는 궁쪽으로 물을 던져버렸다.)


해도 너무하는 영조의 편애.. 화평옹주와 화완옹주는


그렇게 이뻐하면서 자신의 기대를 못미쳤다고 귀한아들


세자에게는 어찌그리... 하기야 노론과 소론.. 당파가 갈리면



아비와 아들 관계를 떠나

서로 제거해야 할 적이었기에..


게다가 자신이 싫어하는사람(사도) 좋아하는사람(화평옹주등)이


같이 있는걸 끔찍히도 싫어했다 한다.







한중록中

"1761년 정월에 궁 밖으로 나가시려고 옷을 갈아입으시다가

그것(후궁 빙애)를 죽도록치고 나가시니라"


"내게 바둑반을 던져 왼쪽 눈을 다 상하게 하니, 하마터면 눈망울이

빠질뻔 했느니라."


주먹으로 자신의 후궁을 주먹으로 때려죽이고, 혜경궁에게 가정폭력 행사, 빙애(세자의 후궁)가 낳은 자식도 때려 기절

시킨 후 연못에 던져버리며

연못에 빠진 이선의 아이를 신하들이 건져내 살린다.



이정도면, 도저히 제정신이라 볼 수 없는 사도세자 이선.




<진솔한대화>




왕과 세자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



영조 :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영조 : "그 때 까지만해도.."





영조 : "금쪽같은 내 아들.."






 

영조 : "선아.."





 


영조 : "너 왜그렇니.."







이선 : "울화증이 치밀어서 그럽니다."





영조 : "왜울화증이 치미는 것이냐.."




이선 :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어 울화증이 생겨"







이선 : "짐승이나 사람을 닥치는대로 죽이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습니다."







영조 : ".................."








영조 :"내 다신 그렇지 않으리..."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


4년간의 대화단절 불통의 시기가 이들을 맞이한다.


이쯤되면 영조와 사도의 관계는 GAME OVER라는 것을


다들 눈치 챘을 것이고,


주변사람들은


 세손만이라도 목숨 보존 할 수 있는 방도를


생각 했을 것이다.






혜경궁 : "이젠..세손을 보호해야 할 방도를 찾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영빈이씨 : "내본심은..  임금도 살리고 세자도 살리자는 것인데..








화완옹주 : "올케. 세손을 나한테 넘기세요."


혜경궁 : "뭐요.?"






 



화완옹주 : "여기 나말고 세손을 왕만들수 있는사람 있어요?

세손 문제는 나한테 일임하라니까요.

아버지가 내말을 듣는다니까?"







.......





홍인한(홍봉한:사도의 장인)의 동생) : "허어, 참.."





 


홍인한 : "아니 형님. 일개 옹주의 말만 믿고 가문의

생사를 걸거요!?"





 


홍인한 : " 에잇! 쳇!!"





 


홍인한 : " 새중전께서 오신 이후로 주상의 건강이 날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 것은 아마도..."







김한구 (정순왕후 김씨의 父) : "당신 여기와서 왜이래.!?"






 



홍인한 : " 하... 나도 살고, 가문도 지켜야되지 않겠소."






 


홍인한 : " 세손이 왕이되면, 그 아비의 죽음을 방관한

우리들은 다 죽어요."





.......



김구주(정순왕후 김씨의 오라비) :"그래서요.?"






홍인한 : "무슨수를 써러라도 세손의 등극을 막아야 합니다."






김상로 : "그 다음에는?"






홍인한 : "새중전께서 왕자라도 생산하시면 그 것으로 상황은 끝이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한들 어리버리한 종친하나

용상에 앉혀놓고, 새중전께서 수렴청정 하시면 될게 아닙니까."







김한구 : "하기야.. 주상도 왕자시절 죽게 될뻔 한 것을..

우리 아버지들꼐서 대신 사약을 마시고

만든왕 아니던가..!"









영조 : "보위를... 세손에게 물려주고자 한다. 그대들중에

누가 세자를 폐하라는 상소를 올리겠는가..!"







대신들 :"........."






영조 : " ....."




영의정 이천보 : " 소신은 그 명을 받들 수 없사옵니다..."







영조 : " 지금 세자의 작태를 보고도 그딴소리가 나오는가. ㅇ!?"








 



영조 : "내가 오죽하면 여기 경희궁으로 옮겼겠어. !?


그놈이 저리 망가진 것은 스승인 너희들 책임이야."


(이건뭐.. 이게왜 스승들 잘못.;; 임금과 보모상궁, 노론,소론, 당파

책임이지..)







영조 : "폐세자 상소를 올려라.! 어명이다.!"





 



이천보(영의정) :" 올 것이 왔구려... 전하께서 우리를 정승으로 올린 의도가 이 것이었어..."




이후(좌의정)/민백상(우의정) : ".........."





이천보(영의정) : "전하께서는 기뻐하심과 노여워하심이


변화무쌍 하여 무엇이 진심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엎드려 비옵건데, 격노를 누르시고 세자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종사에 화기가 돌도록

하옵소서..."



 



정순왕후(김씨) : "문안인사 한번 오지 않는 세자에게

무슨정이 남아있겠습니까. "


김상로 : "주상의 의지만 확고 하다면야...

나경언 그놈이 적정하겠구먼.."




나경언의 고변사건 (세자를 무고 모함)이


일어났고,




 


사도세자의 화증은 점점더 깊어져


해선 안될말을 해버린다.





 



이선 : "내 그 늙은이를 당장 찢어죽일 것이야!!!"










영빈이씨가 울며 세자의 만행을 영조에게 고변하게 되는데...






<임오화변>




영빈 이씨 : "세자의 만행을 이 어미가 고변하는 것은.."




 


영빈 이씨 : "오로지 전하의 안위를 지키기 위함이옵니다.."




 

영빈이씨 : "하오나 전하.."




 


영빈이씨 : "세자가 저리 된 것은 마음의 병 때문이오니.."






 



영빈이씨 : "처분은 하시되 은혜를 베푸시어

세손만은 보존하게 하소서..."





영조 : "영빈.. 자네가 충신일세... 내편은 자네뿐이야."








정순왕후 : (훗.. 어림없는소리. 세손또한 제거 되어야 비로소

나와 내 가문의 세상이 올 것이야..

일개 미천한 후궁의 소생이니 저모양이지. ㅉㅉ.. )





.....






아버지 숙종 사당을 찾은 영조.







영조 : "오늘 역적을 처단하겠습니다."






영조 : (자신이 직접 벨 수 없으니 세자에게칼을 던지며)


"자결하라."




 


영조 :"내가 죽으면 나라가 망하지만.!! 니가 죽으면 300년 종사는

보존 할 수 있다.!! 너 지금 자결하면 세자의 이름은

잃지 않을 것이다.





양력 7월4일. 무더운 여름


아침 7시에 시작해서 19시까지

하루 온종일 실랑이를 벌리다


답이 나오지 않자 결국 한 물건(뒤주 추정)에 가둬

사도는 8일 뒤에 주검이 되어 나오게 된다.


<무더운 여름 그 좁은 곳에 8일간 있는 것은 불가하기에

며칠은 뒤주에 가두고 얼마동안은 다른곳에 가둬

굶겨 죽였다는 설도 있다.>







영조 : "(널 그렇게 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미안하다 선아..

이 아비를 용서하지 말거라...)

세자의 지위를 회복하고,

생각할 思 슬퍼 할 悼 사도세자라 하라.."



영조는 사도를 죽인 것을 깊이 후회하고,

김상로 패거리가 사도를 무고

본인을 속인 것을 알게되어 책망/치사 후

정조에겐 "김상로는 너의 원수"라 하였다.






<아군인가 적인가.>





화평옹주 : " 내동생 선아. 오늘도 많이 힘들었지?"









화평옹주 : "널 항상 응원하는 누이가 있으니 기운내.!

너와 아버지 좋은관계 될 수 있도록

이 누이도 도울게.!"




화완옹주 : "....."








인원왕후, 정성왕후, 화평옹주 가 장수 했더라면...

사도와 세손을 어떻게던

무너뜨리는 세력들 사이에서,






든든한 아군 역활을 하여

이런 엽기적인 일만은 면할 수 있었을거라 본다.





반면 화완옹주는 흉당들을 도와 오라비 사도세자를 무고하여

죽음으로 몰고간 일당중 하나이다? 라는

드라마 묘사가 대부분이다.





 





1756년 사도세자를 명릉수행을 허락하도록 설득하는 화완옹주








화완옹주 : "아버지 오라버니도 명릉수행 같이 동참하게

해주셔요~.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의 귀한 아들인데,

당연히 같이 참석해야하지 않겠어요~?



 



영조 : "허허.. 그래. 옹주 네가 그리 부탁하면 들어줘야지."






화완옹주 : "오라버니 내가 아버지한테 잘 얘기해뒀으니

가서 아버지한테 점수도 좀 따고 잘하고와~!"






세자 : "고맙다 내동생.!"







화완옹주 : "이제 언니(화평옹주)도 없고, 오라버니를 응원하고

힘을 실어줄 사람이 나밖에 더있어?"







 

사도세자 : "훗."


화완옹주 : "남매끼리 서로 의지하며 힘든면 서로 위로하고,

기쁨은 나누며 살아야지."







세자 : "역시 내맘 알아주는건 누이와 너뿐이구나.

그래 이 오라비도 기운내서 잘해볼게.!"





사도 :"너닮은 이쁜딸 낳은거 축하하고, 잘키워야해.!"


화완옹주 : "그럼 누구딸인데, 돌아오는길에 내선물 잊지말고.~!


화완은 어려서 시샘이 많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여


남매사이 갈등을 유발 했던 것으로 보이나,






 



혼인 후 국왕의 지나친 편애에 남매들에게 미움 사는것이


그리 좋지 않다는 눈치는 있었다.






세자는 화완이 딸을 낳은 것을 축하해주고 같이 기뻐했다는


기록도 보아 사도와 화완이 앙숙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화완옹주의 시댁이 소론파였고, 시누이 화완옹주를 정처라


칭하며 싫어했던 혜경궁 홍씨옹주의 시댁이


소론쪽이었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다만, 과부에 딸까지 잃은


이후부터 다시 국왕의 편애에 집착하여,


혜경궁홍씨는 화완옹주가 정조의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싫어


온갖사람, 심지어 물건까지 질투를 함을 묘사했다.


안타까운 상황으로 다시 삐딱선을 탄 화완옹주...

결국엔 사도세자가 왕이 되는 것을 반대 하고

사도와 혜경궁 부부를 계속 곤란하게 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조카며느리 효의왕후(당시 세손비)에게 자신이 시어머니 행세 하며


구박하고 조카(정조)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애정


혜경궁을 힘들게 하고 정조도 부담을 느껴 고모(화완옹주)를


멀리 하였다.





정조 섭외에 실패하자 양자 정후겸에게 애정을 쏟는다.




아마도 자신의 남편,딸을 잃은 충격으로 다시 권력에 대한

집착이 하늘을 찌른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다.




하지만, 화완옹주는 자신의 운명을 뒤바꿔놓는 큰 실수

하게 되는데..







바로 영조가 총애하는 정조의 대리청정에 반대했던 것.







"아바마마가 저렇게 정정하신데 대리청정이 웬 말입니까!?"


정순왕후 노론정권과 같은 생각으로


정조를 몰아낸뒤, 정후겸을 국왕으로


세우려던 계획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부분이다.





결국 탄핵 유배를 당하여 옹주의 신분을 잃어 서인으로 강화도 교동으로 보내지게 되고, 정후겸과 그일당은 모조리 숙청된다.






23년이 지나 화완옹주에 대한 석방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 정조도

"정처를 용서하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귀양에서

풀려나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왕실가의 여인임에도 졸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옹주의 신분을 복권되지 못했을 수 있다.



졸기 : 돌아가신분의 마지막 평가를 뜻함.

조선왕조 실록에서 주요인물이 숨지면 졸기를 실었다.





<근친상간?>


사도와 화완옹주의 근친상간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는데,


"오랫동안 둘이 한 방에 있었다."

"아랫사람과 윗사람 모두 녹초가 되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풀어해쳐진 몰골로 함께 있었다."


다 근거의 전부이기에 상상력이 너무 앞서나간게 아닌가 싶다.


영조가 사도와 화완을 서로 떨어뜨려 놓으려는 모습을 근거로도

삼지만.. 글쎄... 어이없는 풍문이다.





말도많고 탈도 많았던.. 조선시대 왕실가...


권력개편, 구조에 따라 명줄이 왔다갔다 하니..


살얼음판에서 서로의 이권과 살아남기 위해 


무슨짓이라도 해야만 했을터...


그에 희생된 영조일가의 적장자 사도세자..


문명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았을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한다.





사도세자가 그린 '개' 그림


어린 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들며 어미개에게 다가가지만,

어미개를 등돌린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는

마음속 아픔을 표현한 작품으로 더 씁쓸함이

더해진다.





<다음 스토리>


정조의 개혁을 철저히 짓밟아버린 영조의 부인이자 정조의 할머니

정순왕후 STORY.




이순
이순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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