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사한 미소가 입가를 떠나지 않는다. 앞머리에 돋아난 몇 가닥 흰머리를 보기 전엔 올해 마흔아홉이 된 나이가 믿기지 않는 미중년. 그런 그가 입만 열면 웃음이 터진다. 이게 다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때문이다. 정보석은 가히 올해의 재발견이다. 데뷔 24년차 배우가 국민 시트콤에서 입은 새 옷은 무능한 남편. 뱀이 무섭다고 질색을 하고, 발가락에 패디큐어를 칠하고, 슬픈 드라마를 보면 휴지가 한 박스나 필요한 그를 보며 시청자들은 생각한다. 남자가 이래도 될까. 계산엔 젬병이고 잘하는 건 달랑 족구 하나. 아내에겐 하이킥을 당하기 일쑤고, 장인어른은 "너 이 자식, 입도 뻥긋하지마"라며 구박한다. 집안 서열상 피라미드 밑바닥에서 식모 아가씨와 묘한 경쟁심을 느낀다. 가장이 이래도 될까. 그는 "너무 웃긴다"고 칭찬을 하자 공을 감독에게 돌렸다. "대본과 상황 때문에 웃긴 것이지 제가 망가져서, 웃긴 사람이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변명은 하지만 '하이킥' 보석 캐릭터와 실제 보석은 묘하게 닮았다. 조금 어눌한 말투와 시종일관 진지한 모습이 그렇다. 그는 실제로 연예인 야구팀 '조마조마'의 최고령 투수다.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은 극 중 이야기는 실제에 바탕을 둔 셈이다. 정보석은 부상 뒤 병원에서 읽은 셰익스피어에 빠져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연출을 전공했지만 졸업 직전에야 연기를 시작해 선배와 교수들에겐 "다신 연기하지 마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의 연기인생도 구박과 함께 시작했다. 1986년 KBS '백마고지'로 데뷔했지만 첫 3년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부담감에 화장실 갈 때도 밥먹을 때도 대본을 끼고 살았다. 녹화를 하는 날에는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설쳤다. 결국 3년 만에 TV를 떠났다. "정말 당시 화면을 보면 피골이 상접해서 저 얼굴로 어떻게 배우를 했나 싶어요." 긴 호흡을 찾아 연극무대로 돌아갔다. 무대에서 실수는 용납되지 않지만 작품을 한두 달씩 연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니 집중력이 생기고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됐다. 1년에 영화 한 편, 연극 한 편 등 기회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젊은 시절엔 멜로에서 활약했고, 불혹을 넘어서는 '신돈'의 공민왕, '대조영'의 장수 이해고, '달콤한 인생'의 불륜남이 찾아왔다. 그에게 시트콤은 배우로서 진폭을 넓힐 수 있는 욕심나는 도전이었다. 캐스팅 이후 7개월간 조마조마하며 기다렸다는 그는 보는 사람까지 짜증나게 만드는 소심한 '주얼리 정'을 완벽하게 세공해냈다. 가장 힘들게 촬영한 에피소드는 래퍼가 돼 노래하는 장면. "힙합 동아리를 하는 아들에게 밤샘 과외를 받으면서 연습했죠. 대본을 하루 전에 받아서 다행이었지, 일주일 전에 줬으면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을지. 휴." 이런 노력파면서도 "연기는 아직도 어렵다"고 엄살을 피운다. 그가 만드는 웃음은 내공과 노력이 만든 성과물이었다. 그의 멍한 표정에 반해 캐스팅했다는 김병욱 감독은 로또를 맞은 기분이 아닐까. 정보석은 '하이킥'의 매력은 웃음과 어우러진 리얼리티라고 못 박는다. 그 때문인지 아들과 등산하는 에피소드를 촬영하면서 가슴이 아렸다고 했다. 부자가 함께 등산을 하면서 오해를 풀고 내려오지만 결국 술을 먹고 '찌질하게' 망가진다. "어깨가 축 처진 아버지 모습이 현실과 닮지 않았나요? 직장과 사회에서 시달리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무게가 너무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오히려 웃음을 짓게 하는 거죠." '하이킥'은 이순재부터 아역 진지희, 외국인 줄리엔 강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들이 함께한다. 그는 "젊은 배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다"며 "네 배우가 선명한 콘트라스트를 지녀서 좋다"고 했다. 최다니엘은 성숙하고, 시윤이는 동화 같은 요소, 정음은 세련된 모습, 세경이는 고즈넉한 매력이 있다는 것. 정보석은 수원여대에서 10년째 연기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님이기도 하다. 서글서글한 인상에도 연기 욕심은 숨기지 않는다. '2인극 페스티벌'이라는 연극 페스티벌도 준비 중이라는 그는 "시트콤으로 많이 풀어진 이미지를 보여줬으니 다음에는 완전한 반전을 보여줄 수 있는 지독한 악역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저는 연기로서 완성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죽을 때까지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60세가 되기 전에 어느 정도 선에 도달하고 싶어요." 구박과 함께 시작했지만 그는 이제 스크린에서도 무대에서도 브라운관에서도 빛을 내는 존재다. 마치 이름인 보석처럼.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A도 모바일로 공부한다. |
![트와이스 모모, '얼빡' 두렵지 않아 [스타★샷]](http://news.nateimg.co.kr/etc/cms/2024/05/07/1715061030_47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