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목사·심성민씨 무작위로 데리고 나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다시 못 보는 줄 알았는데…” 탈레반에 납치됐다가 6주만에 풀려난 여성 인질들이 31일 수도 카불 시내 한 호텔에서 재회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카불 = 공동취재단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의해 납치됐다가 6주간의 억류끝에 전격 석방된 유경식(55), 서명화(여·29)씨는 31일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풀려난 인질 19명을 대표해 이날 아프간 수도 카불 시내 세레나 호텔에서 석방 이후 국내 언론과 첫 기자회견을 하고 납치 상황 , 심경 등을 상세히 밝혔다.

한편 이날 호텔에는 김만복 국정원장이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김 원장은 최근 카불에 간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측은 이번 아프간 인질 석방 협상에 현지어와 영어에 능통한 직원이 협상대표로 나서는 등 탈레반측과 물밑에서 접촉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음은 유, 서씨와의 일문일답.


―현재 심경은.

유경식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고생보다도 너무 큰 물의를 일으켰다는 생각에 잠을 못이뤘다.”

서명화“너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고 비단 저희 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이 42~43일 간이나 염려해 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하다.”

―납치 당시를 설명해 달라.

(주로 유씨가 대답) “가즈니주를 지나면서 운전사가 현지인 2명을 태웠다. ‘왜 모르는 사람을 태우느냐’고 했더니 ‘가면서 내려주면 된다’며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두 사람을 태운 뒤 20~30분 가다가 총소리가 났다. 앞에 앉은 사람이 총을 겨누면서 정지 수신호를 했는데, 운전사가 무시하니까 발포했다. 차 안으로 무장한 2명이 올라와 운전사를 구타한 것 같고 전부 내리라고 했다. 배형규 목사님이 실신했다. ”

―선교나 종교 얘기는.

“없었고, 목적 이런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우리 뒤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승합차로 두차례에 나눠 회당 안에 들어가라고 했다. AK 소총으로 무장한 사람 10여명이 RPG로 사람들을 집어넣었다. ‘정부 사복 경찰인데 너희들을 알카에다로부터 보호하려고 임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억류 상황은.

“3~4명씩 5팀으로 분산했다. 민가를 주로 돌아다니면서 12번을 옮겼다. 주로 야간에 달이 없을 때 오토바이에 태워서 헤드라이트를 끄고 불빛 신호를 주면서 갔다. 도보로 이동한 적도 몇번 있다. 남자는 죽인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애를 많이 먹었다.”

―육성통화는 어떻게 된 것인가.

“다른 팀에서 그 사람들이 안면 있는 곳에 노출한 것 같다. ‘너희가 아프다고 해야 구출해 준다’고 탈레반이 말을 시키고 안하면 안되게끔 시키는 것 같았다.”

―음식 등은 어땠나.

“갑상선 수술로 하루에 호르몬제 2알을 먹어야 하는데. 납치되고 나서 하루 2알을 1알로 줄였지만 1주일이 지나서 떨어졌다. 손짓 발짓으로 부탁을 했다. 하루 2알씩 먹어야 된다고 구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알았다고 하면서도 없어서 안된다고 하더라. 아프간에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외무부 간부가 자기가 복용하는 것과 같은 약을 우리에게 보냈다고 들었는데 결국 안 왔다.”

―단식을 했나.

“감자 2개를 절반으로 쪼개서 4명이서 먹었다. 기운이 없어서 하루종일 잠자고 다시 자고 그랬다. 갈수록 적응을 해서 돌이 씹혀도 감자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초반에 잡혔을 때 빨리 구출해 달라고 금식 기도를 했었다. 사흘을 안 먹으니 그들이 보기엔 단식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

―살해 협박은.

“맨 처음 전체를 집합시켜 담벼락 앞에 일렬로 세우고 기관총, 소총으로 위협했다. 서너명이 무기로 위협하고 한사람이 비디오 카메라로 찍었다. 거의 패닉 상태였다. 자기들이 알카에다라면서 그제서야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면서 돌변했다. ‘너희들 잘못하면 이렇게 (총쏘는 시늉을 하면서) 한다’고 위협했다. 감금한 곳이 반지하에 짐승 우리같은 창문도 없고 환기통 하나 있는 곳이었다.”

―왜 배 목사가 살해됐나.

“무작위로 데리고 나간 것이다. 본보기로 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12명(6+6) 중 1조 6명 중에 배 목사가, 2조(4+2)중 4명 그룹에서 심성민 씨가 나갔다. 고세훈, 심성민씨 중 고씨를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너’ 하고 여자 3명 무조건 끌고 나가라고 그러더라. 두건을 씌워서 그 뒤론 모른다.” ―석방 당일 상황은.

“탈레반 2명이 와서 ‘4일밤을 자면 석방된다’고 했다. 그때 탈레반이 휴대전화로 걸어서 정부와 5일 전쯤 통화했다. ‘건강 이상없느냐, 누구 있느냐’고 물어 ‘언제 나갈수 있느냐’고 했더니 ‘며칠만 참으라’고 했다. (29일) 다른 사람들도 자고 있는데 탈레반이 와서 석방이라며 ‘2명 먼저 간다’고 하더라. 4명이 같이 나가게 해달라고 해서 탈레반에게 바꿔 달라고 했는데 그중 보스처럼 생긴 사람이 ‘너희 정부에서 다 보내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오후 4시쯤 서명화, 차혜진씨 2명을 탈레반이 오토바이로 접선장소에 떨어뜨려 놓고 망원경으로 살펴볼 때 둘러보니 적십자 차와 깃발이 눈에 띄었다.”

카불 =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