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 7. 길 뚫린 빟

2021.09.28 07:30 입력 2021.09.28 07:43 수정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늙은이(老子)’ 4월을 연다. 4월의 말숨 솟는 샘은 ‘뚫린 길’에 있다. 고루고루 환히 뚫려 텅 빈 ‘빟님’의 길이다. ‘빟’는 빔이요 빈탕이며 한울이다. ‘빈탕한데’는 빈탕의 한 가운데가 돌아가는 가온찍기(간)다. 그것이 큰긋(太極)이다. ‘빟’는 그러므로 빈탕의 가온찍기요 큰긋이다. ‘빟님’은 여기저기 늘 없이 계시는 하나다. 하나로 돌돌 돌아가는 님이다.

마음 속 옴으로 솟는 빟 참나.

참나 올라 안팎 없는 한울 하나.

비어 맑고 시원한 있 그대로 없.

한 없이 크고 깊고 맑은 길.

스스로 저절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흐르는 물 같고 바람 같아서 걸림이 없다. 툭 터져서 막힘없이 줄곧 뚫린 길은 앞뒤 없는 시간이 이제 여기로 이어도는 ‘늘길(常道)’이다. 쏜살같이 이어이어 돌아 오르는 이제 여기, 참!

돌돌 돌아가는 ‘밝돌’은 까닭 없어서 저절로다. 저절로가 또한 참올(眞理)이다. 참올로 꼿꼿이 곧추선 참뜻을 ‘알맞이’하는 제 갈 길의 이미 미리 아닌 오늘! 아까 이따 아닌 지금, 바로 예 여기!

나날이 늘 오늘로 ‘늘살이’하는 하루는 홀로 무심코 깨닫는 ‘알음알이’의 온통이고 환한 미소다. ‘알음앓이’가 깊어야 제 나름 제정신으로 제소리 높이 치솟는 ‘알맞이’ 깬다. 알(知)은 알음이다. 알음을 앓아야 알음알이 알알이 깨쳐 알맞이 할 수 있다. 알을 자꾸 맞아들이는 알맞이가 곧 철학이다.

참올은 ‘모름지기’다. 참올을 자꾸 말로 하면 우스워진다. 바보 말이 된다. 글로 써도 마찬가지다. 참올의 으뜸하나는 ‘오직 모름’을 지키는 것이다. 알맞이는 그 모름을 튼튼히 비우는 기쁨이다!

알맞이는 비움을 채우는 것이다. ‘하고잡’을 채워선 안 된다. 알음지기와 모름지기는 그래서 둘이 아니다. 웋숨 우숨 하늘 숨의 말씀은 내 안의 참올 씨알 깨는 얼줄이요, 도끼다. 깨친 바 없이 옹근 그대로인 씨알을 말씀의 얼줄로 내리쳐야 한다. 단박에 으뜸하나 깨달아 말씀의 말귀 열려 ‘귀뚫이’로 귀 밝고 눈 밝고 해맑아야 한다!

오래오래 참 없.

큰 씨알 옹근 있.

단박에 깨,

참 올바로.

참올 어디?

거기 하나에.

하나!

뭇 씨알의 바탈,

잘몬의 뿌리.

봉긋 솟은 언덕이 하늘로 열렸고, 땅에 내리 닿은 대장간은 그루터기다. 닝겔, 뿌리가 없는 길, 2006, 드라이포인트

봉긋 솟은 언덕이 하늘로 열렸고, 땅에 내리 닿은 대장간은 그루터기다. 닝겔, 뿌리가 없는 길, 2006, 드라이포인트

다석은 ‘늙은이(老子)’를 번역하고 난 뒤인 1960년 1월 9일 일지에 ‘귀밝이(귀뚜리)’란 시를 썼는데 그 시에 “예선가 계선가 말고 제계 속삭 속알밝.”이 있고, 1961년 2월 12일 ‘못ᄒᆞᆯ노릇’이란 시에는 “욀홀 고디 ᄆᆞᆷ빟 웋로 제계 간이 바로 된 ㅣ”가 있다. 또 1963년 1월 11일의 ‘ᄆᆞᆷ 밝 빟 텅’에는 “몬이 지고 · 티가 끌는 - 깨 · 끗 · 조차 - 없어야 ᄒᆞ-”라고 썼다.

‘예’는 여기요, ‘계’는 저기며, ‘제계’는 저기 계시는 님이다. 다석은 “‘계’는 절대라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계는 내재(內在)인지 초월인지 모르는 그 둘이 합한 곳”이라 했다. 하늘로 이어 속삭이는 얼줄로 속알을 밝혀야 한다.

‘욀홀’은 고독한 외톨이다. 나 홀로 곧이 곧장 똑바로 마음 비우고 웋 하늘로 가온찍기 하는 ‘늘삶(永生)’이다. 그것이 욀홀이다. 그러니 티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도 없이 다 치우고 비워서 맑고 깊은 ‘빟’이 되어야 한다.

‘빟’는 두루두루 없이 있는 길이다. 다 뚫린 길이다. 환빛 모신 늘 빟! 그 빈 하나를 여기에 연다. 말숨 트인 입 열려 알음알이 알알이 맺히는 말씀이 단 이슬(甘露)로 흐르기 바란다. 다석의 샘이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 7. 길 뚫린 빟

여섯은 드넓은 바다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바지 대장간을 찾았다. 보름달처럼 봉긋 솟은 언덕이 하늘로 열렸고, 땅에 내리 닿은 대장간은 그루터기다. 먼 강기슭을 에돌아 걸어 온 여섯이 머뭇머뭇 그루터기에 다다르자 하늘이 솟구치며 흰 구름을 웃어 넘겼다. 파랑이 온통 가득 가득이다. 티 먼지 깡그리 내뱉고 깨끗이 홀딱 벗었다. 하늘이 짱짱하다. 여섯은 비로소 말을 틔운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 7. 길 뚫린 빟

어린님 : (파아란 하늘이 수평선에 맞붙어 떨어지지 않는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아, 참 좋은 울음터야. 한 번 울만하지 않아? 하늘이 바다랑 맞붙었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야? 파랑이 하늘 바다에 가득 차 텅텅 비고 찼으니 길은 이곳저곳 다 열렸어. 곳곳으로 고루고루 뚫린 길이야. 다 뚫려서 쓰는 길은 쓰고 써도 끝이 없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빔’이야. “씨우오라”는 뭘까?

별들이 돌고 돌아 돋을볕이 트고 낮이 되었다가 다시 별무리로 가측 차는 신비한 광경이 펼쳐진다. 닝겔, 날아오르는 기억, 2020

별들이 돌고 돌아 돋을볕이 트고 낮이 되었다가 다시 별무리로 가측 차는 신비한 광경이 펼쳐진다. 닝겔, 날아오르는 기억, 2020

사슴뿔 : (하늘이 땅을 뒤덮고 내린 그루터기에 앉아서) 4월은 이 첫줄의 말을 풀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라네. 다석이 한글에서 뜻글을 캐고 심었던 것을 잘 떠올려 보아야 한다네.

큰 글씨로만 보면 쉼표를 사이에 두고 앞줄과 뒷줄로 나뉘지. 앞줄을 읽으면 “길은 뚫렷 해”, 뒷줄은 “씨우오라.”라네. “길은 뚫렷 해”는 “길은 뚫렸어”, “길은 뚜렷해”, “길은 뚫려 해맑아”로 볼 수 있지. 굳이 ‘ᄒᆞl’를 ‘뚤렷’과 띄어쓰기한 것은 ‘해’의 뜻으로 읽히기를 바랐던 것이라네. 길이 뚫렸으니 비고 깊고 어른어른 어리고 오르고 솟구치고 높이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씨우오라”는 “쓰노라”, “쓰오라”의 1인칭을 다인칭으로 터 버린 말이라네. 길은 텅 비어 뚫렸을 뿐 그 비움을 쓰는 이는 그저 스스로라네. 그 모든 스스로를 주어로 되돌리는 동사라고 할까나.

음, 그리고 ‘씨’, ‘우’, ‘오라’로 떼어 보면 어떨까? ‘씨’는 씨알, ‘우’는 하늘, ‘오라’는 오르라. 묶어 말하면 “길 뚫려 해맑아, 씨알 빟 오르라”가 된다네. 허허 참, 이것 참!

길도 뚫리고 씨알도 비어서 오르고 오르니 밑을 채울 수가 없다네. ‘라’라 하지 않고 ‘라’로 쓴 것은 돌고 도는 ‘길’이기 때문이지. ‘용(用)’은 쓰고 부리고 다스리고 베푸는 뜻을 가졌다네. 점칠 복(卜)을 뒤집어 쓴 가운데 중(中)이기 때문이지. “씨우오라”는 그 용을 닮지 않았나!

참올의 올로 돌돌 돌아 솟구치는 맞장구가 바로 “씨우오라”요, 신비로운 ‘빟’이 되는 것이라네. 비어서 씨알 하나 없으니 어찌 채울 것인가? 허허 참, 이것 참!

깨달이 : (대장간에서 들리는 망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씨우오라”를 쓸 용(用)으로 푼 건 놀라운 눈재간. 가온찍기(간)가 돌돌 돌아가는 빈자리 쓰면서 씨알 부리니 당연히 채울 수 없. 마음 우주 돌고 돌아 가득 채워도 오히려 텅텅 비어 더 맑고 깊을 따름.

가온 돌려 빈자리 쓰는 용(用)은 비고 깊고 어른어른 어리고 오르고 솟구쳐 높이 날아오르는 충(沖)! 둘 다 가운데가 회돌이 마음(中)! 가온의 돌돌 마음자리! 홀로 앉아 빈 마음 열어 가온이 돌고 돌면 위아래 뚫리고 고루고루 열려 참나로 참올로 솟구쳐!

제나 끄고 마음 웋 열어 참나 솟나는 이제,

정신 줏대 얼 얼빛으로 환하게 솟아 짱짱해.

참 따뜻해, 세상 부드러워.

맑고 엷어 곳곳 풀리지 않는 데 없어.

이 어찌 채워?

늙은이 : (들바람 받아서 땅으로 보내며) “씨우오라”를 솟구쳐 날아 오른 충(沖)과 다스리고 베푸는 용(用)의 가온찍기(간)로 본 것은 잘몬의 꼴이 용오름으로 휘돌아 돌아가는 바탈을 꿰뚫었기 때문이야.

잘몬은 스스로 저절로 늘 있는 그대로 돌고 돌아. 그게 자연 바탈이야. 제절로의 첫바탈이지. 두루두루 뚫린 길은 그렇게 저절로 이제로, 예 여기 늘 바로 솟구쳐 부리고 베푸는 스스로 ‘함이 없는 함(爲無爲)’이야.

몬(物)을 채우고 채워서 채움을 끝없이 바라는 ‘하고잡’이 문제지. 몬에 꽂히고 홀려서 정신줄 놓아 버린 하고잡의 욕망 때문에 “아마 채우지 못하지 라”인거야. 하고잡이 속마음을 휘어잡아 돌리면 볼썽사나워. 빈틈이 없거든.

땅에서 씨알 하나가 움트고 올라오는 게 ‘씨우오라’의 저절로야. 그 저절로의 조화가 짓고 일으켜 쓰고 부리는 작용(作用)은 끝이 없어. 그걸 똑바로 봐야 돼. 하고잡을 말끔 걷어내고 길을 뚫어야지.

수천 수만 개 물비늘의 빛 무리처럼, 풀벌레가 우짖는 소리들처럼, 닝겔, 위대한 벌레, 2020, 드라이포인트

수천 수만 개 물비늘의 빛 무리처럼, 풀벌레가 우짖는 소리들처럼, 닝겔, 위대한 벌레, 2020, 드라이포인트

떠돌이 : (대장간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무도 없다. 화로의 불씨는 여전하다. 큰 망치로 불씨 붙은 쇠스랑의 날을 두드리며) 말이 어렵다 어려워. 골고루, 모두다, 쓰고 비우고 깊이 솟구치는 따위, 빙빙 돌리지 말고 바로 터야지. 예, 저, 빗대는 꼴이 우습다 우스워!

마음 밭 갈아 골 타서 두두룩하게 흙을 쌓아야지. 한 두둑 한 고랑, 그 이랑 하나로 잘 뚫어 길 트면 그게 올 바로야. 참올이 어디 따로 있나? 밭두렁에 이랑을 다 바로 세우면 그때가 제대로지. 이랑을 두두룩하게 잘 쌓아야 쓸 수 있어. 안 그럼 못 써, 참!

한 두둑에 씨알 심고 고랑에 물 흐르면 저절로 어리고 오르고 솟구쳐 날아올라. 사람이 하는 일은 그저 씨알이 잘 내리고 오르게 도울 뿐이야. 나머지는 저절로 스스로 하늘이 알아서 해. 곳간 잘 채우려면 그렇게 길 고루 잘 뚫어서 쓰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채울 수 없어, 참!

고랑 내고 두둑 올리듯 마음 속 이랑 잘 갈지 못하면 씨알을 쓸 수가 없지. 속알이 하늘 모심으로 돌돌 돌아 솟구치면 쓰고 부리고 다스리고 베푸는 따위 그냥 저절로 돌게 돼, 참! 하늘 모심으로 하늘 길러야 더할 나위 없어, 참! 그러니 늘 속알 힘써 길러야 돼, 참! 땀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 참!

온갖 잘몬이 다 하늘이니 모심으로 길을 트고 봐야 하는 거야! 한 티끌이 하늘 우주 다 품었단 얘기 못 들었어? 귀 막히면 식은땀만 줄줄이야!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 7. 길 뚫린 빟

사슴뿔 : (지나 온 길과 멈춘 길의 사이를 둘러본다.) 길은 채울 수 없다네. 길은 채워지는 게 아니라네. 길은 비움으로 가득가득 찬 속알이라네. 더군다나 뚫린 길은 비어 열렸으니 그저 텅 텅 텅, 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깊어. 밑이 없는 깊음, 바닥없는 깊음이라네. 밑도 끝도 없이 깊으니 잘몬의 마루라네. 마루는 으뜸이요, 마루는 제바탈(根源)이며, 마루는 첫바탈(根本)이라네! 잘몬이 나고 드는 귀의처라네! 하나로 돌아가는 하나일 뿐이지(一始無始一)! 허허 참, 이것 참!

다석은 ‘천부경(天符經)’의 첫 줄을 이렇게 뚫었다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 7. 길 뚫린 빟

하나는 길이요, 빟이며, 저절로라네. 스스로 하시는 님이니 ‘하실’이지 않겠는가. 하나는 하나로 돌고 돌아가는 돌돌이어서 밝돌이기도 하다네.

1월에서 “없, 한땅 비롯(無,名 天地之始)”이라 했지. ‘없’은 곧 ‘비롯’이란 얘기라네. 여기도 다르지 않지. “너나·없”은 그냥 ‘없’이야. ‘너나’가 ‘있’이면 상대세계요, ‘너나’가 ‘없’이면 절대세계라네. “있없 하나, 나서 맞둘”이라 하지 않았나. 상대든 절대든 따로 뗄 수 없는 하나라네. 그 하나 바로 보는 눈을 떠야 하지. 하나 보아야 바탈 깬다네.

자, 한 뿌리가 셋인데 그것이 곧 “가장”이라 했다네. 하나가 쪼개져 셋이 되나, 그게 마루(極)라는 얘기지. 바로 그 마루가 못 다할 밑동이라 말하고 있지 않은가! 다함없는 밑동이니 잘몬의 마루가 아니겠는가! 저절로의 바탈이라네. 제바탈로 돌아가는 저절로의 돌돌이라네. 허허 참, 이것 참!

사랑이 :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그림자가 낮고 길게 드리워진다. 옅은 노을이 물들고 있다.) 여기 말숨의 바른 줄은 “같고나.”에 있어. 그 앞의 “아마”와 여기 “같고나.”를 잘 보아야 하지. ‘잘몬의 마루 같다’는 얘기는 잘몬의 마루가 아니라는 거야. 단지 그것은 깊을 뿐이지. 텅 빈 우주 못의 ‘없긋(無極)’으로 깊고 깊으니 그저 그렇게 에둘러 표현한 것이야.

맨 처음의 맨,

비로소의 비,

하나의 하,

뚫린 길의 빈,

그 마루,

없이 있어.

길은 해넘이가 보여주는 저 붉은 노을 같은 거야. 다만 그뿐이지. 노을 같은 것이라 해서 노을이 길이 될 순 없어. 길을 어떤 실체로 보아서는 안 돼. 흰 구름도 아니야. 본래 그것들은 없는 거거든. 길은 그냥 비어서 ‘하실’ 뿐이지. 저절로일 뿐이지. 스스로일 뿐이야. 두루 미치지 않는 데 없이 하시는 님일 뿐!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 7. 길 뚫린 빟

깨달이 : (그가 일어서자 노을이 지고 밤하늘이 되더니 별들이 돌고 돌아 돋을볕이 트고 낮이 되었다가 다시 별무리로 가득 차는 신비한 광경이 펼쳐진다. 삽시간에 시공이 열리고 닫히는 찰나가 몇 차례 이어진다. 휘영청 밝은 둥근달이 여럿 떴다. 장관이다.) 길이 뚫리는 것은 이와 같! 제 속이 저절로 속알 터져 열리는 길 봐! 그 길이 안팎으로 뚫리고 열려 하나로 돌아가는 숨 봐! 숨길이 곧이 열려 솟으면 ‘때곳(時空)’이 늘 이제! 아까 이따 따위 없! 없긋이 이제로 도니 그 쇠스랑의 날카로움도 한낱 지나간 그림자! 한, 순, 간!

‘때곳’ 크게 열려 돌면 얽힌 것 저절로 풀려! 하고잡 따위 없으니 얽혀 들지 않! 속알 환히 환빛으로 가득가득 솟아 밝으니 온갖 잘몬 그 빛에 타 번져! 참올 터지는 알알이! 그 모든 것이 하나 티끌로 모여들어! ‘깬 빛 번져 티끌로 하나(和光同塵)’ 이뤄!

깬 빛 두루 비춰 다 열린 세계 光明遍照十方世界

티끌 하나에 가온 다 뚫리니 온 티끌 가온 그대로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부드럽게 타 번지듯 티끌 가운데로 스며드는 것! 깨어 일어나 세상으로 들어 간 이야기! 님의 알음알이 알맞이 깨달아 오롯 ‘모름지기’로 사는 이야기!

웋님은 무궁한 저 울 속 무궁으로 돌돌 도는 자취, 닝겔, 너를 기다려, 2016, 연필,펜

웋님은 무궁한 저 울 속 무궁으로 돌돌 도는 자취, 닝겔, 너를 기다려, 2016, 연필,펜

떠돌이 : (대장간에서 나온다. 시공이 열렸다 닫힌 풍경이 사라지고 다시 제자리다. 날 선 쇠스랑을 들었다. 붉은 노을의 꼬리가 길다. 둥근 달이 낮게 떠올랐다.) 씨알이 뭘 알았나? 늘 모르고 살았지! 알고 싶다고 알아지나? 감추는 놈들이 문제지! 세상은 저절로 돌아간 적이 없어! 제 꼴이란 게 도무지 보이지 않아! 씨알이 온 그대로 제 꼴 갖추고 살아도 늘 칼이 문제야! 총이 문제야! 총칼은 무디고 쇠스랑은 바짝 날을 세워야지! 이 날을 세워야 굵은 땀이 나!

씨알은 늘 하늘에 기대고 살아! 하늘이 돌아가는 꼴에 맞춰 제 꼴을 삼지! 달마다 밤낮 도는 하늘을 보는 게 하루하루 삶이야! 달 그늘 없이 일 세우면 바로 쓰러져! 다 엉켜 버린다고! 얽혀 풀리지가 않아! 달, 달, 달, 달 그늘에 맞춰야 이랑이 일어서!

아리랑, 아리랑은 ‘알이랑’이야, 참! 하루하루 달 그늘에 맞춰 이랑을 세워야 알아지지, 참! 그 알음알이로 이랑을 터서 여는 길이, 알이 알이랑이야, 참! 알이랑 알이랑 알 알알이가 솟나야 제대로 저절로 돌아가지, 참! 강강술래로 돌고 도는 알알이 알알이가 때 맞춰 열어 알맞이 하는 거라고, 참! 얽힌 게 풀리는 건 알음알이로 맺힌 알이 잘 익어 씨알 트는 순간이야, 참!

저 달이 돌고 돌고 돌아 온 세상에 타 번져야 익어 무르익지, 참! 달빛 돌이켜 거꾸로 비춰야 보라고! 말도 필요 없어! 글 따위도 필요 없어! 달빛에 비친 제 꼴 제절로 돌아봐야지(回光返照), 참!

달은 하늘 한 가운데 떴고, 月到天心處,

바람은 물낯에 불어온다. 風來水面時.

하나로 도는 두 맑은 뜻, 一般淸意味,

헤아려 아는 이 적네. 料得少人知.

- 소옹(邵雍), ‘맑은 밤에 읊다(淸夜吟)’에서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 7. 길 뚫린 빟

어린님 : (달이 하늘과 바다에 떴다. 하나가 둘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 밤바다에 오롯 달이 하나다. 바람 한 줄기 풀벌레 소리 몰아온다.) 아, 맑다. 맑고 맑아. 시원해. 맑아, 시원한 것. 시원시원해 투명한 것. 뻥 뚫려 없는 것. 가 닿을 수 없는 여기, 이제, 맑은 이!

하나가 둘. 둘이 하나. 둘 하나 셋이 여기. 하늘땅사람이 한 줄기. 그 한 줄기 줄은 있고 없어. 없이 있는 그것이 맑아. 맑은 이 여기 있는 것 같아. 늘 여기 더불어 있어.

여어. 여기 온 이 달빛 봐. 저 한울 빛 마주해. 한울, 하나, 한아로 쏟아지는 빛 하나 소리 들어봐. 풀벌레 울음 타고 건너는 저 수많은 ‘있’의 꼴 그려지지 않아? 들녘의 잔등 간지럽히며 불어 온 바람 꼴 보여?

사슴뿔 : (두 손 크게 벌려 원을 그리고 큰긋으로 휘저으며 춤춘다. 바람의 꼴을 따른다. 가 닿을 수 없는 여기 이제를 흐른다. 마치 맑은 이를 모신 듯 솟구쳐 앉는다. 투명한 듯 꿈쩍하지 않고 앉아서) 맑음을 마치 한 존재로 세우듯 “맑안 ᄒᆞ이”라고 한 것은 그 뒤에 “아마 있지 라”라고 한 것의 재치라네. 다석은 은근히 미소를 띠며 ‘맑은 이’를 앞세워 ‘있’의 존재성을 드러내지. 그렇다고 ‘있’이 어떤 존재로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나는 건 아니라네. 그저 이 바람처럼, 저 수 천 수 만개 물비늘의 빛 무리처럼, 풀벌레가 우짖는 소리들처럼 있을 뿐이라네. 얼쑤~

하늘 달그림자로 뜬 물그림자는 깊이가 없다네. 하나로, 바닥없이 뚫린 밑을 건너 ‘없긋(無極)’으로 돌아가는 그림자라네. 그러니 그림자가 어디 있고 달이 또한 어디 있나?

저 둥근 달빛은 해 그늘의 실체일 뿐 그 또한 보이지 않는다네. 없이 있는 님 그림자가 달빛으로 오셨으니 저 달빛의 물그림자는 또 어디에 있나? 허허 참, 이것 참!

길은 비어서 맑은 것이니 그 맑은 ‘있’의 실체는 ‘없’에 있다네! 얼쑤~ 좋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 7. 길 뚫린 빟

늙은이 : (사슴뿔의 춤을 이어서 바람을 따른다.) 없이 있는 그가 나는 누구 아들인지 몰라. 저 달은 하늘 맨 꼭대기에 솟았네. 저 꼭대기보다 먼저 있는 ‘맨 꼭대기의 맨’은 누구의 아들일까?

바람이 물 위로 걸어가네. 바람이 걸어가는 저 빈 하늘 끄트머리는 또 누구의 자식일까? 텅텅 비어서 꼴 없이 꼴 그리는 이 생각의 사슴뿔은 어디에 가 닿나? 도무지 나는 모르겠네. 그가 누구의 씨알인지를.

떠돌이 : (어이가 없다는 듯 어린님과 늙은이를 번갈아 보면서) 씨알은 씨알의 아들이지 그걸 왜 몰라! 씨알이 쪼개져 싹이 터도 결국 씨알 맺힘이야! 큰 씨알 하나가 뭇 씨알로 번져도 그 씨알의 어버이는 그저 씨알이야! 그 씨알이 없이 있다는 둥,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는 둥, 아마 있을 거라는 둥, 말이 뿌리 없이 겉도는 그 둥둥둥이 문제야! 그것이야 말로 실체도 없는 껍데기에 불과해! 씨알은 터서 싹을 길러! 한울 품고 씩씩하게 자라!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_ 김수영, ‘풀’에서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눕는 이가 씨알이야, 참!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웃는 이가 씨알이야, 참! 동풍에 나부껴 누워 울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씨알! 발목 발밑까지 누웠다가 벌떡 솟는 씨알! 그 씨알이 그이요, 그이의 아들이야, 참! 그 참을 돌돌 돌려서 여기 이제로 똑바로 세워야 돼!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 7. 길 뚫린 빟

깨달이 : (떠돌이의 “그 참을 돌돌 돌려서 여기 이제로 똑바로 세워야 돼!”를 세 번 읊조린다. 조용히, 그러나 맑고 투명한 그 소리에 다시 ‘때곳’이 서서히 열린다. 하늘땅이 활짝 뚫려 이은 우주 빛 크게 휘돌아 가는 가온 자리에 텅 텅 텅 비어 비어 짱짱하게 비어 없는 감한 어둠의 맑은 밝돌이 펼쳐진다. 모두, 그 신성한 장엄에 어안이 벙벙하다. 짙은 침묵이 여울지더니 고요가 환히 타오른다.) 한울이 저 밝돌로 솟아 돌아가는 이가 웋님! 웋님은 무궁한 저 울 속 무궁으로 돌돌 도는 자취! 크고 큰 저 울 끄트머리 낳은 ‘끝없’의 빟! 웋님보다 먼저 그려지는 빟! 그 먼저의 ‘없’이 바로 계! 계는 ‘없’조차 그려지지 않는 빟! 므로 하ㅤ웋님 계시는 그 ‘계’가 먼저 그려지는 ‘빟’일 수밖에!

비로소

비롯









어린님 : 알, 알, 알, 알알이, 알이랑, 아리랑, 알이랑, 알알이가 났네. 알음알이 알알이로 알맞이하니 알음앓이 낫네. 그 말, 그 소리, 그 노래가 들려. 이제 뚫려 들리니 환빛이 마음에 솟아. 자, 그러니 ‘늙은이 4월’을 한문으로 고쳐 써 볼까? 쓰고 써도 한글의 뜻을 다 채우지 못해. 뜻글의 한글은 깊고 맑고 크구나!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 7. 길 뚫린 빟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재,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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