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오딧세이] 신화·역사·과학의 비밀 간직한 버드나무

성주 성밖숲의 왕버들.
성주 성밖숲의 왕버들.

뜰 앞에 버들을 심어

님의 말을 매렸더니

님은 가실 때에

버들을 꺾어 말채찍을 하였습니다.

버들마다 채찍이 되어서

님을 따르는 나의 말도 채칠까 하였더니

남은 가지 천만사(千萬絲)는

해마다 해마다 보낸 한(恨)을 잡아맵니다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에 나오는 「심은 버들」이다. 만해의 작품이 주는 중량감 때문에 헤어짐이 보통의 이별과 다르게 다가온다.

님의 말을 매어 두기 위해 심은 버들이지만 님을 향한 내 마음과 달리 안타깝게도 버들은 떠날 길을 재촉하는 말채찍으로 쓰였다. 나도 말 채찍질하여 따라 가려했지만 버드나무의 천 갈래 실타래와 같은 가지는 내 마음을 되레 붙잡아 매고 해마다 새로 자란 실버들이 님을 향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얘기로 읽힌다.

비슷한 시는 조선시대 서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에도 나온다.

누각 앞에 심은 버들은

(樓頭種楊柳·누두종양류)

낭군님 말 묶으리라 여겼건만

(擬繫卽馬住·의계즉마주)

어찌하여 가지 꺾어 채찍을 만들어

(如何折作鞭·여하절작편)

재촉하여 장대(章臺·화류계) 길로 가십니까?

(催下章臺路·최하장대로)

한시에서 봄의 완상(玩賞)을 제외하면 늘어진 버들의 이미지는 대부분 이별로 귀결된다. 옛날 중국에서는 벗과 헤어질 때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주었다고 한다. 습기가 있는 곳이면 아무데나 심어놔도 뿌리를 잘 내린다. 버들가지에는 헤어졌지만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이자필반(離者必返)을 소망한 풍경인지도 모른다. 한시에 버드나무를 많이 읊은 이유는 '버들 류(柳)'는 '머물 류(留)'와 발음이 같아 떠나지 말고 머물러 달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경북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 한주종택 옆에 있는 한주정사의 능수버들.
경북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 한주종택 옆에 있는 한주정사의 능수버들.

◆건국 설화에 등장하는 버드나무

버드나무는 종류가 다양하지만 물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어 산의 계곡이나 하천변, 개울가에 많이 자란다. 특히 우물가에 자라는 버드나무는 전설과 역사적 일화에 자주 등장한다.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에 쫓긴 오누이가 도피한 나무도 역시 버드나무다.

고대 역사책에 나오는 버드나무에는 신화가 둥지를 튼다. 『삼국유사』의 「기이」(紀異)에 고구려조에 나오는 시조 동명성왕의 탄생 신화를 보면 그의 생모 이름은 유화(柳花), 즉 '버들 꽃'이다. 압록강 물을 다스리는 신 하백의 딸이라고 한다. 천손 해모수와 사이에서 잉태해 알을 낳았다. 알에서 깨어난 아이가 주몽이다. 유화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옛날 북방 민족이 숭배하는 신목(神木)인 버드나무와도 관계를 지을 수 있다.

우물가에 있던 아가씨가 마실 물을 청하는 나그네에게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건넸다는 일화는 고려와 조선을 건국한 군주들의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급히 마시면 체할까봐 나뭇잎을 입으로 불어내며 천천히 마시게 하려는 아가씨의 총명한 행동에 이끌려 왕건은 장화왕후와, 이성계는 신덕왕후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주몽의 어머니 유화의 이름을 뒤바꾸면 꽃과 버들을 의미하는 '화류(花柳)'가 되는데 정신적 사랑이 아니라 육감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옛날 몸을 파는 여인을 두고 길가의 버드나무나 장미에 빗대 '노류장화(路柳墻花)'라 불렀고 이들의 활동무대가 화류계다.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대군이던 14살에 이미 '19금(禁)'인 화류계를 드나들었다. 어느 날 밤 기생방에서 곯아떨어졌을 때 기둥서방이 예고 없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놀란 수양은 담을 넘어 도망쳤지만 사내가 쫓아오자 속이 텅 빈 늙은 왕버들 구멍으로 몸을 숨겨 겨우 화를 면했다. 조선시대 차천로(車天輅)의 시문집이자 야담집인 『오산설림』(五山說林)에 나오는 얘기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에 있는 천연기념물 털왕버들.
경북 청도군 각북면에 있는 천연기념물 털왕버들.

◆버들잎서 아스피린 주성분 추출

버드나무는 불교의 대자자비를 나타내는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에도 등장한다. 병고를 덜어 주는 관세음보살을 그린 그림이다. 자비심이 많아 중생의 소원을 들어 주는 것이 마치 버들가지가 바람에 나부끼듯이 언제든지 베풀어줄 수 있음을 나타내 오른손에는 버들가지를 들고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서양에서 버들잎은 기원전 5세기 무렵부터 의료용으로 쓰였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이를 씹게 했다. 1820년대 버드나무에 살리신(salicin)이라는 통증 완화 성분이 들어 있음을 알아냄으로써 2300여 년 동안 민간요법으로 알려진 버들잎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1899년엔 독일 바이엘사의 호프만 박사가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던 아버지를 위해 살리실산의 쓴 맛을 줄이고 위(胃)에 부담이 적은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 즉 아스피린을 만들었다. 바이엘 사는 진통 해열제인 아스피린으로 세계적 제약사의 명성을 한 세기 넘도록 누리고 있다.

용버들
용버들

◆버드나무 종류

버드나무는 흔하게 볼 수 있어 잘 아는 나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종류가 다양해 헷갈리기 쉽다. 모양으로 보면 수백 년 노거수로 성장하는 왕버들, 붉은 꽃눈을 가진 호랑버들, 이른 봄 개울가에서 버들개지로 새봄을 알리는 갯버들, 민요 「천안삼거리」에 축 늘어진 능수버들이 있다. 쓰임새로 나누자면 예전에 옷이나 살림살이를 넣어두던 고리짝을 만드는 고리버들, 곡식을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인 키를 만드는 키버들을 들 수 있다. 또 가지가 구불구불하여 '파마머리' 같은 용버들은 지난해 LH 직원이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 사들인 땅에 토지 보상용으로 심어져 하루아침에 대중들에게 '용'됐다. 이밖에 떡버들, 여우버들, 분버들, 쪽버들도 버드나무속(屬)의 일가다.

축 늘어진 모습의 수양버들은 중국이 고향이고, 능수버들은 우리나라 토종으로 암수 다른 나무다. 한때 가로수로 많이 심었으나 하얀 솜뭉치 같은 털이 날리는 바람에 길가에서 밀려났다.

옛날부터 수양버들은 울타리 안에 심는 일을 꺼렸다. 간혹 오류선생(五柳先生) 도연명에 심취한 선비가 귀거래도(歸去來圖)를 모방하여 별서정원 근처에 심었다. 경북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에 있는 한주종택 옆의 한주정사 뜰에 한 아름 넘는 버드나무가 있다.

경북 경산시 남산면 반곡지 제방의 왕버들 군락.
경북 경산시 남산면 반곡지 제방의 왕버들 군락.

◆대구경북 버드나무 노거수

저수시설이 변변찮았던 시절 버드나무의 상태를 보고 한해 농사의 풍작과 흉작을 점쳤다.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의 천연기념물 털왕버들이 그 주인공으로 나이는 약 200년으로 추정된다. 마을 냇가에서 자라고 있어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해왔다. 주민들에 따르면 봄에 버드나무 잎이 일시에 피면 풍년이 들고, 가지마다 잎이 다르게 피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봄에 비가 많으면 모내기가 쉬워 풍년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만 기후 예측 장비가 신통찮은 옛날엔 나무의 상태를 보고 비가 많고 적음을 내다봤다.

밑동 둘레가 7m가 넘는 거목인 청송군 파천면 관동 왕버들과 300~500년 된 성주군 성밖숲 왕버들 군락 50여 그루 또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청송군 주산지 왕버들은 가을 물안개와 어울려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주역으로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출사지다. 물에 반쯤 잠긴 상태에서도 굳건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또 경산시 하양읍 한사리, 남산면 반곡지, 경주 계림, 안동 도산서원 입구, 의성 사곡면 토현리의 왕버들 역시 노거수로 위용을 간직하고 있다.

왕버들의 특징은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며 수 백 년씩 살아간다. 나무속이 잘 썩고 줄기에 큰 구멍이 뚫리는 경우가 많다. 구멍 속에 들어간 곤충과 어린 동물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은 후 남은 인(燐)이 비오는 날 밤에는 푸른빛이 나는 요술을 부린다. 어릴 때 도깨비불이라고 하여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못했다.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의 물에 잠겨있는 왕버들.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의 물에 잠겨있는 왕버들.

◆버드나무 다목적 활용

버드나무는 물가에서 잘 자라는 속성수(速成樹)이자 추위에도 강하다. 이 같은 특징을 적극 활용한 목민관이 18세기 경세가 홍양호(洪良浩)다. 그의 문집인 『이계집』(耳溪集) 제14권의 「두만강 식류기」(豆滿江 植柳記)에 자세한 내용이 담겼다.

영조 때 도승지와 대사성을 지낸 홍양호는 정조가 즉위하자 시련을 맞았다. 임금의 등극을 방해한 정후겸(鄭厚謙)의 앞잡이로 몰려 조정에서 쫓겨나 함경도 경흥 부사로 갔다. 홍양호는 두만강 강둑에 버드나무 3만 그루를 심었다. 백성을 동원해 거대한 역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반발이 심했다. 이에 버드나무를 심어야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반박했다. 적대적인 여진족으로부터 우리 강역을 은폐하고, 적의 기병 돌격을 저지하고, 강둑의 토양 유실을 방지하며, 백성에게 땔감을 공급하고, 바람을 막아 풍해 예방 효과을 꼽았다. 국방과 민생을 동시에 챙긴 묘책이다.

흔히 버드나무를 미인의 신체에 빗대어 여자의 날씬한 허리를 유요(柳腰), 아름다운 버들잎 눈썹을 유미(柳眉), 얼굴을 유용(柳容), 버들처럼 늘어진 머리를 유발(柳髮), 버들가지와 같이 고운 맵시를 유태(柳態)라고 한다.

풍전세류(風前細柳)는 바람 앞에 나부끼는 가는 버들이라는 뜻으로 부드럽고 영리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부드럽고 영리한 전라도 사람의 성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도 돼있다. 정도전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앞에서 팔도 인심을 네 글자로 비유한 말이라고 하지만 실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이거나 야사에 나온다는 게 중론으로 경상도 사람을 나타내는 말은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굳은 절개를 의미하는 송죽대절(松竹大節) 혹은 태산준령(泰山峻嶺)이다.

"풍전세류라는 말이 있듯이 소신 없이 바람 앞에 수양버들이 되는 것은 기회주의자에 불과하지 품위 있는 보수가 아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2018년 10월 정치인으로서 보수의 품위에 대해 한 말이다. 지켜야 할 가치를 수호하는 송죽대절의 '통 큰'시정을 기대한다.

선임기자 chungham@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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