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텔' 시대 만들어진 '컴퓨터업무방해죄'..23년간 실형 '0건'

문현경 2018. 5.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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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벌금형..집행유예도 드물어
드루킹도 "재판 빨리 끝내자"
"시대상황 맞게 법 개정" 목소리도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는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1995년에 신설된 법이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당시는 컴퓨터의 크기는 물론 사용 방법도 완전히 달랐다. 사진은 1995년 중앙일보에서 사원 컴퓨터 교육을 하고 있는 모습. [중앙일보 DB]

댓글로 여론을 조작했다는 '드루킹' 김동원(49)씨의 죄명은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다.

그동안 이 죄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드물었다. 지난 한 해 전국 법원에서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죄'로 총 20건의 판결이 나왔다. 이는 이전 5년과 비교하면 상당히 급증한 것이다. 2016년에는 5건, 2015년에는 8건, 2014년에는 5건, 2013년에는 6건, 2012년에는 4건이 선고됐다.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의 역사상 이 죄로 실형을 산 사람은 없다. 선고 결과는 벌금형이 가장 많았다. 2011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이 죄로 선고된 판결 56건 중 49건은 벌금형이 선고됐다. 나머지 7건은 집행유예인데 이 중 6건이 지난해와 올해 선고된 건이다. 최근 들어 처벌이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 벌금형이고, 무거워 봤자 집행유예가 선고되다 보니 무서운 죄가 되지 못했다. '드루킹' 김씨가 지난 2일 첫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한다"며 그날로 재판을 종결하길 원한 것을 두고, 어차피 엄하게 처벌받는 죄가 아니니 서둘러 마무리하려 하려는 거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 '컴퓨터 업무방해죄' 23년 역사상 딱 한번…'실형'될 뻔한 사건은

딱 한 번,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로 징역 1년형이 선고된 적이 있었다. 2004년 6월,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한 대학 교직원이 파업에 돌입한 후 자신이 바꿔뒀던 학교 서버의 비밀번호를 넘겨주길 거부한 것은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반년만에 2심인 대전지법에서 무죄로 뒤집힌다. 이 교직원은 정보지원센터에서 서버 운영·관리 책임자로 일해오다 갑자기 교학처로 발령이 났는데, 발령 이틀 후 관리자 계정으로 접속해 비밀번호를 변경했다. 대전지법은 "이 전보발령이 무효일 뿐 아니라 유효라고 하더라도 아직 후임자에게 인수인계 전이어서 관리자로서의 권한이 있다"고 봤다. 또 "홈페이지 관리자 비밀번호는 초기화로 쉽게 복구가 가능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검사 상고로 사건을 넘겨밭은 대법원은, 이 무죄 판결에 문제가 있다며 판결을 다시 하라고 돌려보냈다. 결국 대전지법의 다른 재판부는 "해당 전보발령은 부당노동행위가 아니고 무효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프로그램을 초기화해 비밀번호를 복구할 수 있다고 해도, 정보처리장치에 부정한 명령을 입력해 장애를 발성해 위 대학에 대해 업무방해의 위험을 초래한 것은 맞다"고 봤다. 이 사건은 결국 2007년 3월, 벌금 1500만원으로 확정됐다




1995년 판매하던 PC 광고. 3.5인치와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 드라이브와 CD-ROM 드라이브가 공존하는 형태다. 컴퓨터용 리모콘도 제공됐다.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는 23년 전에는 없던 죄다. 1995년 12월부터 시행됐다. 개인용 컴퓨터가 조금씩 보급되기 시작하고 전용망이 갖춰지는 등 PC통신 사용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저지를 수 없는 죄를 컴퓨터를 통해 저지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업무방해죄(형법 314조)에 '2항'을 새로 만들고 컴퓨터로 업무를 방해한 것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1990년대 큰 인기를 누린 PC통신 '하이텔'.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사라졌다.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문제는 그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이 너무 빨리 발전하고 너무 많이 보급돼 23년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가 생긴 것은 이 죄가 신설된 지 3~4년 뒤의 일이다. 2000년 우리나라 가정 내 인터넷 보급률은 49.8%로 절반에 못 미쳤지만(국제전기통신연합 보고), 2016년 우리 국민 88.3%가 인터넷을 쓰게 됐다(한국인터넷 진흥원 조사). 1990년대에 '고속'이라 불리던 전용망은 속도가 28.8Kbps짜리였는데, 현재 우리나라 유선 초고속 인터넷 속도는 대부분 10Mbps 이상이다. 347배 빨라진 셈이다.

1994년 8월, 정부는 도시 뿐 아니라 농어촌에도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깔겠다는 기본계획을 세웠다. 사진은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기획단이 현판식을 거는 모습. [중앙일보 DB]
10여년 전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죄' 판결을 보면, 시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다. 2000년 4월, 서울지방법원(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폭탄 메일 프로그램'을 써 한 회사에 3만 통 넘는 협박성 이메일을 보낸 허모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허씨는 세 차례에 걸쳐 각각 3만 2566통, 9898통, 754통의 이메일을 보냈는데, 이 이메일을 보내는 데 걸린 시간은 총 18시간 30분이었다.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 [중앙일보 DB]
2001년 3월, 전주지법 남원지원은 "회사를 그만둬라"는 말에 화가 나 회사 컴퓨터에 저장된 업무 관련 기록을 지우고, 회사 자료가 담긴 '플로피 디스켓'을 가지고 나온 이모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플로피 디스켓은 1~2MB 정도를 저장할 수 있는 보조기억장치의 일종으로, 점차 더 많은 용량을 저장할 수 있는 CD-ROM·USB 메모리 등이 등장하며 자취를 감췄다.

'드루킹' 김동원씨(오른쪽) 댓글조작 의혹 사건이 파장이 큰 것은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등 정치권이 연루된 여론조작 사건이 아니냔 의심 때문이다. [사진 뉴스1, 중앙포토]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컴퓨터 범죄는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30대 두 명이 100여대의 PC를 차려놓고 '가상 인식 소프트웨어'를 통해 25만개의 키워드를 포털사이트 검색어로 노출되게 하는가 하면, 이런 키워드 순위 조작을 하기 위해 사무실을 차리고 매크로 프로그램을 구입한 뒤 광고를 해 33억원을 버는 전문 업체도 생겨났다.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이들이 발생시킨 장애는 더 이상 네이버 등 특정 회사의 업무만 방해하는 게 아니다. 지난 2월, '33억원 순위조작업체' 대표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등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이은상 판사는 "피해자인 네이버의 정보처리에 장애가 발생하도록 함은 물론, 해당 사이트 검색기능을 신뢰하고 사용하는 일반사용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했다"고 판결문에 썼다.

시대상황에 맞게 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가 만들어졌던 당시엔 아무도 '온라인 여론조작'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 죄는 더 이상 개인에 대한 범죄가 아니다. 여론조작으로 네이버도 피해를 입겠지만 우리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더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또 "약한 처벌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면 계속해서 범죄 유혹을 받을 것"이라며 "위조지폐범이 시장경제를 훼손하기 때문에 무겁게 처벌하는 것처럼, 여론조작은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드는 범죄기 때문에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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