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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 사랑받는 제주흑돼지, 비싼 몸값에도 “없어서 못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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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제주도 돼지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흔히들 ‘똥돼지’라고 불렀다. 각 가정에서 키우는 돼지가 ‘돗통시’(돼지가 키워지는 화장실)에서 인분을 받아 먹고 자라서다. 돗통시는 2~3평 정도의 현무암 울타리를 쌓은 돼지우리 한켠에 사람이 큰일을 볼 수 있게 넓적한 돌 두 개를 얻은 구조로 되어있다. 돌 사이 밑으로 인분이 떨어지면 돼지가 이를 받아 먹고 자랐다.

제주서 잔치때 나눠먹던 소울푸드 #일반 돼지보다 고소하고 감칠맛 #수십년간 사육환경·품종 개선 노력 #지난해 돼지 판매 매출 370억원대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은 제주인의 소울푸드였다. 특히 ‘관혼상제(冠婚喪祭)’ 때는 돼지고기가 상에 빠지지 않고 올랐다. 이중 태어나기 전의 어린돼지를 물회로 만들어 먹는 ‘새끼회’나 ‘돼지생간’ 등은 돼지 잡는 날만 맛보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김진삼 대한한돈협회 제주서부지부장이 직접 키운 어린 흑돼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최충일 기자

김진삼 대한한돈협회 제주서부지부장이 직접 키운 어린 흑돼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최충일 기자

돼지고기는 제주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뿌리깊은 음식 문화다. 가장 많이 나오는 살코기는 삶아 ‘돔베고기’(수육)를 해 소금·김치 등을 곁들여 먹었다. 남은 뼈와 내장은 곰국을 끓여 마을사람 모두가 함께 나눴다. 돼지의 경추뼈, 등갈비뼈 등을 우려낸 곰국을 그냥 내면 제주전통의 곰탕 ‘접짝뼈국’, 국에 면을 말면 ‘고기국수’가 된다. 국물에 참모자반을 추가해 끓이면 최근 관광객들에게까지 웰빙식으로 각광받는 ‘몸국’이 된다.

과거 제주의 소울푸드는 이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고기가 됐다. 제주 흑돼지는 일반 돼지고기보다 30~40% 정도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돼지 사육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데다 품종개량과 품질 관리가 수십년간 맞물린 결과다. 인분을 먹고 자라는 ‘똥돼지’도 더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제주양돈농협에 따르면 2018년 350억원이었던 제주돼지 판매 매출은 지난해 370억원으로 증가했다. 제주양돈농협의 일반판매장 매출은 2018년 12억원에서 2019년 14억원, 지난해 18억원 대로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제주에서 돼지가 가축으로 키워진 시점을 기원후 100~400년으로 보고 있다. 당시 한라산이나 들판 등에서 서식하던 야생멧돼지를 잡아다 길들여 키운 게 시작이다. 집에서만 키워지던 제주돼지가 대규모로 사육된 것은 1950~60년대 정부 주도의 양돈 사업이 시작되면서다.

둥근모양의 돌담 내부가 토종돼지를 기르던 제주 전통 양식의 화장실 ‘돗통시’다. 최충일 기자

둥근모양의 돌담 내부가 토종돼지를 기르던 제주 전통 양식의 화장실 ‘돗통시’다. 최충일 기자

현재 식탁에 오르는 제주돼지는 최초로 사육된 멧돼지의 후손과는 좀 다르다. 현대의 제주돼지는 토종의 피가 흐르기는 하지만 서구 개량종과 섞여있다. 우리나라에 1903년 첫 서구 개량종 요크셔종이 들어 온 후 1905년 버크셔종이 들어와 토종 돼지와 결합됐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햄프셔종, 랜드레이스종 등 서양의 종자가 잇따라 들어왔다. 이후 1960~70년대부터는 랜드레이스종, 요크셔종, 햄프셔종, 듀록종 등의 교배종이 국내 사정에 맞게 개량돼 소비자를 찾고 있다.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도 흑돼지다. 1986년 제주도축산진흥원에서는 재래 흑돼지 5마리(암컷 4마리, 수컷 1마리)를 확보해 순수 계통번식을 통한 국가 차원의 종(種) 보존 사업을 진행했다. 이후 고유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은 제주 재래 흑돼지 250마리가 2015년 3월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됐다.

제주 농가에서는 이런 재래 흑돼지를 영국의 버크셔종과 결합한 비육용 흑돼지를 육성하고 있다. 재래 흑돼지는 몸집이 너무 작아 상품성이 충분한 고기를 얻기 힘들어서다. 현철호 제주도축산진흥원 가축지원과장은 “제주 도니(흑돼지)는 랜드레이스 품종보다 근내지방 함량과 적색육이 3배 이상 많아 고소함과 감칠맛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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