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桎梏<질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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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호 29면

漢字, 세상을 말하다

15년 전인 2002년 11월에도 중국 공산당 당 대회가 열렸다. 이임하는 장쩌민(江澤民) 총서기가 장문의 보고를 읽었다. ‘3개 대표론’이 나왔다. “실천으로 모든 것을 검증하라.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관념·방법·체제의 속박으로부터, 마르크시즘의 잘못된 교조적 이해에서, 주관주의와 형이상학의 질곡(桎梏)으로부터 사상과 인식을 스스로 깨달아 해방해라.” ‘3개 대표론’이 사상해방이라는 말이다. 옛 사고를 버리라는 명령이다.

질곡은 몸과 마음을 가둔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옛 형구인 차꼬와 수갑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차꼬는 두 개의 긴 나무토막을 맞대고 그사이에 구멍을 파 죄인의 두 발목을 넣고 자물쇠를 채우던 형구(刑具)다. 질(桎)이 곧 차꼬다. 곡(梏)은 수갑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편은 “도리를 다하고 죽는 것은 올바른 명이요, 죄짓고 붙잡혀 죽는 것은 바른 명이 아니다(盡其道而死者 正命也 桎梏死者 非正命也)”라고 질곡을 풀이했다.

질곡은 『주역(周易)』 몽(蒙) 괘에 보인다. 64괘 중 건(乾), 곤(坤), 둔(屯) 다음 네 번째가 몽이다. 몽은 ‘어둡다, 어리석다, 어리다’는 뜻이다. 발몽(發蒙)은 현실적인 공부다. 열심히 하면 남에게 형벌을 가할 수 있고(利用刑人), 자신을 옭아매는 것도 벗어날 수 있다(用設桎梏). 그렇지만 현실적인 공부는 시간이 갈수록 어렵고 곤란해진다(以往吝).

질곡은 늘 모순(矛盾)과 함께했다. 중국은 모순을 바꿔 왔다. 마오쩌둥 시절에는 계급모순만 외쳤다. 1982년 덩샤오핑이 “물질과 낙후된 사회 생산력 사이의 모순”으로 바꿨다. 35년이 흘렀다.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형·불충분한 발전 사이의 모순”으로 변경했다. 대신 선부론(先富論)의 세례를 받아 온 경제와 뒷걸음쳐 온 정치의 모순, 곳곳에서 움트는 분배의 갈등은 회피했다.

한국의 질곡은 암담하다. 일부 지도층은 물리적인 질곡에서, 많은 대중은 관념의 질곡에서 헤매고 있다. 주역은 격몽(擊蒙)을 말했다. 부수는 가르침이다. 질곡은 깨야 한다. 사상해방의 중국과 마주 설 해법이어서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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