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명상 수행으로 그린 꽃과 호랑이

박현준 기자 2011.03.07 13:11:29

글·주성준(작가) 나는 인도에 가기 전에 그림 그리는 시간을 전후하여 매일 명상시간을 갖곤 하였는데 히말라야의 성자들에 관한 서적을 읽고 명상 중에 비몽사몽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귀에서는 어디서도 들어 본적이 없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천사들의 바잔(인도식 찬송) 소리가 꿈인 듯 생시인 듯 귓가에 울려 퍼졌다고 한다. 그 이후 책속의 사원을 찾아 인도로 가게 된 것이다. 인도의 성자 분들은 내게 한국으로 돌아가서 명상을 가르치라고 하였지만 모든 직업에는 삼매(三昧)가 있고 그 자체가 명상이며, 그림을 그리며 작품 활동을 하는 화업(畵業)삼매도 직업을 통한 요가(카르마 요가)임을 알고 그림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조선 그림 분양의 99%를 그렸었던 정통 프로화가들의 정통 한국화(민화)가 피카소보다 200년이나 빠르게 큐비즘과 역원근법 초현실적 표현을 통해 불합리한 사대주의미술에 대한 저항(해학)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조선해학미술의 의미는 양반 취미 문인화와 자유 창작이 허락되지 않아 왕실주문품을 그리던, 프로예술가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는 중인계급공무원화가(도화서)들의 1% 그림에 대한 저항이다. 진정한 조선프로들의 그림은 ‘한국미술사’ ‘한국회화사’ 책에 단 한 페이지도 나오지 않고 미대에 정통한국화(민화)라는 과목조차 없다. 조선미술계의 사회적분위기는 평민 프로화가들은 그림에 사인도 못하게 했다. 현대미술사에서 사인도 낙관도 없는 그림이라하여 평가할 가치가 없다고 인식된다. 조선의 프로들을 천시하면서 현대의 프로화가(전업화가)들이 어떻게 대접받기를 바라는가? 양반 취미 화가들이 유교적 왕권에 충성의 상징으로 그리던 대나무와 소나무의 가운데를 싹둑 자르거나 반으로 쪼개어버리는 그림. 연꽃을 피운 난초, 연꽃잎을 분해하여 나열시킨 연화도, 성을 투과하여 투명하게 그린 성곽, 선글라스를 쓴 호랑이, 아바타 영화처럼 공중에 떠있는 섬에서 바둑을 두는 신선 등 해학(저항)을 통한 현대회화를 그렸다. 현대회화는 20c가 아닌 17~18c에 이미 나왔었으나 아무도 이를 발표한 자가 없었다. 고구려, 고려의 채색전통을 버린 반쪽짜리 흑백, 담채그림들을 온전한 전통이라 할 수 없다. 현대서양화는 개성만을 존중해 어둡고 괴기스런 그림이 많다. 내가 작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독일학자의 부인이 한국에 왔을 때 그녀의 스마트폰에서 집안에 걸린 고호판화를 보고 “정신병 증상이 있던 고호의 그림기운을 접하며 자란 아이들은 정신적 이상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하고 언질을 주었더니 “돌아가자마자 그 그림을 떼어 버리겠다”고 하며 고마워했다.

사실 내가 명상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고조할아버님과 진사 벼슬을 지내셨던 증조부의 영향이 많았다고 한다. 이북 은율에서 강원도 평창으로 오실 때, 고서(古書)들을 보시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앞으로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남으로 가야 한다하여 6.25가 끝날 때까지 평창 산골 깊은 곳에서 사셨다. 선가(仙家), 불가(佛家)의 경전공부를 하시는 주변의 도반(道伴)분들이 오신 적이 있는데 마침 먹을 것도 없었다. 찌그러진 놋 세숫대야에 샘물을 떠오라고 하여 북주의 고모님께서는 영문도 모르고 물을 떠오니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싸리나무 낚싯대에 달린 낚싯바늘을 세숫대야에 넣고 두어 번 오르락내리락하는데 한자가 넘는 잉어가 낚싯바늘을 물고 대야에서 올라와서 맛있게 다들 먹었다고 하는 말을 고모님께 들은 적이 있어서인지 바이블의 ‘오병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믿게 되기도 하였다. 할아버님들이 방 안에 빙 둘러 앉아 수행을 하실 때도 공중에 떠서 계신 모습들을 창호지 문틈으로 본 적이 있다고 고모님께 들었다. 말년에 돌아가시기 전에는 사촌형이 할아버님들이 아끼시는 고서(古書) 몇 장을 찢어서 딱지를 만들었다고 피가 나도록 회초리를 치셨던 분인데 방안 가득한 고서들을 다 태워 버리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오는 세상에는 한글이 쓰일 것이다”라고 하셨다. 고모님은 아직도 원주에 살고 계신다. 내 그림을 소장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림의 소재에 따른 꿈을 꾼다. 희보(喜報) 기쁨 호랑이 그림을 소장한 분은 웃는 호랑이가 꿈에 보인다고 말한다. 노량진에 사는 그림 소장자는 그림속의 희보 행복호랑이가 캔버스에서 걸어 나오는 꿈을 꾸었다고 얼마 전 연락이 와서 그저 “좋은 일 있으시려고 그런가봅니다”라고 했다. 호랑이는 전통적으로 영물이며 꿈에 호랑이를 보면 입신양명, 귀자(貴子)출산, 재물, 기쁜 소식을 상징한다. 나는 그림을 보거나 소장하는 모든 이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그림을 그린다. 부적(符籍)처럼 실지로 그림에 선신(善神)이 깃들어 집을 지키는 힘을 지니게 되는 이러한 그림류를 화론에서는 신품(神品)이라 한다.

내 작업은 명상시간을 가진 후에 그리는 시간도 하늘이 열리는 시간인 자시(子時)에 그리며 동쪽에서 떠온 물에 사기(邪氣)가 근접 못한다는 격명주사(朱沙)나 영사(靈砂)를 사용한다. 이러한 작업을 고수하는 이유는 좋은 기운(氣運)을 가진 그림들이 사회에 많이 걸릴수록 국운과 가운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직업을 통한 봉사이며 밝은 사회 만들기에 일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힘을 가진 실학적이며 도가(道家)적 그림류는 고구려 이후 그려지지 않다가 조선의 유교 문인주의와 서양미술이론에 의하여 지금은 그리는 방법이나 명상 방법 등은 전통이 미신 시 되고 멸절되어 미술대학에서는 배울 수도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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