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산수유와 생강나무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 단편 ‘동백꽃’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웬 ‘노란 동백꽃’이며 ‘알싸한’ 냄새인가. 동백이 자라지 않는 강원 지방에서 ‘동백’ ‘동박나무’는 생강나무를 가리킨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의 올동백도 마찬가지다. 가지를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나서 생강나무라고 부른다.

산기슭에 소보록하니 깔린 이 꽃무리를 산수유로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봄 초입에 노랗고 작은 꽃잎들이 촘촘하게 뭉쳐 피니 둘을 구분하기 어려울 만도 하다. 자세히 보면 산수유꽃은 길이 1㎝쯤의 가는 꽃자루 끝에 달려 있고, 생강나무꽃은 그냥 가지에 붙어 있다. 꽃을 피운 줄기 끝도 산수유는 갈색이고 생강나무는 녹색이다.

몸통이나 줄기로도 구분할 수 있다. 키가 큰 산수유는 줄기가 거칠고 껍질이 벗겨진 부분도 많지만 생강나무는 작고 매끄럽다. 열매 색깔도 산수유가 빨갛고 생강나무는 까맣다. 용도 또한 산수유는 약용(과육), 생강나무는 미용(씨앗기름)으로 다르다. 산수유는 재배하지만 생강나무는 자생한다. 도시나 마을 근처에는 산수유, 산에는 생강나무가 많다.

산수유 열매는 술과 차, 한약재로 쓴다. 처녀가 입으로 씨를 빨아낸 과육이라야 약효가 높다는 우스갯말도 있다. 강장에 좋다. 산수유 산지로는 구례 산동면과 산내면이 유명하다. 산동은 1000년 전 중국 산동성 처녀가 시집 오면서 산수유 묘목을 갖고 와 심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1000년 넘은 ‘할머니 나무’(始木)가 그곳에 있다.

수천 그루가 한꺼번에 피우는 꽃무리는 더없이 화사하다. 꽃말이 ‘영원불변의 사랑’이어서 꽃과 열매를 연인끼리 선물하곤 한다. 박목월 시처럼 ‘산수유꽃 노랗게 흐느끼는 봄’을 지나 가을이 오면 꽃 진 자리마다 빨갛게 열매가 익는 걸 보면서 누구나 그런 사랑을 꿈꾸리라. 구례 산수유 축제는 끝났지만 올해는 개화가 늦어 아직도 꽃천지다. 이천(3~5일)과 양평(4~5일)에서도 축제가 열린다.

또 한편으론 강원도 산자락 어디쯤에서 ‘노란 동백꽃무리’가 알싸한 향기를 내뿜고 있을 것이다. 꽃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알로 내려간 점순이와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는 더벅머리 총각을 슬쩍 훔쳐보면서.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