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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⑱ 능구렁이와 살모사

입력 : 2016-09-29 16:23:00
수정 : 0000-00-00 00:00:00

⑱ 능구렁이와 살모사

능구렁이, 야생동물보호법 위반!

 

 

“현기야~ 저기 뱀이 나왔어.” “어디, 어디야?” “지금 가면 도망가고 없겠지.” “그대로 있을 수도 있어!”

가보니 능구렁이가 머리를 흙속에 처박고 몸통만 보였다. 막대기로 흙속에 박힌 머리를 뺐더니 약간 꿈틀 거릴 뿐 움직이질 않는다. 머리가 뭉툭한 게 금방 먹이를 먹고는 뱃속까지 보내지도 못했다. 더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한창 식사를 하는 중이다. 북방산개구리를 머리부터 삼키고 아직 몸속으로 들이밀지 못한 다리가 남아 있다.

 

구렁이를 연구한 이정현 박사가 학위 준비를 할 때 귀한 구렁이 두 마리를 잡아 비싼 위치추적용 칩을 넣어 방사했다. 어느 날 그 중 한 마리가 한참 동안 움직이질 않았다고 한다. ‘뭔 사고라도 났나?’ 위치 추적기를 따라 갔더니 구렁이는 온데간데없고 능구렁이 한 놈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 머릿속에 뱀은 징그럽고 무서운 존재로 인식돼 있다. 성경에는 인간을 악으로 유도한 사악한 동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뱀과 관련된 옛이야기는 뱀을 신성시 여기거나, 뱀을 함부로 여겼다가는 복수를 당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제주에서는 옛날 뱀을 토착신으로 모셨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용이 되지 못한, 혹은 용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물이기도 했다.

 

뱀중에도 인간에게 으뜸으로 대접받던 분이 구렁이였고, 태어나면서 어미를 잡아먹는다는 오명을 뒤집어 쓴 친구가 살모사(殺母蛇)이다.

 

구렁이는 집안에 같이 살던 존재였다. 터줏가리에 치성을 드릴 때는 뱀을 위한 고스레를 준비하고, 집안에 같이 사는 구렁이를 못살게 굴거나 쫓아내면 집안에 화가 미친다고 했다. 사람과 늘 같이 살면서 골칫거리인 쥐를 잡아먹던 고마운 동물이었다. 그런데 70년대 박정희 정권시절 ‘쥐를 잡자’는 전국적인 캠페인과 초가지붕 개량사업에 구렁이가 희생양이 됐다. 약 먹은 쥐를 먹고 죽고, 먹이가 사라져 못 살고. 주 서식지인 초가지붕은 사라졌고,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잡아먹혀 없어지고…. 구렁이는 다시 환경부지정 멸종위기종 Ⅱ급이라는 귀하신 몸이 되었다. 황구렁이와 먹구렁이는 색깔의 차이일 뿐 같은 종이다.

 

오늘은 특별히 부모를 죽이고 태어난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살모사(殺母蛇)에 대한 오해를 풀어줘야겠다. 살모사, 쇠살모사, 까치살모사 모두 파충류이지만 알을 어미 뱃속에서 부화시켜 세상 밖으로는 새끼를 내보낸다. 이를 난태생(卵胎生)이라고 한다. 살모사 외에도 무자치가 난태생이다. 추운 지방에서 더 많은 알을 부화에 성공시키기 위해 난태생으로 진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새끼를 낳은 뒤 지쳐있는 뱀을 보고 죽은 것으로 오해하여 살모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게다가 맹독을 갖고 있으니 사람들 입장에서는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뱀이다.

 

언젠가 늦반딧불이를 조사하기 위해 저녁 무렵에 공동묘지를 찾았다. 마침 길가에 상처하나 없이 또아리를 튼 채 죽어있는 살모사를 만났다. 기왕 죽은 것 해부를 했다. 그랬더니 뱃속에 손바닥 길이만한 새끼 한마리도 같이 죽어있어 있었다. 이후 인천 계양산에서 곤충농장 안으로 들어온 살모사를 대형 폐어항에 흙을 넣고 살아 있는 곤충들과 개구리를 넣어주며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가운데는 흙으로 만든 화분으로 어두운 은신처도 만들어 줬다.

 

살모사가 9마리 새끼를 낳았다. 새끼들의 성장을 관찰하는 동안 어미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늘 어두운 화분 속에서 나오질 않았다. 어느 날 어항속의 습도조절을 위해 물을 붓고는 기다란 작대기로 흙을 뒤적였다. 순간 위협을 느낀 새끼 뱀들은 몽땅 어미가 있는 화분 속으로 몸을 피했다. 어두운 곳으로 가느라 화분 속으로 간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어미한테로 피한 것으로 해석했다. 모든 생명들이 그렇듯 살모사에게도 자손들은 가장 귀한 존재이다. 또 세상의 모든 아기들은 예쁘다고 했듯이 살모사 새끼도 자세히 보면 참 귀엽고 예쁘다.

 

뱀이야기 원고를 쓰고는 아침산책을 하려고 마당을 나섰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인연이.’ 마당 한가운데 살모사 한 마리가 배가 불룩한 채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 소화시키는 중이겠거니 생각하고는 나갔다왔는데 그대로 있다.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려고 보니 죽어있었다. 정황을 따져보니 산책 전 이미 죽은 거였다. 어떻게 먹이를 뱃속에 넣고, 상처까지 입은 채 우리 집 마당까지 왔을까? 아마도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피신을 왔는데 더 이상 생을 이을만한 힘이 없었던 것 같다.

 

뱀은 먹이를 먹고 소화시킬 때, 출산할 때, 어느 정도 성장해 기존의 피부로 살수 없어 탈피를 할 때 상당시간 꼼짝하지 못한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매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태어나 살아남은 숫자보다 먹히거나 그 외 다른 사고를 당해 죽는 숫자가 훨씬 많다(인간의 대규모 개발 빼고). 곤충의 경우 알이 성체가 되어 알을 낳기까지 생존률을 5%이하로 보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생명들이 살아있는 그 자체로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다.

 

 

 

곤충과 양서, 파충류 소개꾼 노현기

임진강지키기 파주시민

대책위 집행위원장

 

 

 

#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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