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읽는 삼국지](20) 가후의 신출귀몰함에 놀란 조조, 곽가의 십승십패설에 웃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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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는 조조군이 서북쪽으로 공격하자 반대편을 공격하기 위한 속임수임을 간파하고 정예군을 동남쪽에 숨겨 놓았습니다. 가후의 예상대로 조조는 밤이 되자 서북쪽 공격을 멈추고 동남쪽으로 진격해왔습니다. 조조가 기분 좋게 쳐들어가려 할 때 포 소리와 함께 복병이 사방에서 공격해왔습니다. 조조군은 크게 패해 달아났습니다. 장수는 유표에게 편지를 보내 퇴각하는 조조를 막고 공격하게 했습니다.

유표가 군사를 일으키자 장수도 군사를 이끌고 조조를 뒤쫓았습니다. 조조는 천천히 후퇴했습니다. 육수(淯水)에 이르러서는 지난 싸움에서 죽은 전위와 조카 조안민, 큰아들 조앙의 제사도 지냈습니다. 퇴각하는 자가 이리 태연하다니 조바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순욱이 조조에게 파발을 보내 유표가 퇴로를 막고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러자 조조가 순욱을 안심시켰습니다.

내가 하루에 몇 리밖에 행군하지 않는 것은 적들이 뒤쫓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나에게도 계획이 서 있으니 안중에 도착하면 반드시 장수를 깨부술 것이다. 그대들은 의심하지 말라.

조조가 안중에 이르자 밤을 이용해 험지를 파서 길을 내고 군사들을 매복시켰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유표와 장수는 조조군이 적은 것을 보고는 자신 있게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매복시켰던 군사들의 공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조조가 장수와 싸우고 있는 사이 원소가 허도를 노리고 있다는 급보가 날아왔습니다. 조조는 어쩔 수 없이 급히 군사를 돌려야만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장수가 조조를 추격해 패배를 설욕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가후가 말렸습니다.

추격하면 아니 되오. 추격했다가는 반드시 패하게 될 것이오.

오늘 추격하지 않는다면 앉아서 기회를 잃을 것이오.

유표가 극력 싸울 것을 권하자 장수는 조조군을 추격했습니다. 하지만 가후의 말대로 대패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후가 다시 가서 싸울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제 군사를 정돈해 다시 추격하면 반드시 대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 목을 베시오.

장수는 가후의 말을 믿었지만 유표는 믿지 않았습니다. 이에 장수 혼자서 다시 군사를 이끌고 조조군을 추격했습니다. 그리고 크게 승리하고 돌아왔습니다. 유표와 장수는 가후의 높은 식견에 감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소를 이기는 열 가지 장점을 말하는 곽가. [출처=예슝(葉雄) 화백]

원소를 이기는 열 가지 장점을 말하는 곽가.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가 허도로 돌아오자 곽가가 편지를 전했습니다. 내용인즉, 원소가 공손찬을 치려고 하니 특별히 군량과 군사를 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조는 원소의 편지가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을 보고 토벌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힘이 모자람을 한탄했습니다. 그러자 곽가가 그렇지 않음을 설파했습니다.

지금 원소는 열 가지를 지고 있고, 공은 열 가지를 이기고 계시니 원소의 군사가 비록 많다고는 하지만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열 가지란 도(道), 의로움(義), 다스림(治), 헤아림(度), 계책(謀), 덕(德), 인(仁), 밝음(明), 문(文), 무(武)입니다. 이 열 가지에서 모든 부분이 원소를 능가하니 조조가 원소를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조가 과찬이라 하자 순욱도 곽가의 십승십패설(十勝十敗說)을 지지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모종강의 평을 살펴볼까요.

전략을 잘 세워야 장수지 용감하기만 하다고 장수가 아니다. 가후는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았기 때문에 지고 이기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참으로 훌륭하다. 곽가가 원소와 조조의 우열을 논하며 조조의 걱정을 덜어준 부분에 이르면 한신이 단에 올라 했던 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십승십패설은 그 말이 모두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인으로 이기고 덕으로 이긴다는 데 대해서는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고 본다. 조조에게 무슨 인이 있고, 무슨 덕이 있는가? 어진 체 가장하는 것(假仁)은 어진 것이 아니고, 덕을 파는 것(市德)은 덕이 아니다. 다만 재주로 이기고 술수로 이긴 것에 불과하다.

곽가는 조조에게 원소를 치기 전에 먼저 여포를 쳐서 걱정거리를 없애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조는 유비에게 편지를 보내는 한편 원소를 대장군(大將軍) 태위(太尉)에 봉해 공손찬을 치도록 했습니다. 밀서를 받은 원소는 곧바로 공손찬을 공격했습니다.

공손찬. [출처=예슝(葉雄) 화백]

공손찬. [출처=예슝(葉雄) 화백]

여포는 자주 연회를 열어 술자리를 벌였습니다. 그때마다 진규 부자가 여포를 한껏 칭찬하는 것을 보고는 진궁이 여포에게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여포가 되레 성을 내며 꾸짖었습니다. 진궁은 하늘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충성스러운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우리는 반드시 재앙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여포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자니 차마 할 수 없는 짓이기도 하고 또한 남들이 비웃을까 봐 두렵기도 하구나.

진궁은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사냥을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유비가 조조에게 회답하는 밀서를 보내는 파발마를 잡았습니다. 밀서를 본 여포는 대로하여 곧바로 전투태세로 돌입합니다. 그리고 고순과 장요에게는 유비가 있는 소패를 치게 했습니다. 유비는 곧장 조조에게 구원을 청하고 성을 사수했습니다. 하후돈이 지원병을 이끌고 소패로 왔습니다. 고순이 달아나자 하후돈이 추격했습니다. 그런데 후성이 고순을 돕기 위해 화살을 쏘아 하후돈의 왼쪽 눈을 맞혔습니다. 하후돈이 화살을 뽑자 눈알까지 나왔습니다. 하후돈은 자신의 눈알을 삼켰습니다.

하우돈. [출처=예슝(葉雄) 화백]

하우돈. [출처=예슝(葉雄) 화백]

나관중본에는 자신의 눈알을 먹은 하후돈의 이야기에 대한 시가 한 수 있습니다.

영토를 넓힌 자 하후돈이니 開疆展土夏侯惇
창으로 숲을 이룬 적군 속에서도 빛났더라 槍戟叢中敵萬軍
뽑은 화살에 눈동자 빠져 애꾸눈 되니 拔矢去眸枯一目
눈알 삼키고 분함에 부모를 외치네 啖睛忿氣喚雙親
충성심으로 힘껏 백성을 구하고 忠心力把黎民救
원한을 풀고 역적마저 삼켜버렸네 雪恨平將逆賊呑
외로운 달 홀로 밝고 밝으니 孤月獨明堪比論
이제껏 공적이 천지를 비추도다 至今功迹照乾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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