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에 완패 25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닛산스타디움에서 열린 80번째 한일전에서 0-3 완패한 태극전사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 한국, 일본에 완패 25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닛산스타디움에서 열린 80번째 한일전에서 0-3 완패한 태극전사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1년 8월 삿포로돔에서 날아온 속상한 축구 뉴스가 다시 떠오를 줄은 몰랐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지만 이렇게 무기력하게 휘둘릴 줄은 몰랐다. 손흥민, 황의조, 황희찬, 김민재 등 유능한 선수들이 못 뛰어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저 핑계로만 들렸다. 10년 전 삿포로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 구자철의 날카로운 슛 두 개로나마 0-3 참패 결과를 두고 위안을 삼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일본 골키퍼 곤다 슈이치를 곤혹스럽게 할만한 슛조차 날리지 못했으니 축구팬들의 얼굴이 화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10년 전 삿포로에서도, 이번에 사이타마에서도 나란히 뛴 수비수 김영권과 미드필더 남태희는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25일 오후 7시 25분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어웨이 게임에서 0-3으로 완패하며 두 달 앞으로 다가온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통과를 위한 숙제를 안고 돌아오게 됐다.

제로 톱 전술, 숨기고 싶었나? 숨고 싶었나?

벤투호는 맨 앞에서 이끌어줄 손흥민이나 황의조가 이 게임에서 뛸 수 없다고 해서 이강인, 나상호 등이 적힌 스타팅 멤버 리스트를 내밀었다. 누가 봐도 제로 톱 계획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활용한 역습 전술조차 눈에 띄지 않았으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후반전에는 원 톱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이정협이 나와서 뭔가 다른 축구를 기대했지만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일본이 3골, 슛 기록 20개 중 유효 슛 10개의 알찬 결과를 만들어내는 동안 한국은 슛 기록 6개 중 유효 슛 1개의 초라한 기록만 남기고 물러났다. 벤투호는 전반전에 높게 떠오른 나상호의 오른발 슛이 유일한 공격 장면이었고, 그나마 후반전에 A매치 첫 기록을 찍은 오른쪽 날개 공격수 이동준이 85분에 찍어찬 슛으로 유일한 유효 슛 기록을 남겼다. 그것도 일본 골키퍼 곤다 슈이치가 제자리에서 가볍게 점프하며 잡아낼 수 있는 평범한 궤적이었다.

게임 시작 후 5분만에 가마다 다이치의 재치있는 오른발 슛이 한국 골문 왼쪽 기둥 옆으로 흘러나갈 때부터 우리 수비수들은 깜짝 놀랐다. 좁지만 공간을 파고드는 일본 특유의 패스 축구가 조금씩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비는 충분하지 못했다. 16분에 첫 골을 내줄 때 우리 선수들의 안이한 대응 태도가 화근이었다.

일본 공격을 센터백 김영권이 왼발로 차단한 뒤 살짝 뜬 공이 다시 떨어지기를 기다렸지만 그 순간 일본의 멀티 플레이어 오사코 유야가 기막힌 점프 발리 힐킥 패스로 야마네 미키에게 첫 골을 열어준 것이다. 나상호와 김영권은 오사코 유야가 그런 플레이를 펼칠 줄은 전혀 예상을 못한 표정이었다. 홍철이 야마네 미키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이미 공은 그의 발끝을 떠나 조현우가 지키고 있는 우리 골문 크로스바 하단을 스치며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첫 골을 어시스트한 오사코 유야의 플레이만 놓고 봐도 우리 선수들이 배울 점 많았다. 공간을 열어나가는 패턴 플레이도 감탄할 전술이지만 오사코 유야의 개인 판단에 의한 장면 전환은 단연 압권이었다. 27분에 오사코 유야의 역습 패스를 받은 가마다 다이치가 날카로운 오른발 대각선 슛을 낮게 깔아 때려 넣었다. 이 역습 순간 일본 선수 1명, 한국 수비수 4명이었던 그림이 단 5초 사이에 한국 수비수 4명 그대로, 일본 선수 5명으로 바뀐 것이다. 

축구 게임 흐름을 바꾸기 위한 전술적 대비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명장면이었다. 일본은 역습 기회에서 자신들이 준비한 전술을 활짝 펼쳤지만 벤투호는 그저 뒷걸음질할 뿐이었다.

전반전 0-2로 휘둘린 한국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이정협과 정우영을 들여보내며 이강인과 나상호를 뺐다. 전술 변화를 위한 선수 교체였지만 전반전에 그나마 돋보인 이강인과 나상호를 뺀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왼쪽에 나상호, 오른쪽에 이동준이라도 있어야 이강인의 탈압박에 이은 역습 패스가 가능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후반전에 골키퍼 자리도 조현우에서 김승규로 바뀌었는데 그나마 김승규가 온몸을 내던지며 슈퍼 세이브를 펼친 덕분에 0-3 점수판을 지킨 셈이었다. 53분, 일본이 자랑하는 날개 공격수 미나미노 타쿠미와 만능 공격수 오사코 유야가 연거푸 날카로운 유효 슛을 날렸지만 김승규가 믿기 힘든 순발력으로 이 공을 다 막아냈다.

83분에는 일본의 왼쪽 코너킥 세트 피스로 쐐기골을 얻어맞았다. 아타후 에사카가 오른발로 감아올린 공을 미드필더 엔도 와타루가 헤더 슛으로 꽂아넣은 것이다. 체격 조건 좋은 한국 선수들은 그 앞에서 다른 바람잡이 선수들에게 낚이는 중이었고 엔도 와타루는 뒤에서 코너킥을 기다리고 있다가 프리 헤더로 손쉽게 끝낼 수 있었다. 치밀하게 준비한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차이가 한눈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90분에 일본의 골들만큼이나 인상적인 빌드 업 장면이 벤투호를 한 수 가르쳤다. 일본의 골 킥이 짧게 시작된 것을 알고 매우 높은 위치까지 압박한 후반전 교체 선수들 셋(이정협, 김인성, 이진현)이 달려들었지만 요시다 마야를 중심에 둔 일본 수비수들은 정확하고 빠른 패스 플레이로 후방 빌드 업 탈압박의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지고 돌아서기 싫은 축구 게임이지만 언제나 배울 점은 그곳에 남아있었다.

남자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결과(25일 오후 7시 25분, 닛산 스타디움, 요코하마)

한국 0-3 일본 [득점 : 야마네 미키(16분,도움-오사코 유야), 가마다 다이치(27분,도움-오사코 유야), 엔도 와타루(83분,도움-아타루 에사카)]

한국 대표팀
FW : 이강인(46분↔이정협)
AMF : 나상호(46분↔정우영2), 남태희(82분↔김인성), 이동준
DMF : 원두재(62분↔이진현), 정우영1(76분↔이동경)
DF : 홍철, 김영권, 박지수, 김태환
GK : 조현우(46분↔김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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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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